엄마, 나 사랑해?

by 주형원

"엄마, 나 사랑해?"


주방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혼잣말에 가슴이 철렁거린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을까. 잘 모르는 이들의 말에는 그토록 마음을 바짝 붙여서 들었으면서, 가장 가까운 존재인 남편의 혼잣말은 귀 담아 듣지 않았다. 몇 번 별 관심 없이 '아무도 없는데 누구한테 말하는 거야?'라고 스치듯 물어보았지만. 그때마다 남편의 '몰라. 습관이야'라는 대답에 '뭐야' 하며 무관심하게 넘어갔다.


몇 년 전 남편은 종종 이유 없이 쓰러지곤 했다. 지하철을 기다리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주말에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하고 땀이 비처럼 흐르면서 제대로 호흡을 하지 못했다. 병원을 찾아가고 검사도 해봤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의사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했다.


파리 유명 레스토랑 요리사로 매일 새벽까지 쉴 새 없이 일할 때라 육체적으로 강도 높은 노동과 쉬지 못해 누적된 피로가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쓰러지는 횟수가 반복되자 과감하게 남편에게 일을 그만두고라고 했다. 돈이야 있다가 없을 수도 있지만, 건강은 한번 잃으면 다시 찾기 힘들다는 판단하에 내린 결단이었다. 실제로 쉬기 시작하면서 남편의 증상은 사라졌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일 년 전 다시 쓰러지기 전까지는.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 원인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인터넷을 뒤지니 누군가 귀에 문제가 있으면 저런 증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파리에서 제일 유명한 이비인후과 의사를 찾아 예약을 했다. 유명 음악가들의 주치의이기도 한 그가 쓴 책들은 전 세계에 번역되어 한국에도 나와 있었다. 그의 명성만큼 예약도 쉽지 않았다. 몇 번을 연락하고 한 달이 넘어서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워낙 유명한 의사라 거만하지 않을까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막상 진료실에 들어가 만난 선생님의 첫인상은 소박하고 따뜻했다. 앞에 있는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의 깊고 영롱한 눈빛에서는 놀랍게도 사랑이 느껴졌다. 지성과 인성의 공존. 살면서 수많은 의사를 만났지만 만남 자체로 치유되는 듯한 선생님은 그가 처음이었다. 왠지 안심이 되었다. 남편의 증상을 설명하니,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검사를 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 귀의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안도도 잠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절망감이 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물어봤다.


"혹시 그럼 집히시는 게 있으신가요?"


"제가 보기에는 이건 심리적 증상이에요."


그러면서 처음 들어보는 증상의 이름을 말했다. 일련의 검사를 마치자 그는 결과에 대해 일일이 친절하고도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결론적으로 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엄밀히 말해 그는 정신과 의사도 심리학자도 아니었지만, 또다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매달리듯 물었다.


"그러면 아까 말씀하신 증상은 왜 발생하는 거예요?"


"어린 시절에 엄마 같은 매우 친밀한 존재로부터 멀어졌던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증상이에요. 이성적으로는 더 이상 그럴 일이 없다는 걸 잘 알지만. 트라우마는 무의식 어딘가에 계속 남아있어서, 가끔 공포가 몰려오면서 쓰러지거나 호흡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죠."


그의 말을 들은 나와 남편은 너무 놀라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남편의 입양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그가 우리는 짐작도 못했을 뿐 아니라 남편의 오랜 의사도 발견하지 못한 원인을 한 번에 알아맞힐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남편의 입양 이야기를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남편을 따뜻한 눈길로 지긋이 응시하며 입을 뗐다


"버려진 건 당신 탓이 아니에요."


굳이 저런 말을 왜 할까. 너무도 당연한 걸. 괜한 말로 남편을 속상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싶어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이런 생각을 조심스레 비추자 남편은 걸음을 멈추더니 말했다.


"선생님 말이 맞아. 이성적으로는 내 잘못이 아니란 걸 잘 알지만, 무의식 한켠에는 그런 생각이 있어."


남편의 말을 듣는 순간 충격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나는 과연 남편을 잘 알고 있는 걸까. 남편의 상처 그리고 두려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남편은 나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안정된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그 결과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너무도 따뜻한 사람이 되었기에, 기억도 안 나는 아기 때의 일이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때부터였다.


남편의 혼잣말이 세상 그 어떤 외침보다도 크게 들리기 시작한 게.




남편을 처음 만났던 이십 대 초반. 나는 철없이 그가 부러웠다. 불안정한 유년기와 사춘기를 통과하며 늘 흔들리고 불행하던 나와는 정반대였기 때문이었다. 평화롭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 입양돼서 자란 남편에게는 늘 따뜻함과 사랑이 넘쳤다. 사랑이 부족한 나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 같았다. 이전의 나를 알지 못하고 지금의 나만 보는 이들이 말하는 '행복하고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건 다 남편 덕분이다.


남편 덕분에 행복해질 수 있었으면서도, 나는 한 번도 남편의 상처를 깊숙이 들여보지 않았다. 남편의 사랑 덕분에 남편을 만나기 이전의 수많은 상처에서 회복될 수 있었지만, 이기적으로 남편의 상처에는 정작 눈을 감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난 후 남편의 상처에 처음으로 눈을 떴다. 그때부터는 '엄마, 나 사랑해?’라는 남편의 혼잣말이 들려올 때마다 마음이 산산이 무너지지만, 결코 티 내지 않고 조용히 간다. 남편 곁으로.


그럼에도 가끔은 두렵다. 남편이 혹시나 또 다른 상처를 입게 될까 봐.


"한국 사람 아니세요?"


남편과 한국을 갈 때마다 듣는 말이다. 신기하게도 한국만 가면 사람들이 남편에게 끌리듯 다가와 먼저 말을 걸곤 한다. 식당에서도. 가게에서도. 심지어 포장마차에서도. '인상 참 좋으시네요'라며 너무도 당연하게 한국어로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가, 남편이 '아임 소리. 아임 낫 코리안'이라고 하면 적잖이 당황해하며 옆에 있는 나에게 묻는다.


“한국 사람 아니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프랑스요."

"프랑스요?"


이모들이 영락없는 칠팔십 년 대 시골 청년이라고 묘사한 남편의 지극히 토속적이고 순박한 외모와 프랑스는 이들에게 매칭이 잘 되지 않았기에. 어리둥절해하는 이들에게 한때는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도 했다.


"남편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어렸을 때 프랑스로 입양되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사람들 반응이 반반으로 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 들어야 하는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표정이 굳어지는 사람들. 차라리 이 부류는 괜찮다. 정작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다음 부류이다. 너무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갑자기 지나치게 친절해지는 사람들. 다행히 나보다 둔한 남편은 이런 미묘하면서도 선명한 변화들을 일일이 감지하지 못하지만. 나는 남편 대신 매번 상처 받는다.


그리고 한 마디 내뱉고 싶은 강한 욕망과 늘 싸운다.


'당신들보다 더 많이 사랑받으며 자랐고.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그런 미안한 표정 짓지 말아요.'


물론 이런 말들은 목구멍에서만 메아리로 맴돌다 마음의 깊숙한 골짜기로 사라진다. 상대도 결코 악의가 있어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어떤 말들은 뾰족한 손톱 없이도 마음을 긁고는 했다. 남편이 알면 혹이라도 상처 받을까 봐. 평소에는 표정을 전혀 숨기지 못하지만, 이때만은 제법 노련한 연기자가 돼서 재빨리 화제를 돌린다.


사실이다. 남편은 내가 아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다. 추운 겨울날 길 위의 노숙자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가게나 식당을 나오면서도 힘들어 보이는 점원에게 늘 힘내라고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사랑한다고 말하고, 내가 읽고 싶다고 지나치듯 말하는 책도 결코 지나치지 않고 사서 베개 밑에 숨겨 놓는다.


사랑이 인생의 가장 큰 결핍이었던 나는 남편을 만나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제는 사랑하는 이의 상처에 소리 없이 아파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어쩌면 이제야 사랑을 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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