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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Apr 26. 2020

책을 쓴다고 작가가 될까

좋아하는 브런치 작가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언제부턴가 서로의 글을 읽고 종종 댓글을 남겨주며 응원한지 일 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 가까이 느껴지는 분이다. 그녀의 글은 나에게만 하는 귓속말처럼 고요하고 다정한데 그 소곤거림이 지닌 부드럽고도 따뜻한 힘이 있어, 덧난 마음에 연고를 발라주는 거 같다.


에세이집을 내면 좋겠다고 혼자 생각하곤 했었는데, 그런 그녀에게 갑자기 따로 연락이 온 것이다. 많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놀랐는데, 그녀가 연락한 이유에는 더욱 놀랐다. 요약하자면 얼마 전 출간 제의를 받았는데 기쁘면서도 고민이 된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는데, 그녀는 상황을 설명한 후 묵직한 질문을 날렸다.


책을 출간하는 게 작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아닌지 궁금해요


그때부터 혼란이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이런 중대한 질문에 답을 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 가였다. 아무것도 아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자격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까지 글에서 보아온 그녀라면 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서 이런 질문을 하기까지 수없이 고민을 했을 텐데. 심지어 어렵게 메시지를 보내고도 과연 잘 한 행동인지 지금도 생각하고 있을 텐데. 그런 그녀에게 '저는 자격이 없으니 다른 분에게 물어보세요'라는 대답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에게 답하기 전까지 꼬박 하루를 고민했다.




나는 운이 좋아서 두 권의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첫 책은 원하는 출판사에 내가 먼저 투고를 했고 두 번째 책은 브런치 덕분에 출판사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우리집 거실 서재에 내 이름이 적힌 두 권의 책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지만, 여태껏 내가 저자이지 작가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은 없다. 브런치나 주변 가까운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책을 썼다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출판사에서 편집자가 '작가님'이라고 불러줄 때가 있고, 브런치에서도 브런치 '작가'라고 뜨지만 그건 나와는 거리가 먼 타이틀 같아 종종 민망하다. 사실 첫 책을 내기 전까지만 해도 출간하면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단순하게 믿었다. 하지만 첫 번째 또 두 번째 책을 내고 브런치에도 글을 쓰면서 깨달은 사실은, 아무나 작가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거였다. 이건 출간했는지, 몇 권을 출간했는지, 심지어는 책이 잘 팔렸는지 여부와도 별개였다.


어느 분야나 '작가'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로 다른 누군가를 끌어올 수 있는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 정신이니 작가의 세계라는 표현을 할 것이다. 내게 연락을 준 그녀의 글에는 자신만의 분명한 결과 색깔이 있고, 아직 다수는 아닐지라도 나를 비롯한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 글의 세계에 빠졌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출간 여부와 상관없이 그녀는 이미 작가이고, 덤으로 선한 영향력까지 지닌 좋은 작가인 것이다.


만약 책을 출간하는 게 앞으로 작가로 글만 쓰면서 살아갈 수 있겠냐는 질문이라면 또 다르다(물론 그녀의 질문은 이런 뜻은 아니었지만) 현실적으로 책을 쓴다고 해서 어떠한 명예나 돈도 기대하기는 힘들다.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책을 출간한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내 책이 많은 분들의 노력 덕분에 출간 직후 대형 서점 매대에 올라가고, 더 운이 좋아서 교보 문고 화제의 신간 같은 말 그대로 황금 자리에 앉는다고 해도 잠깐이다. 얼마 후면 넘쳐나는 다른 신간들에 서서히 밀리다 언제부터는 서점에서 재고를 찾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사실 책이 나오면 책은 저자에게 더 이상 글도 상품도 아니다. 책은 내 아이와도 같은 하나의 생명체가 된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책이 나오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이다. 돈도 명예도 아니다. 내 아이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뿐인데, 출판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책을 읽는 사람도 책을 사는 사람도 점점 사라져 가는 지금, 가슴으로 낳은 아이인 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은 너무도 희박하다.




그럼에도 왜 책을 쓰는 것일까?


책을 쓴다고 돈을 벌지도, 명예를 얻을 수도... 심지어 작가가 될 수도 없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몇 년 동안 피땀 들여 태어난 내 분신인 책이 순식간에 사라져 가는 말 그대로 가슴 찢어지는 과정을 지켜봐야 할 수도 있는데.

 

이 '그럼에도'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진짜들은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좋아서 하는 일. 그럼에도 행복한 순간.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 글 쓰는 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무런 외적인 보상도 없고 어쩔 땐 피곤하고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좋아서 하는 일.


하루 동안의 고민을 끝내고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 결론은 그 어떤 목적 없이, 그 여정을 그 자체로 충분히 즐기실 수 있으며. 또 지금 함께 하고자 하는 출판사가 그 여정을 소중히 여기고 함께 동행하고자 하는 곳이면 주저하지 말고 떠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모든 알지 못하는 곳으로의 여정에는 그만큼의 기쁨만큼 어려움과 슬픔이 있으니. 그것만 잊지 않고 떠나시면 긴긴 여정을 끝까지 가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녀는 멋진 여행을 할 것이다. 그녀 역시 '그럼에도'를 믿는 사람이니까. 그녀의 여정을 힘차게 응원한다!


Image par Free-Photos de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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