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형원 May 23. 2020

나와 같은 날 태어난 작가의 책  

2월 초 브런치를 통해 한 책방에서 연락을 받았다. 꿈꾸는 별 책방이라는 책방의 대표님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브런치를 통해 보고 싶었던 중학교 단짝 친구와도 십오 년 만에 연락이 닿았고,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아 <사하라를 걷다> 책이 탄생하더니 이번에는 신기한 책방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내 생일을 알고 싶다고 했다. 재밌지 않은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생일을 물어보는 게. 더 재미있는 건 생일을 물어본 이유였다.


꿈꾸는 별 책방은 하루하루 작가의 생일을 기념하는 블라인드 데이트 북 서점입니다.
'나와 같은 날 태어난 작가의 책'을 선물할 수 있도록 생일을 모아 가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책 『사하라를 걷다』를 꿈꾸는 별 책방에서도 소개하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작가님 생일을 안내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같은 날 태어난 독자들에게 소중한 선물로 오래오래 전달하고 싶습니다^^


책방을 찾아보니 본점은 광명에 있었고, 홍대 경의선 책거리에도 입점해 있었다. 책에 포장지를 씌워 가리고 책 제목이나 작가의 이름 대신 작가의 생일과 책의 한 문구만 써놓고 판매하는 특별한 책방이었다. 생일이 같은 작가의 책을 자신이나 그 생일을 맞은 지인에게 선물하는 블라인드 데이트 북이라니. 이거야말로 근사하고 두근거리는 콘셉트가 아닌가. 여태껏 다양한 책방을 봤지만 이런 콘셉트의 책방은 처음이었다.


@ 꿈꾸는 별 책방 홈페이지


새로운 책과 인연을 맺는 가장 비밀스러운 방식이라고 시작되는 책방 소개를 읽으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생일 혹은 기념일에 선물되는 책이 된다는 건 특별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날짜가 내 생일이라면 더욱더. 내가 쓴 책을 누군가 읽어주는 자체가 이미 선물이었으니, 이건 나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멋진 생일 선물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나와 생일이 같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나 역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인스타에 캘리를 전문으로 하시는 어떤 분이 <사하라를 걷다>의 구절을 너무 예쁘게 그림과 함께 캘리로 올려주신 기억이 났다. 전혀 모르는 분에 의해서 책이 또 다른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걸 보며 기쁘고 또 감사했었다.


그분에게 캘리 엽서 제작 주문을 의뢰했다. 책의 문구가 들어간 엽서에 축하 메시지를 직접 써서 드리면 책을 받는 분이 기뻐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연락을 드리자 그분은 기쁘게 작업을 응해주셨고, 직접 모든 엽서마다 일일이 그림을 그리고 캘리를 써서 만들어 주셨다. 그렇게 특별한 수제 엽서가 태어났다. 얼핏 보면 다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다르게 색깔이 칠해져 있다.


@ na_nim_gallery

그렇게 전주의 나님께서 하나하나 정성 들여 만들어주신 엽서들을 3월 초에 받았다.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만 해도 올봄에 한국 출장 계획이 있었기에, 직접 가서 드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코로나로 세상이 변했다. 모든 출장이 취소되면서 우편으로 보내려 했지만 그것도 곧 불가능해졌다. 엽서를 받자마자 봉쇄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처음 봉쇄 기간은 이주였기에 집에 갇혀 엽서를 쓰면서 곧 부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엽서는 결국 두 달 동안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주 봉쇄가 풀리자마자 우체국으로 향했다. 봉쇄 때문에 우체국에 가지 못했던 사람들이 몰려든 상황에서 한 번에 한 명씩만 들어갈 수 있었다. 결국 두 시간 가까이 기다린 후에야 부칠 수 있었다. 그래도 보낼 수 있는 게 어딘가 싶었다. 우체국 직원에게 얼마나 걸릴지 몰아보았다.


"지금은 기한이 없어요. 언젠간 갈 거예요"


나와 같은 날짜에 태어난 누군가가 블라인드 데이트 북 포장지를 뜯었을 때 책과 함께 이 축하 엽서를 보면 좋겠다는 나의 서프라이즈 계획은 무너지고 말았다. 우체국을 터덜터덜 나오면서 기운이 빠졌다.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겠다고 한 나의 모든 노력들은 수포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꿈꾸는 별 책방에서 온 메일을 보았다. 뵌 적은 없지만 몇 번의 연락으로 이제는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한별 책방지기님의 메일이었다. 감동했다는 말과 함께 받은 엽서들과 책이 전시될 책방의 사진까지 메일로 함께 보내주셨다. 엽서가 다행히 생각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것이다. 기쁘고 감사한 소식이었다.


한국은 상황이 많이 나아져서 책방에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조금씩 다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곧 생일인 분들도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많이 찾아오실 것 같아요.
작가님의 책과 따뜻한 글이 읽는 분들에게 행복한 여름을 선사하리라 믿습니다^^


@꿈꾸는 별 책방


전주에서 파리로 또 파리에서 광명으로 날아간 저 손 엽서가 누군가의 특별한 날에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나 역시 그 핑계로 멋진 분들과 연락을 하며 인연이 닿은 것에 감사한다. 또 두근거린다. 나와 생일이 같은 누군가와 책을 통해 블라인드 데이트를 할 생각에. 브런치를 2년 반 전에 시작했을 때만 해도 브런치에 쓴 글들 덕분에 이 책이 출간되고 또 이렇게 멋진 일들이 일어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는데.


책방 이름처럼 꿈꾸는 별이 되어가고 있다.



@ 커버 사진 by 꿈꾸는 별 책방




































작가의 이전글 세상의 착한 사람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