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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May 20. 2020

 세상의 착한 사람들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착한 사람들은 늘 자책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착한 게 미덕인 시대는 진즉 지났기에, 착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이 세상의 착한 사람들이 자책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착한 사람들은 (적어도 내가 만난 착한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이 착하지 않다고 확신하고. 그것도 모자라 끊임없이 자책하는 거였다.


어쩌다 한 번 남보다 나를 먼저 챙겨도,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닌가 자책하고. 어쩌다 용기 내 맞는 소리 하고도 상대방의 마음에 금을 내지는 않았는지 되려 아파한다. 남이 자신에게 한 잘못을 눈감을 이유는 수 만 가지지만, 자신이 남에게 한 한 가지 실수는 두고두고 용서하지 못하고 곱씹는다.


우리의 마음이 늘 깨끗한 거울 같을 수만은 없음에도. 마음의 호수를 들여보고 또 들여다보면서, 조금이라도 불순물이 보이면 호수 전체가 심각하게 오염된 듯 말한다.


티클이 태산처럼 보이는 건 그만큼 호수가 맑고 투명하기 때문이라는 건 모르고. 조그마한 티끌 한 점에도 한없이 부끄러워한다.


장영희 선생님의 에세이를 너무 좋아하지만, 선생님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저릿하다. 왜 그토록 자책하셨는지. 맑다 못해 빛나는 영혼인데. 왜 본인의 작은 모순까지도 남김없이 글로 드러내지 않고서는 못 견디셨는지. 그것도 모자라서.


왜 그러면서도 늘 부끄러워하셨는지.


반대로 요즘 유행하는 글을 보면 한결같이 착해서 문제라고 아우성이다. 심지어 착한 사람 병에 걸렸다고 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 세상에 착한 사람이 저렇게까지 많지는 않을 거 같은데. 저 책들이 베스트셀러인 걸 보면, 자신이 착하다고 아니 착해서 손해 본다고 억울해하는 이들로 넘쳐나고 있다.


세상이 제발 그냥 놔뒀으면 좋겠다.

착한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도 그만 자책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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