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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n 02. 2020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의 죽음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생텍쥐페리가 생의 마지막에 남긴 편지의 한 문장이다. 친구에게 이 편지를 쓰고 마지막 비행을 떠난 생텍쥐페리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1944년 7월 31일 지중해 상공에서 라이트닝 정찰기로 정찰 비행하던 중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글과 삶이 그리고 삶과 죽음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작가였다. 그의 삶은 그의 글의 소재였고, 그의 죽음 또한 그런 삶의 연장이었다.


세계 2차 대전 중 실종된 생텍쥐페리의 최후는 반세기 넘게 미스터리였다. 자살이라는 말도 있었고, 사하라 사막 어디에선가 그가 생전에 차고 있던 팔찌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돌며 어린 왕자의 뒤를 따라갔다는 설까지 있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21세기에 들어서야 밝혀질 수 있었다.


1998년 4월 마르세유 남동쪽 해저에서 어부 장 클로드 비앙코가 우연히 그물로 그의 이름이 적힌 은팔찌를 건져 올리고, 2000년에 바다 깊숙이 가라앉은 라이트닝 정찰기를 발견함으로써 독일 전투기에 격추되었음이 유력해졌다. 2008년 ,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조종사였던 호스트르트 리페르트가 자신이 생텍쥐페리를 격추했다고 고백하면서 격추설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60년 만에 발견된 생텍쥐페리의 격추된 비행기


여든여덟 살, 생에 끝에 다 달아서야 진실을 말할 수 있었던 호스트르트 리페르트는 아이러니하게도 생텍쥐페리의 팬이었다. 상대편 조종사가 생텍쥐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그는 진영에 돌아와서 생텍쥐페리의 실종 기사를 접하고서야 생텍쥐페리를 격추시킨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사실을 평생 비밀로 간직했고, 오랜 시간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고백했다.


"생텍쥐페리가 아녔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어요. 저는 생텍쥐페리의 모든 책을 읽었고 그의 책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는 생텍쥐페리의 비행기를 격추시킨 것을 평생 후회했다. 전쟁 중 자신이 죽인 사람이 그토록 좋아하는 작가이자 전 인류의 사랑을 받는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떨까. 하지만 생텍쥐페리는 죽임을 당한 게 아니다.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그 스스로 선택했다. 그가 평생 살아온 것처럼 말이다.




2차 대전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했을 때 생텍쥐페리는 뉴욕에 망명해있었다. 조국이 독일군으로부터 점령당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먼 이국 땅에 있다는 사실에 그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는 당시 영국에서 프랑스 해방 운동을 펼치고 있던 드골 장군의 정치적 이념에 동의하지 않았기에 그의 진영에 동참하지 않았는데. 그로 인해 드골 장군뿐 아니라 미국에 있던 다른 프랑스 인들로부터도 비겁자라는 모함을 받게 된다.


조국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죄책감과 미국 체류 중인 다른 프랑스인들의 모함으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던 생텍쥐페리는 그의 마지막 작품인 어린 왕자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의 유일한 도피처였다. 집필이 끝나자마자 그는 자신의 예전 부대에 전투 조정사로 합류하기 위해 배를 타고 북아프리카로 떠난다. 아무도 그의 비행을 승인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심지어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1944년 4월 그는 마침내 알제에서 원래의 중대에 복귀하는 데 성공한다. 정찰비행만 5회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는 이전 비행 사고의 부상으로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비행복도 입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생텍쥐페리는 누구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출동 순번이 아님에도 비행기를 타고 나가 정찰 활동을 하고 돌아오고는 했다. 여러 번 격추당할뻔했지만, 그 무엇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마지막 정찰비행 또한 마찬가지였다. 5회만 정찰비행을 한다는 조건으로 복귀했지만, 이번이 벌써 8번째였다. 생텍쥐페리에게 비행을 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비행 중 죽음을 맞았다.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마흔넷이었다. 생텍쥐페리의 실종 이후 영문판으로 먼저 출간되었던 <어린 왕자>는 불어판으로 번역되어 고국에 소개되었고 순식간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지난주 5월 27일은 생텍쥐페리의 실종된 비행기가 마르세이유 연안에서 발견되지 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프랑스 방송과 신문에서는 격추된 비행기의 당시 발견 정황을 다시 내보냈다. 그만큼 생텍쥐페리는 잊히지 않고 영원히 사랑받는 작가이다.




게다가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몹시 고마운 작가이기도 하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읽고 사하라 사막으로 걸으러 떠날 수 있었고. 그 여행기가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으로 선정되어 다음에 연재된 후, 출간 제안을 받아 두 번째 책인 <사하라를 걷다>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책이 나오면서 가졌던 가장 큰 소망 중 하나는 내 책을 읽은 이들이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읽고 싶어 했으면 하는 거였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 말고도 <인간의 대지>, <남방 우편기>를 비롯한 여러 주옥같은 작품들을 썼지만, 이 작품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어린 왕자가 동화 혹은 소설이라면, <인간의 대지>는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산문집이기에 생텍쥐페리의 삶과 철학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다.


책이 나오고 인터넷 서점에서 <사하라를 걷다>를 치면 함께 구입한 책 목록에서 <인간의 대지>가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는데. 그럴 때면 내 책이 팔리는 것보다 더 기쁘고 뿌듯했다. <사하라를 걷다>로 단 한 명이라도 생텍쥐페리의 보석인 <인간의 대지>를 만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책이 종이 낭비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대지>를 읽고 사하라 도보 여행을 떠났을 때 가이드는 사막 유목민 부족 출신의 젊은 뮤지션이었다. 맑고 투명한 영혼을 지니고 있던 그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느껴졌었다. 뮤지션으로 조금씩 성공하고 있었지만 사막을 떠나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막에서 지금처럼 음악을 하며 살고 싶다고. 그다음 해 브런치 독자분을 통해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생텍쥐페리도 유목민 뮤지션 하리파도 왜 이렇게 일찍 이 별을 떠나야 했었을까.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을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망명 중 미국에서 쓰면서 나는 생텍쥐페리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린 왕자가 지구별 여행을 끝나고 자신의 별로 돌아간 것처럼. 생텍쥐페리 역시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을 거라고. 그리고 확신한다. 그가 마지막 남긴 글처럼, 생텍쥐페리는 죽음의 순간에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았을 거라고.


이미 후회 없는 삶을 살았으니까.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맡은 역할을 자각할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그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평화롭게 살 수 있고, 또한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 생명에 의미를 주는 것은 죽음에도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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