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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n 04. 2020

글에 담고 싶지 않은 감정

모든 감정을 글에서만큼은 자유롭게 허용하고 싶다. 슬픔, 행복, 두려움, 기쁨 등의 모래알같이 무수한 감정들. 이 감정들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풍부한 어휘와 무릎을 탁 칠 정도의 표현력을 지니고 있지 못한 게 한탄스럽고.


그보다 더 자주 용기가 부족한 게 슬프지만.


다만 한 가지 감정은 글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싶다. 증오이다. 가끔 증오가 느껴지는 글들을 만날 때가 있다. 예민해서 그런지 그런 글들을 읽으면 가시로 찔린 듯 아프다. 증오의 에너지가 지닌 파급력은 놀랍도록 강하다. 그런 글들은 쉽게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세상을 증오의 주파수에 맞춘다.


자신을 비판이라고 주장하지만. 진정한 비판에는 옮고 그름에 대한 성찰과 그에 따른 행동이 따를 뿐이지 특정 대상을 향한 증오는 없다고 믿는다. 비판의 목적은 다 함께 나아지는 데 있지 파괴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증오는 파괴를 부른다. 수많은 인터넷 댓글들이 소중한 생명을 여러 앗아갔다.


증오가 담긴 글들을 읽을 때면 마음 한 켠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 든다. 증오뿐만 아니라 원망이나 미움 같은 감정들도 웬만하면 글에 담고 싶지 않다. 글뿐 아니라 삶에서도 붙잡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감정들을 읽는 이에게 전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박완서 작가님의 마지막 산문집 <세상에 예쁜 것>에서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녀의 눈엔 도저히 "인간 같이 않은 자들로부터 온갖 수모와 박해를 당하면서 그들 앞에서 벌레처럼 기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절을 버텨낸 힘은 언젠가는 저자들을 등장시켜 이 상황을 소설로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고.


그러나 박완서 선생님은 복수심이 사라진 후에야 글을 쓰실 수 있었다. "그때의 치 떨리는 경험이 원경으로 물러나면서 증오가 연민으로, 복수심이 참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소설을 쓸 수 있었다."


상상력은 사랑이지 증오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완서 선생님의 모든 글을 좋아하지만, 이 문장을 특히 좋아한다. 상상력은 사랑이지 증오가 아니라는 말씀. 선생님의 글은 아무리 참혹한 현실과 끔찍한 광경을 담고 있어도 그 아래 깊은 곳에서 사랑이 느껴진다.


미움과 증오, 원망과 복수심 같은 감정들은 칼끝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칼을 손에 쥐고 글을 핑계로 타인에게 휘두르고 싶지는 않다. 나 자신 그리고 글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분들과 가장 좋은 마음으로 마주하고 싶다.


소중한 사람을 만날 때면 가장 좋은 나이고 싶은 것처럼. 사랑하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처럼. 그리고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는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늘 가장 좋은 나의 모습이 나오는 것처럼.


글을 쓸수록 더 좋은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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