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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n 07. 2020

모두가 해피엔딩일 수는 없을까?  

다큐 <서칭 포 슈가맨>

*이 글에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70년대 한 가수가 있다. 소외된 이들의 도시. 가난한 자들의 도시.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바를 전전하며 자욱한 연기 속에 노래를 부르는. 아무도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를 노숙자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의 명성을 듣고 당시 잘 나가던 음반 프로듀서가 그의 공연을 보러 온다. 그의 음악을 듣는 순간 그는 확신한다. 밥 멀리를 뛰어넘을 천재 뮤지션을 발견했음을. 일사천리로 앨범 계약과 녹음이 진행되고 첫 앨범이 세상에 나오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가능성을 믿는 음반사는 그와 두 번째 앨범 계약을 맺는다. 많은 스타를 발굴한 프로듀서는 역사의 한 획을 그을 거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미국 전역 앨범 판매는 겨우 여섯 장. 앨범에 수록된 한 곡의 가사처럼, 음반사는 로드리게즈에게 크리스마스를 이 주 앞두고 계약 해지를 통보한다.


70년대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종 차별주의 정책으로 인해 국제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있던 보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철저하게 억압당하고 있었다. 모두가 혁명을 꿈꾸고 있을 때, 로드리게즈의 앨범이 들어오게 된다. 남아공에 있는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한 여자가 미국에서 이 앨범을 가져왔고, 앨범을 들은 사람들에 의해 그의 음악은 급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한다.


앨범은 남아공 모든 레코드 가게에서 판매되기 시작하고, 어딜 가든 그의 노래가 들렸다. 로드리게즈의 앨범 중 <슈가맨>은 금지곡이 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그의 음악에 더욱 열광한다. 그의 곡은 남아공의 변화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 의해 듣고 불리게 된다. 마침내 남아공에서는 인종차별주의 제도가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


남아공에서 롤링스톤보다 더 많은 앨범을 팔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쓴 로드리게즈는 어떻게 되었을까. 슈퍼스타가 되고 엄청난 돈을 벌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가 마약 중독자였으며 무대 위에서 분신자살을 했다는 소문만 돌고 있다. 앨범이 실패하고 공연 중 관객의 야유를 받자 좌절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게 사람들이 아는 그의 최후였다.




자신의 음악이 세계 반대편에서 전 국민에 의해 사랑받을 뿐 아니라. 한 국가의 운명을 바꾸게 되리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한 비운의 음악가. 다큐는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추적을 시작하고, 몇 년 후 기적적인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로드리게즈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자신의 성공과 자신의 음악으로 수십 년 동안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그 긴 세월을 하루하루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평생을 살았다. 수백만 장의 앨범이 팔렸는데 아무도 그에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앨범 판매 비용으로 단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인종주의 차별 정책으로 많은 국가들의 보이콧을 받으며 철저히 고립된 상태였다.


그러나 자신의 성공을 알지 못했다고 해서. 뮤지션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했고, 가난하게 일생을 살았다고 해서. 그는 불행한 인생을 살지 않았다. 가난했지만 평온하고 충만한 인생을 살았다. 그는 말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앨범을 냈기 때문에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었다고.


그의 주변인들도 그의 삶을 증언한다. 로드리게즈는 항상 남들보다 힘든 일을 자처해서 하고, 공동체가 처한 여러 문제에 깊이 참여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다고. 그는 심지어 자신의 성공을 여태껏 알지 못한 사실에 대해 분노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는 삶의 음유 시인이자 현자였다.


그런 그가 마침내 남아공에 가서 공연을 하게 된다. 수천 석의 좌석이 순식간에 매진이 되고. 사람들은 열광하고 눈물을 흘린다. 마침내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듣고 따라 부르던 노래의 가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후로도 그는 수차례 남아공으로 돌아가 성공적인 투어를 했다. 하지만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똑같이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번 돈의 대부분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며.




이 다큐를 처음 영화관에서 봤을 때를 기억한다. 너무 울다가 눈이 퉁퉁 부어서 영화관을 나왔다. 지난주 남편과 함께 다큐를 보다가 또 펑펑 울고 말았다. 진정한 아티스트란 로드리게즈 같은 사람이었다. 예술 이전에 삶이 예술일 수 있는 사람. 그 어떤 실패나 성공도 존재 자체를 바꿀 수 없는 사람.


이 다큐는 아카데미 최고 다큐멘터리 상을 받게 되고 로드리게즈는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그런 로드리게즈가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던 중 다큐 감독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말릭 벤젤룰 감독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이야깃거리'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 남아공의 한 레코드 가게에서 기적적인 이 이야기를 접하고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아무도 이 다큐에 투자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처음에는 사비로 감독과 제작자를 혼자 맞아서 시작한다. 심지어 중간에 제작비가 떨어져서 1달러짜리 앱을 깔아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부어서 만든 다큐멘터리는 전 세계 관객들을 감동시키고 국제 영화제를 휩쓴 후 아카데미  상까지 받게 된다. 감독은 유명해지고 그와 다음 작품을 하겠다고 제작사들이 줄을 선다.


이거야 말로 또 다른 해피엔딩이 아닌가?


하지만 말릭 벤젤룰 감독은 <서칭 포 슈가맨>이 아카데미상을 받은 다음 해 혼자 집에서 자살을 한다. 그것도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로드리게즈는 앨범이 나오자마자 실패를 경험하고, 일흔이 넘도록 남아공에서의 자신의 성공을 알지도 누리지 못했어도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는데. 게다가 말릭 감독 덕분에 지금은 마음껏 음악을 하며 전 세계 관객과 소통하며 살고 있는데 말이다.


그 사실을 알고 한참 멍했다. 왜 그랬을까. 감독은 단 하나의 작품 <서칭 포 슈가맨>을 남기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전부터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했다. 더 이상 이 다큐가 해피엔딩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모두가 해피엔딩일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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