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형원 Jun 09. 2020

백 년 나무에서 맞은 생일


이번 생일은 나무에서 맞았다.


깊은 숲 한가운데 백 년 넘은 나무 위에서. 몇 년 전부터 꿈꾸던 일이었다. 몇 날 며칠을 온전히 숲의 리듬으로 살아보기. 자주 가는 숲에서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나무 위에 통나무집. 백 년 된 나무가 집의 한 중앙을 관통하고 있었고, 나무를 해치지 않도록 친환경적으로 설계된 공간이었다.



이곳을 사진으로 보자마자 꼭 한번 와보고 싶어, 그 이후로 여러 차례 예약 문의를 했지만 매번 예약이 다 차 있었다. 그러다 남편이 이번 내 생일 날짜에 문의를 했는데 가능하다는 기쁜 회신을 받게 된 것이다.


생일인 월요일에 휴가를 받아 주말을 포함하여 이박 삼일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집은 숲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기차에서 내린 우리는 이박 삼일 동안 필요한 짐을 담은 배낭을 메고 여섯 시간 가까이 걸었다.


산티아고 길을 여러 번 걸은 경험이 있기에 7-8 킬로 정도의 배낭을 지고 하루를 걷는 건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왠 걸. 두 달의 격리로 체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절반쯤 걷자 어깨와 등이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배낭을 짊어지고 걸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다. 처음 오는 길이라 중간중간 조금 헤매다 보니 초저녁이 거의 다 돼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니 정말 동화 속에서 나올 듯한 나무 위의 통나무집이 숲 한가운데서 나타났다. 집으로 올라가는 입구는 좁고 가팔랐다.



집으로 올라가니 방 중앙에 위치한 나무 둥지가 새싹을 피우며 집을 관통하고 있었고, 집의 사방으로 숲이 보였다. 지친 우리는 짐을 풀기도 전에 바로 침대로 쓰러졌다.



하지만 누운 지 십 분도 안 돼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집이 흔들리고 있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남편을 쳐다보니 남편도 놀란 얼굴이었다.


“지금 우리 흔들리고 있는 거 맞지?”

“응. 맞아. 엄청 흔들리는데.”

“이러다 무너지는 거 아니야?”


우리의 걱정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조금 있으니 이번에는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곧 주인이 도착했고 괜찮은지 물어보자,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나무가 흔들리니까 집도 따라서 같이 흔들리는 거예요. 나무가 수분을 배출하면 같이 습기가 차고 또 나무가 숲의 향기를 뿜어내면 집에도 향기가 가득해져요.”


“나무가 살아있는 생명체라서 그래요.”


그제야 얼마 전에 봤던 나무 다큐의 내용이 떠올랐다. 나무가 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빛과 바람에 따라 끊임없이 몸통과 줄기를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그때 작고 귀여운 새가 테라스 문으로 얼굴을 잠깐 내밀었다 날아갔다. 단순히 나무 위에 머무는 것이 아닌, 숲 속의 수많은 생명체들처럼 나무에 공생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는 집이 흔들릴 때마다 나무와 함께 호흡하는 거 같아 오히려 좋았다. 나무는 우리를 맞아주고 있었다. 테라스로 나가는 문의 입구에는 ‘숲은 영혼의 상태이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근사한 문장이었다.


딱 하나 걱정했던 건, 잠귀가 예민한 편이라 잠잘 때 소리에 깨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 또한 기우였다. 밤이 되자 그토록 분주하던 숲은 깊은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새의 지저귐도 멈추고 나무도 더 이상 소리가 없었다.



밤 숲의 고요는 깊었다. 어딘가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는 숲의 고요함이었다. 다음 날 새벽, 닭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자 새들이 약속이나 한 듯 노래를 시작했다. 집 바로 위 나뭇가지에서 노래하는 새의 소리도 들렸다.


나무는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다. 새를 포함한 숲의 수많은 생명체들이 나무에 공생해 살고 있으며,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룬다. 산림은 지구의 폐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구는 나무가 있어 숨을 쉴 수 있다.


또한 나무는 죽지 않는 생명체이다. 인간이 자르거나 태풍 등의 외부 사고로 수명이 줄어들 수는 있지만. 나무 자체에는 정해진 수명이 따로 없다. 지구에는 바오밥나무처럼 수 세기의 역사를 지닌 나무들이 있다.


나무들이 나무들끼리 서로 소통할 뿐만 아니라 숲의 수많은 생명체와 소통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서로 소통하고 도우며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것이다. 나무는 죽으면서도 새 생명을 주고 떠난다.


그래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표현이 생기지 않았을까. 나무에서 생일을 맞아 이박 삼일 신세를 지니, 더 많은 빚을 지게 된 거 같다. 생일을 맞아 소원을 빌어 보았다.


나무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모두가 해피엔딩일 수는 없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