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형원 Aug 22. 2020

목적지가 사라지자 길이 보였다

10일간의 순례길을 마치고 종착지인 콩크(Conques)에 도착했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된 콩크는 산속에 위치한 아름다운 중세 마을이다. 우리는 이곳에 있는 12세기 상트 푸아 수도원에서 이틀을 머물 예정이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수도원의 고요와 침묵 속에서 기도로 길을 마무리하고 싶어 미리 계획한 일정이었다.

목적지라고 하지 않고 종착지라고 하는 건, 산티아고 길의 목적지는 단 한 곳 산티아고뿐이기 때문이다.

벌써 칠 년 전, 홀로 한 달 동안 팔백 킬로미터를 걸었을 때도, 수년에 걸쳐 남편과 함께 나눠 걸었을 때도. 길의 목적지는 늘 한 곳 산티아고였으며,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목적지였다. 이 길을 오르는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은 매년 같은 소원을 빈다. 무사히 그리고 마침내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것.


한 번에 도착하는 이들도 있고 여러 번에 나눠서 도착하는 이들도 있지만, 모두 산티아고에 도착해야지만 이곳 순례자 사무실에서 인증서를 받고 순례자로 공식(?)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적게는 한 달, 많게는 몇 달을 걸으러 전 세계에서 온 순례자들의 목적지이기에, 도착하면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길을 걷는 도중 다른 순례자들에게 이미 산티아고에 도착했었다고 하면 ‘정말?’이라고 되물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목적지에 이미 도달한 데 대한 부러움과 함께 ‘그런데 왜 또 걸어’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뒤섞여있었다. 우리 역시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다시 이 길을 걸을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세상은 넓고 삶은 짧고, 가고 싶은 곳은 흘러넘쳤으니까.


하지만 어느 시기가 되면 길은 우리를 불렀고, 그때는 길로 떠나야 한다는 걸 알았다.




팔 년 전. 약 일주일간의 휴가 동안 멋모르고 올라선 첫 산티아고 길에서, 순례자가 아니라고 오해받고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의 자원봉사 할아버지 앞에서 했던 선서. ‘나는 순례자이며 언젠가는 산티아고까지 갈 것이다’. 이 선서를 한 번도 아니고 이미 여러 번 지키고도 남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길 위에 있다. 왜일까? 걸으며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목적지가 사라지자 마침내 길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다는 걸. 산티아고라는 목적지가 사라지자 아이러니하게도 그제야 순례길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순례자 길은 처음 시작부터 산티아고까지 총 몇 킬로미터가 남았는지 계속해서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는데, 이 표지판이 더 이상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남편은 그답게 묵직한 한마디로 정의했다.

“진정한 길은 목적지가 없어.”

목적지가 사라지니 길만 잘 보이는 게 아니었다. 어떤 자세로 길을 걷고 있고, 어떤 마음으로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지. 일상에서 잘 포장되어 보이지 않던 나의 내면이 포장지를 벗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목적지가 사라진 길은 그래서 더 즐겁기도 하고 더 아프기도 했다.


길을 걷는 내내 글을 쓰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맨 처음에는 그저 책을 내고 싶다는 사심 가득한 마음으로 시작한 글쓰기였다. 막상 출간을 하자 그전에 내심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지만. 딱 하나 변한 게 있다면 글쓰기가 그 자체로 너무 좋아졌고,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졌다.

이제는 설령 또 책을 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계속 쓸 거라는 걸 안다. 글을 쓸 때 나 자신이 걸을 때처럼 진짜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즐겁기도 하고 더 아프기도 하지만. 걷는 만큼이나 오래오래 글을 쓸 것임을 직감한다.


산티아고 길의 순례자가 산티아고까지 가는 사람이 아닌, 걷는 길 자체가 목적인 사람이라면. 글 길의 순례자 또한 쓰는 글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람일 테니까.




화살처럼 10일이 지나갔다. 길에 오른 순간부터 시간 개념은 사라지고, 내딛는 걸음걸음이 모든 시간과 공간의 지표가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의 시간처럼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산산이 흩어지지는 않았다.


남편은 말했다

“길 위에서 걸을 때는 어떤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시간을 버리지 않는 느낌이야.”

남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걸을 때는 삶의 시간이 차곡차곡 정직하게 채워짐을 느낀다. 그건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쓸 때는 우회하지 않고 삶의 심장부를 뚜벅뚜벅 관통하며 걸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 시기에 길을 걷는다는 것. 그건 그전에 길을 걷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고, 다른 의미였다. 마스크와 손 소독제 및 거리두기와 함께한 산티아고 길. 육체적 거리는 멀어졌지만 마음의 거리는 오히려 가까워졌다. 변하고 있는 세상 아니 변해야 하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지금 내딛는 걸음이 헛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걸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온몸이 쑤셨다. 이제 끝이라는 걸 아는지 몸은 그동안 참아왔던 고통의 신음을 한꺼번에 내뱉는 거 같았다. 걸을 때는 견딜만했던 무더위도 걸음을 멈추자 푹푹 찌는 열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길에 올라서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왜 걸음을 멈추면 이토록 참기 힘들어질까.


10일 만의 휴식이었지만 남편과 나는 길을 바라보며 벌써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늘 그랬듯 언제 다시 떠날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인생이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기에. 우리는 다시 떠날 것이다.


길이 부를 때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폭풍우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