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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Aug 13. 2020

우리는 폭풍우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폭풍우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할 때쯤에는 사라져 주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도 품어봤지만. 희망은 역시 우리를 배반하지 않았다. 우비를 꺼내 입고 배낭에도 우비를 씌웠다.


번개는 무시무시한 천둥과 함께 번쩍이며 연달아 하늘을 갈랐다. 제아무리 담대한 척을 해도, 번개가 사방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비명도 함께 튀어나오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툭툭 빗방울이 우비를 흐르기 시작했다.


폭풍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길은 하나였고 오늘 가야 하는 목적지까지는 여전히 십 킬로미터가 남아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걷기 시작했지만 벌써 오후 세시였다. 비가 멈추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폭풍우를 통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양 통과해야 한다면 멋지게 통과하고 싶었다. 쫄지말고 보란 듯이 당당하게. 산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는 할아버지 순례자가 “괜찮아? 너무 힘들지 않아?” 물어볼 때도 웃으며 여유롭게 답했다. “괜찮아요. 시원한데요.” 진심이었다. 비를 맞는 게 좋을 만큼 너무 더웠다.




우리가 길로 떠나기 직전, 기상청은 프랑스 전역에 약 일주일간의 폭염을 예보했다. 안 그래도 막상 다시 걸으려 떠나려고 하니 두려워지던 차였다. ‘차라리 잘 됐다. 이 핑계로 떠나지 말까’라는 얄팍한 마음이 들었다.


두 달간의 국가 봉쇄로 집에 갇혀 있으면서,  다음 휴가 때는 꼭 프랑스에 있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리라 결심했다. 산티아고 길을 걸은 횟수만 다섯 번이지만. 정작 살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단 한 번도 걸은 적이 없었다.


프랑스에 있는 산티아고 길도 아름답기로 유명했지만, 늘 스페인으로 걸으러 떠났다. 올해 여름휴가는 한국에도 갈 수 없고, 유럽 다른 국가들도 갔다가 자칫하면 못 돌아올 수 있었기에 프랑스 안에서 떠나야 했다.


하지만 봉쇄가 풀리고 서서히 일상이 돌아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의 안일함에 젖어들었다. 그러면서 여름휴가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찾기 시작했다. 하반기에는 눈코 틀새 없이 바쁠 텐데 좀 쉬어야지.


그러다 한 달 전 아침.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자다가 눈이 번쩍 떠졌다. 다시 무슨 일이 일어나서 집에 또 긴 시간 동안 겪리 된다면 혹은 내일 당장 죽는다면. 편안한 휴가 대신 길을 택하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을까.


남편에게 말을 하자 내심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시 걷고 싶어 하던 남편은 기뻐했다. 쇠뿔도 단숨에 빼랬다고 길 위의 숙소들에 전화를 돌려서 문제가 없는지 확인을 했다.


순례길 숙소들은 코로나 예방을 위해 기존보다 훨씬 더 적은 인원만을 받고 있었으며. 온 그룹마다 방을 따로 배치하고, 식사도 서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서 먹게 하고 있었다. 너무도 당연한 조치였지만, 이전의 산티아고 길과는 전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코로나로 완전히 달라진 세상에서 산티아고 길이라고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게 더 웃긴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시기일수록 순례길이 줄 수 있는 어떤 메시지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 떠나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길을 떠날 날짜가 다가오자 슬슬 안이한 마음이 아지랑이처럼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내 집이나 마찬가지인 배낭을 메고 걷는다는 건, 여러 번 했어도 여전히 미친 짓이었다.


사십도 가까운 폭염이 다가온다는 소식을 듣고 옳다 싶어 손뼉을 쳤다. 바로 이거다! 안 갈 핑계. 지난여름에 폭염을 겪은 경험으로 봤을 때, 집에만 있어도 폭염은 고통 그 자체였다. 하물며 폭염 속에서 매일 하루 종일 걷는 것. 그건 고통이 아닌 지옥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떠나기 전전날 새로운 핑곗거리가 추가되었다. 우리가 가는 지역에 일주일 내내 폭풍우가 불어 닥칠 예정이란다. 폭염과 폭풍우. 둘 중 뭐가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꽝임에는 불명했다.


빙고! 이거야말로 가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아, 나는 순진했다. 까미노는 늘 종합 선물세트를 선물하고는 했는데. 역시나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걷기 시작한 첫날 아침. 오전 여덟 시라고는 믿기 힘든 삼십도 가까운 무더위에 발을 띠자마자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이럴 때일수록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땀을 닦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적어도 비는 안 오겠다.” 웬걸. 오후가 되자 어디선가 하늘을 찢는 천둥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구름 조금 낀 것 빼고는 멀쩡했다.


바람도 어디선가 불어와 이제 좀 살 거 같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했던가. 폭풍우만 휘몰아치지 말고, 더위만 이대로 조금 사그라들었으면. 하지만 얼마 안 있어 하늘이 뚫린 것처럼 사정없이 비가 내리쳤다.


순식간에 팬티까지 흠뻑 젖고 한 발자국도 더 나가기 힘든 상태가 찾아왔다. 천둥을 동반한 번개가 동에 번쩍 서해 번쩍거릴 때, 갑자기 번개 맞아 사망한 이들의 안타까운 부고 기사 헤드라인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산티아고 길 위에서 번개 맞아 사망’ 잠깐 이런 기사로 실리는 상상을 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길에서 번개 맞아 죽었다는 순례자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오전에는 무덥고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여서 기상 예보가 틀렸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오후가 되어 우리가 가야 하는 산 방향으로 치는 폭풍우를 보았다. 아 오늘도 피해 가기 힘들겠구나.


무슨 오기인지 불끈 결심이 섰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저 폭풍우를 당당히 뚫고 나가기로. 그 모든 변명과 핑계의 유혹에도 또다시 이 길 위에 있는 것처럼.


산속으로 들어가자 빗줄기는 서서히 거세지다니 마침내 어제처럼 사정없이 우리를 내리쳤다. 비에 우박까지 내리자, 비를 맞는 건지 그냥 맞는 건지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빗물이 뼛속까지 송곳처럼 파고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몸이 덜덜덜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잠시 나무 밑에 피했다. 조금은 나았지만 여전히 누군가 머리 위에서 얼음과 물을 바가지로 퍼붓는 것 같았다.  


남편은 걱정 한 가득한 얼굴로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괜찮아’라고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정말 괜찮았다. 폭풍우는 지나갈 것이고, 빗줄기의 기세가 잠시 꺾이면 우리는 그 새를 틈타 이곳을 다시 걸어 나갈 테니까.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모든 기억은 너무도 그리운 추억이 될 테니까. 그렇게 우리는 삶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폭풍우를 미리 피하지 않을 테니까.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리며. 폭풍우 속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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