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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Sep 30. 2020

과일 하나를 딸 때도 필요한 마음

요즘 일요일마다 편집장님이 법륜 스님의 온라인 일요명상 링크를 보내주고 있다. 그녀가 고맙게도 매주 보내주는 온라인 명상은 실시간으로 한 시간 가량 진행이 되는데. 처음에 사람들이 채팅창에 질문을 올리면 즉문즉설 형식으로 법륜 스님이 대답을 해주시고. 나머지 삼사십 분 정도는 스님을 따라 각자 고요 속에서 명상을 한 후, 사람들이 채팅창에 올린 소감을 보고 스님이 말씀하시며 마무리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된다.


코로나로 인한 두 달의 자가격리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암울한 시기를 겪으면서 명상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기에. 웬만하면 이때만큼은 다른 일정을 잡지 않고 해보려고 한다. 물론 아직은 십 분만 지나면 온 다리와 발에 쥐가 나기 시작하며 평온했던 마음도 일렁이는 걸 느끼지만. 그래도 이때 했던 걸 발판 삼아 유독 마음이 어수선한 날에는 단 십 분이라도 명상을 하고 잠자리에 드는데. 그런 날은 밤이 훨씬 평안하다.


한 달 전 일요일에도 바닥에 쿠션을 깔고 앉아, 명상 시작 전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올리는 질문들에 스님이 하시는 답변을 듣고 있는데. 이날은 한 외국인이 농사에 관한 질문을 했다. "아내와 저는 농사를 짓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농부셨고, 농사는 힘이 들지만 저에게 큰 평화와 만족을 줍니다. 어떻게 하면 농사와 마음 챙김을 부합시킬 수 있을까요?” 스님은 아래와 같은 답변을 해주셨다.


농사짓는 것을 명상하듯이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명상이란 앉아서는 호흡을 관찰하고, 움직일 때는 자신의 동작을 관찰하는 것이잖아요. (...) 농사를 지을 때도 그와 똑같이 자신의 동작을 관찰하는 겁니다. 고추를 딸 때는 고추를 따는 손에 대해 알아차림이 있고, 고추를 만질 때는 손의 감각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굳이 노동과 분리해서 명상을 할 필요가 없고, 생산 활동과 결합한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 노동을 놀이 삼아하게 되면 따로 휴식이 필요 없어지게 돼요. 알아차림을 유지하면서 노동을 하게 되면 생산 활동과 명상을 일치시킬 수 있기 때문에 소비적인 명상이 아니라 생산적인 명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법륜 스님의 온라인 일요명상 중


스님의 답변을 들으면서, 나는 이십 대 초반, 호주의 한 농장에서 일했을 때가 떠올랐다. 벌써 십 년도 훨씬 넘은 일이지만 다시 떠올려도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했다. 그때 나는 영어권으로 연수를 가고 싶지만 비싼 영미권 어학연수를 갈 집안 형편이 되지 않던 많은 젊은이들처럼 호주로 워킹 헐리데이를 떠났다. 처음 호주에 도착했을 때는 말을 알아듣는 것도 힘들었는데. 그 상황에서 구할 수 있는 일은 결코 많지 않았다.


운이 좋아 호주 빅토리아 주의 가장 큰 농장에 계절 일꾼으로 취직이 되었다. 과일 수확 철에 내가 할 일은 높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나무에서 과일을 따는 일이었는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과일을 따서 캥거루 백에 담고 내려와서 그날 내가 맡은 구역에 놓인 커다란 나무통을 채우는 일이었다. 통을 다 채우면 새로운 통을 가져다주었다. 통을 채우면 채울수록 수입이 올라가고. 반대로 채우는 통이 없으면 땡전 한 푼도 없었다.




농장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사다리를 어떻게 고정하고 올라가고 내려가야 하는지를 비디오를 보며 교육을 받았다. 떨어져서 목 부러져 죽은 사람도 있다는 끔찍한 말과 함께. 사다리의 높이와 과일을 잔뜩 몸에 담았을 때 무게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그 농장에서도 더 이상 이 사다리를 쓰지 않고 훨씬 더 안전한 기계로 바뀌었다. 하루 종일 사다리 위에서 일하는 게 무섭긴 했지만. 그거 빼고는 나름 만만해 보였다.


머리를 쓰는 일도 아니고. 그냥 사다리에 올라가서 열린 과일들을 따서 내려오는. 말 그대로 단순노동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오후 네시까지. 찌는 태양 아래 노동을 하느라 육체가 고되다는 거 빼고는, 특별히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하루에 몇 통을 채워 얼마를 벌어야지라는 계산과 함께. 많이 따기만 하면 되니 금방 돈을 벌 거 같았다. 그런 내가 얼마나 교만했는지 깨닫기까지는 채 삼일도 걸리지 않았다.


며칠 동안 하루 종일 일해서 통 하나를 채우는데도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농장에 숙식비로 내는 일정한 금액이 있는데. 원래는 일당에서 제해져야 하는 그 돈이 자칫하다가는 내 호주머니에서 나갈 상황이었다. 돈을 벌로 왔다가 돈을 잃을 상황이 된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빨리 여기를 떠나 다른 일자리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해서 돈을 벌어볼 것인가. 수중에 남은 돈도 얼마 없었기에 더 절박했다.


그러다 저녁을 먹으로 농장 일꾼 식당에 들어왔는데, 저쪽에 혼자 앉아있는 한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에 다섯 통 이상 채우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와 내가 뭐가 다른지 보려고 일하는 도중 유심히 관찰도 했지만. 하루 종일 너무도 편안한 표정으로 과일을 따는 그가 나보다 더 열심히 노력한다고 보이지도 않았다. 내가 모르는 그만의 비법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며. 나는 저녁이 든 내 쟁반을 들고 그의 앞에 앉았다.


그에게 여태껏 한 통도 채우지 못했다고 털어놓으며.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딸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는 그런 나의 솔직함 혹은 낯선 그에게 먼저 다가와서 물어보는 용기가 가상했는지. 따뜻한 미소로 물었다.


"너 과일 따면서 무슨 생각 해?"


"무슨 생각이요?"


아니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딸 수 있는지 비법을 알려 달랬더니. 이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 싶었지만 그의 깊은 눈빛은 너무 진지했다. 내가 과일 따면서 무슨 생각하지.


"너 과일 따면서 계속 딴생각하지 않아?”


순간 찔렸다. 되돌아보니 정말 몸은 과일을 따고 있었지만 마음은 계속 딴 곳에 있었다. 머리를 쓰지 않는 일이라고. 나도 모르는 새 지금 하는 일을 업신여기며. 실컷 딴생각을 하면서 몸만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그의 말이 맞다고 순순히 자백하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잘 들어. 딴생각하면 안 돼. 오직 따는 과일 하나하나에만 정신을 집중해야 해. 지금 따고 있는 과일이 네가 좋아하는 어떤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과일과 과일을 따는 그 동작과 행위 자체에만 정신을 기울여야 해."


그날 그와의 짧은 대화는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있어 가장 강력한 충격이자 배움 중 하나였다. 그 어떤 일도 온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머리를 쓰는 일과 몸을 쓰는 일이 따로 있지 않으며. 덜 중요하거나 더 중요한 일도 없다는 것을. 허투루 할 수 있는 일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일에는 그 일을 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부끄러움과 함께 배웠다. 




그때 그는 명상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아마 본인도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겠지만.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가 자신의 동작에 대한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노동. 명상하듯 과일을 땄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노동 중 그의 얼굴이 그토록 편해 보였고, 육체적으로 고된 노동 후에도 즐거워 보였다는 것을.


나는 그다음 날 한 통을 거뜬히 채웠으며, 날이 갈수록 더 많은 통을 채우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과일이 복숭아 밖에 안 남게 되자,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온몸에 나던 두드러기 때문에 그만둬야 했지만. 그때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시기를 보낼 수 있었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지금도 가끔 그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땀 흘려 일한 후 숙소로 돌아와 유일하게 나오던 찬물로 샤워를 할 때 느끼던 살 떨리는 행복감. 저녁을 먹고 석양빛으로 물들어가던 고요한 농장을 산책할 때의 평온함. 내가 그날 땀 흘린 노동의 대가만큼 받던 돈의 뿌듯함.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노동을 하고 일찍 자던 생활의 단순함. 오직 그 순간만이 존재하던 충만함.


하는 일에 대해 마음이 소흘 해지려고 할 때면 그때를 떠올리곤 한다. 지금 하는 일의 대부분은 농장에서처럼 하루가 끝나면 가득 찬 통의 개수로 마음의 작용이 반영되던 그때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서 어쩌다 가끔씩은 그냥 대충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들 때도 있지만. 결국 언젠가는 마음을 쓰는 만큼이 결과로도 드러난다고 믿기에.


추수의 계절 가을이 왔다. 봄에서 여름 동안 가꾼 곡식과 과일들이 익어 이제 곧 수확을 거둘 계절이 되었음을 뜻한다. 아직 수확할 만큼 가꾸고 익은 과일들이 삶에서 많지는 않지만. 과일을 딸 때 가졌던 마음가짐으로 모든 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더불어 몸은 멀리 있지만 마음은 늘 가깝게 느껴지는. 시간을 내서 내 글을 읽어주시고 늘 벅찬 응원을 해주시는 고마운 독자분들께도 보름달처럼 환하고 밝은 추석 보내시기를 마음 깊이 빌어본다. 나처럼 코로나로 한국에 갈 수 없는 분들에게도. 한국에 있어도 가족을 보러 갈 수 없는 분들에게도. 힘든 시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다.


이야기가 있어 우리는 끝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지금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가 씨앗이 돼서 언젠가 풍성한 과일로 열릴 거라고. 그때는 모든 좋은 이야기들의 끝처럼 삶을 조금 더 다정하게 껴안을 수 있을 거라고.



Image by Jill Wellingto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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