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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Oct 12. 2020

눈물의 비대면 마음 나누기

법륜 스님의 온라인 일요명상을 보내주는 편집장님의 권유로 지난달부터 육 개월짜리 온라인 교육 과정도 참여하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그렇고. 그녀가 여태껏 나에게 해보라고 권했던 것들은 막상 해보니 꽤 좋았어서. 그녀만 믿고 이 교육 과정도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그 어떤 온라인 학위 과정 못지않게 빡셌다.


이렇게 빡센지 미리 알았다면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와 어떡하겠는가.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야지. 두 시간이 넘는 법륜 스님의 강의를 미리 듣고 와닿은 구절 및 강의 노트에 있는 질문에 답변을 적은 후 월요일 저녁마다 구글 미트로 조원들과 나누기 시간을 갖는데. 진행을 맡은 자원봉사자 분과 그분을 돕는 또 다른 자원봉사분 그리고 이 과정에 등록한 여덟 명의 조원들이 있다.


코로나 이후로 줌 회의는 수차례 하고 있지만.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과 매주 화면으로 만나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나눈다는 일은 무척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연령대도 다 다양하고, 이 열 명의 사람들이 어떤 공통점이 있어서 내 화면 안에 모두 떠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하는 것만 들어도 이 정도로 서로 다 다르기도 힘든 구성이었다.


직접 만나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해도 서먹함이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법인데. 화면으로 처음 만나 매주 온라인으로만 얼굴을 보는 이들과의 비대면 만남이. 초반에는 다른 우주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무슨 만남은 또 이렇게 자주 있는지. 매주 월요일 저녁에 나누기를 하는 것도 모자라 한 달에 한 번씩 조별 활동도 한다고 했다. 처음에 이 말을 듣고 불평이 절로 튀어나왔다.


'직접 만나지도 못하는데 뭐 이렇게 자주 봐'




게다가 참여 인원이 많다 보니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마이크를 꺼야 하고. 정해진 시간이 있다 보니 늘 말하는 시간의 제약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나누기라기보다는 발표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하지만 몇 차례 수업을 하며 짧은 이야기지만 거기에서 비치는 조원들의 삶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하며 어느덧 수업 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신기한 게 똑같은 주제라도 단 한 명도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법륜 스님은 첫 오리엔테이션에서 그래서 나누기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모두 다르게 보고, 다 다르게 생각을 하는 거. 그게 바로 세상이라고. 노트북 작은 화면에 열 개의 다른 행성이 둥둥 떠있는 느낌이었다. 이번 주말 저녁에는 매달 있는 조별 활동 시간을 가졌다. 주제는 마음 나누기였다. 마음 나누기 시작 전에 법륜 스님과 묘당 법사님의 영상을 봤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마음속에 꽁꽁 묶어둔 것을 내놓으면 가벼워져요. 가벼워져야 길이 보이고, 마음을 내어놓으면 돌이켜져요."


강연 후 잠시 명상 시간이 있었다. 명상 중 지난 일에 대한 그때의 마음을 느낀 후 한 줄로 기록하라고 했다. <그때 내 마음은 00 했습니다>. 기록한 후 어떤 이유로 그때 마음이 그랬었던 건지 조원들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오후 내내 쓰고 있던 글이 있어서 그 글에 나온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남편과 헤어진 후 한국에 들어와 있다가.  몇 년 후 남편을 만나기 위해 다시 파리에 와서 남편과 재회했을 때의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마음을 단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여전히 깊숙이 남아있던 이별의 상처와 아픔. 이 사람만이 나의 구원이라는 확신과 희망. 그때 헤어지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와 절망.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만나기란 불가능해 보이던 그 막막함. 남편이 몇 년 만에 만난 나를 보자마자 따뜻하게 꼭 껴안았을 때. 내 마음속에는 그런 수많은 복합적인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적었다.


그때 내 마음은 복합적이었습니다.




그때의 내 이야기를 하고 다음 조원분의 차례가 되자 그녀는 '그때 내 마음은 슬펐습니다'로 입을 뗀 후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눈가는 어느새 빨개지더니 곧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평소에 늘 평온하고 침착한 모습만 보이던 그녀여서 우리 모두는 놀랐다. 그녀는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늘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거든요...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주로 듣는 쪽이에요. 이것도 처음 말하는 거예요...삼 년 전에 남편이 죽었는데...그 이후에 친정 엄마가 돌아가셨거든요...그때 정말 너무 힘들었는데..명상하면서 그때가 떠올랐어요."


화면을 보니 모두의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어느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조원들은 안경을 벗고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저렇게 힘들으셨으면서 어떻게 삼 년 동안 한 번도 말하지 않고 속으로만 삼키고 있었을까. 그녀가 삼 년 동안 아무에게도 티내지 못하고 견뎌야 했던 슬픔의 무게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마지막 차례는 방금 전의 이야기에 가장 많은 눈물을 보이셨던 진행 자원봉사자분이었다. 그녀는 울먹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도 남편을 잃었을 때가 떠올랐어요...저희 남편은 크리스마스 다음날 돌아가셨거든요...병원에 입원해 계셨었는데..제가 항상 퇴근해서 병원에 들렸어요..그날은 크리스마스 날이라고 병원에 있다가 집에 일찍 들어갔는데... 그다음 날 새벽에 남편이 돌아가셨어요...그럴 줄 알았으면 크리스마스 날 남편과 더 오래 있을 걸 후회했어요..."


화면은 이제 눈물바다가 되었다. 눈물을 펑펑 쏟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분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브런치 작가님 화양연화님의 글에서 줌으로 진행된 작가님의 책 강연 중 모두 눈물바다가 됐다고 했을 때. 어떻게 서로 화면으로 만나 그토록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이제야 그 상황이 온전히 마음으로 이해가 되었다.


"명상을 하면서 그때가 떠오르며 남편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몇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이렇게 보고 싶고 슬픈데... 사람들은 시간이 지났으니까 조금은 괜찮아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저도 다른 사람들한테 힘들다고 말하는 성격도 못 되고..또 말하면 다들 걱정하니까... 말 못 하고 사는데 이 자리를 통해 여러분 덕분에 이렇게 말하게 되네요."


우리는 여전히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지만. 정작 눈물을 한바탕 흘리고 이야기를 끝낸 그녀와 다른 조원은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은 듯한 한결 편안한 표정이었다.


마음을 내놓고. 그 내놓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이해해 주는 일.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손바닥만한 화면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마음만 있다면 말이다.


우리는 각각의 다른 행성들이었지만. 마음이라는 거대한 우주로 연결되어있었다.


그렇다고 비대면 마음 나누기에 전혀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대면이었다면. 코로나가 없었다면. 끝나고 그녀들을 꼭 안아줄 수 있었을 텐데. 만약 그럴 용기가 없었더라도. 정해진 시간상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따뜻한 핫 초콜릿을 훌쩍이며 깊은 밤이 올 때까지 들어줄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진한 여운 속에 홀로 남겨진 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기어이 글로 남기는 이 새벽. 글을 쓰는 내내 그녀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슬픔을 잠시라도 털어놓고 조금이라도 가벼워진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을까. 아니면 미처 다 내보이지 못한 그리움에 오랜만에 마음껏 펑펑 울고 있을까. 무엇이 되었든 그녀들의 오늘 밤이 평온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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