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랬듯 즉흥적으로 떠나게 되었다. 바다란 그런 곳이었다. 계획해서 갈 수 없는 곳. 계획해서 가면 안 되는 곳. 가고 싶다 노래 부르면서도 늘 ‘언젠가'로 미루는 곳. 그러다가도 마음이 동해서 당장이라도 떠나게 되는 곳. 푸른 바다만 보면 막혔던 속이 시원하게 뚫어질 거 같다가도. 돌아올 때는 떠날 때 보다 더 큰 의문을 안고 오는 곳. 낭만이자 모순의 목적지이며. 포근하면서도 매몰차게 나를 당기고 미는 푸른 그리움으로.
그렇게 노르망드 지방의 한 항구 마을로 당일치기 바다 여행을 떠났다. 관광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관광객이 없는 것도 아닌. 작은 항구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운치가 빠졌지만 항구 도시라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파리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 아 그리고 바다. 바다가 없다면 굳이 떠날 이유도 마음도 들지 않을 그곳으로 가는 길에, 그리운 바다를 떠올렸다. 진짜 가고 싶은 바다는 당장 갈 수 없는 바다뿐이었다.
동양의 나폴리 통영의 바닷가. 버스킹 노래 위로 갈매기가 시원하게 날아다니는 부산의 해운대. 검은 돌 위로 짙은 파랑이 넘실대던 그 겨울 제주 바다. 전날 마신 소주를 다 깨지 못하고 허름한 민박집에서 울렁이며 일어나 일출을 보던 속초 바다. 모두 지금처럼 충동적으로 떠났던 바다였다. 혼자 혹은 함께. 또는 혼자가 되기 위해서. 바다만큼이나 넘실대던 수많은 소주잔을 비우며. 추억이 될 이야깃거리들을 안주 삼아.
바다가 밤만큼 깜깜해질 때까지.
그리운 그 바다는 아니었지만, 간만에 보는 바다에 몸에 전율이 오며 살며시 떨리는 게 느껴졌다. 거의 아무도 없는 한산한 바닷가와 등대와 방파제. 완연히 가을이 되었다고 그렇다고 여름의 끝자락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날씨였다. 조금 덥기도 조금 쌀쌀하기도 한 모호함 속에서 우리는 걸치고 있던 재킷을 벗고 해변에 누웠다. 하얀 자갈 위로 몸을 눕히고 바다를 쳐다보았다. 가만히 있으니 잔잔한 파도도 넘어올 것처럼 들렸다.
그렇게 반나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끙끙 앓기 시작했다. 다행히 코로나가 아니라 환절기 독감이라고 했지만. 이렇게 아플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루 종일 고통스러웠다. 제대로 단단히 걸렸는지 일주일이 넘도록 떨어져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프니 삶이 무겁게 느껴졌다. 파도타기를 하다 바다 깊은 곳으로 빠져 허우적거리며 연거푸 물먹는 느낌이었다.
출근을 하고 하루 종일 해야 할 일을 하고 그닥 친하지 않은 직장 동료의 생일파티까지 다녀온 늦은 저녁.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한 남자가 지하철 플랫폼 바닥에 엎드려 온몸을 비틀며 신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아무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노숙자이거나 취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지, 하며 고개를 드는데 눈앞에 비상 버튼이 보였다.
누군가 도와줄 거라 믿고 그 버튼 아래 누운 게 아닐까 싶었다. 버튼을 누르자 신호음이 가더니 역 직원과 연결이 되었다. 상황을 설명하자 직원은 알았다고 하고 잠시 후 나타났다. 직원은 그에게 "다치셨어요? 어디 아프세요?"라고 물었고. 그는 들릴 듯 말 듯한 가느다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약해요.” 그는 아파요, 다쳤어요,라고 하지 않았다. 약해요,라고 했다. 직원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물었다. "일어나실 수 있으시겠어요?".
"아니요. 나는 약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파서 평소보다 훨씬 더 예민해진 탓도 있겠지만. 약해서 일어날 수 없다는 저 말이 파도처럼 마음을 덮쳤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날이었으니까. 약하다고. 일어나고 싶지 않은. 포기하고 싶고 핑계 대고 싶은. 그럼에도 끝끝내 그럴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자신이 원망스러운 날이었으니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듯. 흠뻑 앓아야만 넘어가는 계절도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또 가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