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출근해서 밤사이 소복이 쌓인 메일을 열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리셉션에서 방금 전에 보낸 메일이 보였다.
‘마담 방한테 전화가 왔었어. 네가 없어서 번호를 남겼어.’
메일이 온 시간을 보니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조금만 일찍 출근했으면 전화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짧은 심호흡 후 번호를 눌렀다. 몇 번 신호음이 울리더니 자동 응답기에서 고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음성 메시지를 남길까 잠깐 고민하다 대신 휴대폰을 들어 문자를 보냈다.
얼마 후 휴대폰이 사르르 떨리면서 그녀의 이름이 떴다. 나는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며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와락 외치고 말았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이 처음 목소리를 듣는 자리에서. 나의 반가움은 도가 넘은 친근함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는 뉘우침은 한 발자국 늦게야 들었다.
그녀는 잠시 놀란 듯했지만 다행히 기분이 나쁘시지는 않은 듯했다. "너무 반가워요. 저는 화백님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느낌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인연이 맺어질 줄은 꿈에도 상상을 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녀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의 그림과 함께 매 여름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 시댁 시골집에 갔을 때 거실 중앙에 한국어로 적힌 글과 그림이 각각 한 장씩 걸려있는 걸 보았다. 의아한 표정을 짓자 시어머니는 추억에 잠긴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방혜자 화백의 작품이야. 한국에서 아이들을 입양했을 때 아버지가 선물해 주셨어."
시부모님이 한국에서 남편을 포함한 세 명의 아이를 입양하자,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시할아버지는 파리에 사는 한국 화백을 수소문해서 그림 두 점을 주문했다. 한 그림에는 한국어로 글도 부탁했다. 이메일이 없던 시절이라 화백님과 편지로 서신을 주고받으며 연락을 했다. 그렇게 주문한 그림을 시부모님 가정에 선물로 주었고. 시부모님은 그 그림들을 세 명의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백님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소녀같이 순수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참 재미있네요."
그때 아이들은 모두 잘 자라서 자신의 행복한 보금자리를 튼 성인이 되었고. 방혜자 화백님은 세계 속에서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한 분이 되셨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기획한 다큐의 연출을 맡은 프랑스 감독이 얼마 전 건넨 시나리오를 읽는 도중깜짝 놀랐다. 그녀의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무슨 운명처럼 느껴졌다.
한국에서 온 손자들을 위해 파리의 한국 화백에게 그림을 주문한 돌아가신 시할아버지의 사랑과. 그 사랑으로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한 남편은 한국에서 온 나를 만나 결혼을 했고. 나는 프랑스에서 한지 한불 합작 다큐를 기획하고. 그 다큐에 남편을 위해 그림을 그려주셨던 화백님이 출연하시다니.
지금 제작하는 한불 합작 다큐는 루브르 박물관 예술품 복원에 사용되는 한지 이야기이다. 우연히 지인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루브르에서 복원사로 있는 자신의 친구가 루브르 예술품 복원에 한지를 사용한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오랫동안 일본의 화지가 지배하고 있던 복원지 시장이었다. 세계적인 예술품을 복원하는데 전통 종이가 사용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한지가 들어간다는 건 더더욱 흥미로웠다.
그전까지는 한지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지만. 기획안을 쓰고 지금 다니는 프랑스 프로덕션 설득을 시작했다. 노트르담 복원이나 폼페이 발굴 작업을 단독으로 촬영하고 다큐를 제작한, 문화재 다큐에 오랜 노하우를 지닌 큰 프로덕션이었만. 그 누구도 한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다. 왜 종이에 대한 다큐를 하자는 거지, 라는 반응이었다. 그것도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온 종이를.
어렵게 내부 설득을 거쳐 정부 지원 사업에 선정이 될 때만 제작에 들어간다는 조건으로 승인을 받았다. 근무 시간에는 따로 짬을 내기 힘들어 주말에 집에서 혼자 조사를 하고 시놉시스를 작성했다. 시놉시스를 제출하고 일차 선정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자마자 코로나로 두 달 동안의 국가 봉쇄가 시작되었지만. 한국 공동 제작사의 적극적인 협조로 다음 단계를 통과해 최종 선정이 되었고, 얼마 전부터 제작에 들어갔다.
중간중간 이렇게까지 노력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제작이 들어간 지금 한지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것을 배워가고 있다. 그 오랜 옛날에 어떻게 천년이 가는 종이를 발명할 수 있었고 또 그 전통을 지금까지 전수해 올 수 있었을까. 매일매일 배워가며 감탄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프랑스 감독도 한지뿐만 아니라 한지를 사용하는 예술가들 그리고 다양한 디자인 혹은 실용 제품들까지. 알면 알수록 놀랍다고 했다.
프랑스 감독이 한지에 관해 조사를 하다 한지를 재료로 예술 활동을 펼치시는 방혜자 화백님을 알게 되었고. 그녀의 작품 세계에 감명을 받아 시나리오에 넣게 된 것이다.
지금은 멋진 다큐가 만들어져서 아르테 채널 같은 유럽의 주요 채널에서 방영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정작 소중한지 몰랐던 우리 문화가 밖에 나오니 이제야 그 가치가 제대로 보인다고 하면 너무 뻔한 말이지만. 멀어져야만 볼 수 있는 것들. 가까이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있었다.
화백님의 한없이 투명하고 빛나는 목소리를 전화기 너머로 들으며 생각했다. 모든 인연은 결국 다 이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표지 그림: 방혜자 l 빛에서 빛으로 l 168x108cm l 2007
‘빛은 생명이며, 생명은 사랑이며.
사랑은 평화임을 믿으며 이 빛의 메시지를
심는 작은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방혜자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