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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Sep 07. 2020

결국 우리는 쓰는 대로 살아간다

걷는 듯 살아가고, 춤추듯 사랑할 수 있다면

며칠 전 내 책들에 대한 새로운 리뷰가 뜬 게 있는지 오랜만에 검색하던 중, 나온 지 벌써 육 년이 되어가는 내 첫 책 <여행은 연애>에 대한 새로운 리뷰를 보게 되었다. 아직 절판되지는 않았지만 오프라인 대형 서점에서 검색하면 '재고 없음'으로 뜬 지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에, 놀랍고 고마운 마음으로 글을 읽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닌 이야기를 향한 타인의 시선을 읽는 건 두근거림과 동시에 늘 두려운 일이다.


독자들이 남긴 리뷰나 후기는 가끔은 과분하다 싶을 때도 있지만 어쩔 때는 지나치게 냉정하기도 하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나라는 사람을 전혀 모른다. 일부러 좋게 써줄 필요도 없지만 일부러 폄하할 이유도 없다. 말 그대로 정말 솔직한 리뷰인 것이다. 특히 출간 직후 책 홍보를 위해 출판사에서 모집한 서평단이 아닌. 이렇게 더 이상 찾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미 철 지난 책을 독자가 일부러 찾아 읽은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첫 책. 첫사랑만큼이나 평생 애틋할 대상이지만. 첫사랑처럼 죽을 때까지 애잔함에 가까운 후회가 남아있을 책. 자욱한 안갯속을 끝없이 헤매는 것만 같았던 이십대에서 삼십대로 넘어가던 시간. 나에게는 이 책을 쓰는 모든 시간이 안갯속의 한 줄기 빛처럼 찬란했고. 내 안에 있었던 가장 진실된 이야기를 가장 진실된 방식으로 썼다는 것에는 단 한치의 의심도 없으나. 다시 펼쳐보면 그때의 미숙함에  민망함이 저절로 고개를 든다.


에세이는 글을 쓰는 사람이 온전히 드러나는 장르의 특성상 당시 글을 쓸 때의 내 모습이 책 속에 가감 없이 담겨있는데. 지금도 미숙하기는 매한가지면서도, 육칠 년 전의 나는 왜 저렇게 유치했을까 싶다. 게다가 형편없던 글쓰기 실력으로 나 자신의 부족함이 벌거벗은 채 글에서 드러내고 있으니. 누가 최근에 이 책을 읽었다고 하면 고마움 마음과 함께 복합적인 감정이 들고는 한다. 아마 지금 쓰는 글도 나중에는 그러지 않을까.


리뷰는 책의 한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걷는 건 직선이었고, 춤추는 건 나선이었으며, 삶은 직선과 나선 그 어디쯤에 있었다

<여행은 연애>




그녀가 책을 읽으며 느낀 점들을 한 자 한 자 손으로 꾹꾹 눌러쓴 독서 노트의 사진들과 책의 사진 및 여러 구절의 인용과 추가 소감까지. 읽는 사람을 저절로 감동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길고 정성스러운 리뷰였다. 나 역시도 너무도 고마운 마음에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에 새기며 읽어나가고 있었다. 리뷰가 다 끝났다 싶을 때쯤, 무심코 스크롤을 내리자 얼마간의 하얀 여백이 이어지더니 화면 끝에 전혀 예상치 못한 글이 나타났다.



TO. 작가님께


제가 아직 스페인과 쿠바를 다녀오지 않았지만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어느새 여행을 같이 하고 있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며 행복했어요.


'걷는 듯 살아가고, 춤추듯 사랑할 수 있다면' 글귀처럼 걷는 듯 살아가고 춤추듯 사랑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순간 뭉클해졌다. 과거의 내가 쓴 글을 읽은 그녀가 현재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녀가 진한 빨간색으로 강조한 저 문장. '걷는 듯 살아가고, 춤추듯 사랑할 수 있다면'은 내 책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그녀는 몰랐겠지만 책이 나올 당시에 나는 이 문장을 책의 제목으로 해달라고 출판사를 한참 졸랐다. 하지만 원고 편집에 있어서 대부분의 내 의견을 흔쾌히 수렴해 주었던 출판사에서 이 제목만큼은 안 된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너무 길어 독자들이 외우기 어렵고 헷갈린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당시 편집자 및 출판사와 함께 하면서 마음이 안 맞거나 의견이 상충됐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저때 처음으로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저 한 문장에 이 책이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강력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확신과 책의 판매는 다른 문제였다. 말 그대로 인지도 제로였던 새로운 저자를 발굴하며 출간하는 일은 엄청난 모험이었기에. 출판사에는 어떡해서든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 수 있는 제목으로 정해야 했던 것이다. 당시 출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아이를 곧 출산하는데 아이 이름에 대해 결정권이 없는 산모처럼 느껴졌다.


물론 출판은 출산과는 달리 저자 혼자 책을 낳지 않고 책 작업에 참여한 모두가 산모이자 부모이지만 말이다. 두 번째 책도 결국 내가 원했던 제목으로 되지 않았지만 마음을 빨리 추스렸던 걸 보면, 아무래도 첫 책이라 제목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것 같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책은 <여행은 연애>라는 출판사 마케팅 회의를 통해 결정된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책이 나오고 한동안 인스타와 블로그에 책에 대한 후기나 리뷰가 꾸준히 뜨곤 했다. 인기 베스트셀러처럼 자고 나면 리뷰가 쏟아져 나오지는 않았어도 간간이 뜨는 리뷰와 후기를 읽는 건 당시 나의 가장 큰 낙이었다. 내가 전혀 만날 일 없는 누군가가 나의 가장 은밀한 이야기를 읽고 남기는 글들은 내 글보다 더 짜릿했다.


그 글들을 읽으며 웃고 또 울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했다. 블로그나 인스타에 뜨는 대부분의 리뷰들은 끝끝내 제목이 되지 못한 이 한 문장. '걷는 듯 살아가고, 춤추듯 사랑할 수 있다면'을 늘 말하고 있었다. 제목은  못 되었지만 어쩌면 독자들이 책을 읽고 간직하게 될 단 하나의 문장일지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 더 이상 이 책을 읽는 독자도 리뷰를 남기는 이도 거의 전무한 지금. 누군가가 책을 읽고 짧은 편지를 남긴 것이다. 심지어 지금의 내가 '걷는 듯 살아가고, 춤추듯 사랑하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책을 쓸 당시에는 헤어진 연인이었지만 여전히 사랑하던, 책의 마지막 장에 헌사가 들어간 남편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A Jean-Luc, Mon Santiago
나의 산티아고, 장뤽에게
이렇게 쓰여있다. (장뤽은 작가의 예전 남자 친구 이름이다)
이걸 보면서 참 먹먹했다.
내 일도 아니면서.
이 한 문장에 대한 생각은 책을 다 읽기 전과 후로 나뉜다.
읽기 전에는 고마운 사람이어서 맨 끝 장에 이렇게 이렇게 썼구나 이런 느낌이었다면,
읽고 난 후에 이 한 문장은 그만큼 힘들었지만 내가 경험해봐야 할,
그리고 경험하고 난 후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하는 존재
그 의미가 있다는 느낌이다.
뭔가 말로 설명하기 벅차다..

      


지금의 내가 책의 글귀처럼 살아가고 있기를 바라는 그녀의 마음이 너무 예쁘고 고마웠다. 또한 남편에 대해 그녀가 쓴 글을 읽고 있으니 예전의 기억들도 오랜만에 새록새록 솟아나는 걸 느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수많은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여러 감정이 통과하는 걸 느꼈다. 그리고 기뻤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쓴 글을 읽은 그녀에게 이렇게 답장을 부칠 수 있었으니.


저한테 남겨주신 편지를 읽으면서 마음이 뭉클해졌어요.
저도 덕분에 리뷰를 읽는 내내 무척이나 행복했네요 ^^
저에게 소망해 주신 것처럼.
걷는 듯 살아가고 춤추듯 사랑하고 있어요.
장뤽은 이제 예전 남자 친구가 아닌 사랑하는 남편이 되었고요.
돌아보니 그 책을 쓸 당시 고민하고 간절했던 많은 것들이 기적처럼 현실이 되었네요.
이 책을 읽은 후 많은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시기를 저 또한 바랍니다.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녀에게 답변을 쓰면서 깨달았다. '걷는 듯 살아가고, 춤추듯 사랑할 수 있기를'. 이 문장에 당시 내가 그토록 꽂혔었던 까닭을. 이 글귀는 당시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자. 현재였던 그때를 살아가는 다짐이었던 것이다. 마법의 주문처럼 언젠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글의 마지막에 나와 독자를 향해 외쳤던 것이다.


몇 년 전에 이미 헤어졌었지만 여전히 사랑하던 지금의 남편과 춤을 추기는커녕 엇박자로 서로를 맴돌며 꼬인 스텝에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있었을 때. 가고 싶은 길은 알고 있었지만 그 길을 걸어갈 용기가 없어 툭하면 주저앉기를 반복하고 있을 때. 스스로 만든 절망과 불행의 늪에서 헤어 나오는 법을 몰랐을 때. 저 글을 쓰며 나 자신에게 간절하게 반복하던 주문이었음을. 그리고 그 주문은 마법처럼 현실이 되어 돌아왔음을.


지금 가는 길은 자주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가끔 폭풍우도 몰아치지만. 다시 일어나 뚜벅뚜벅 걸을 수 있고, 몰려오는 폭풍우 한가운데서도 피하지 않고 함께 손잡고 춤출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 결국 저 글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스스로 행복하고 기쁘다 느낀다면 우리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 파올로 코엘료 <아크라문서> 중


그래서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내가 지금 쓰는 글이 지금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의 내가 될 것임을 굳게 믿기에. 살아내는 만큼의 글. 내가 닮아가고 싶은 글. 그런 글을 오래오래 꾸준히 쓸 수 있기를 기도한다.


마법의 주문처럼


결국 우리는 쓰는 대로 살아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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