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삼 년 전.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읽고 무작정 사하라로 걸으러 떠났다. 그때 다니던 직장의 분위기는 숨이 막혔는데. 살얼음판을 걷는 마음으로 버티면서도 이게 과연 맞는 건지 하루에도 수백 번씩 자문할 때였다. 약 일주일의 시간 동안 광활한 사하라 사막을 걸으며 저녁에는 모닥불 옆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별을 보며 잠들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매일 저녁 퇴근 후 사막에서 보낸 시간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글이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에 선정되어, 그 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약 삼 개월 동안 매주 목요일 다음 포탈에 연재되었다. 회사에는 사표를 냈지만 큰 행사가 있어 연말까지 있어달라고 했다. 현재에 대한 불안함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 당장 쏟아지는 일 등. 새벽이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그때 일주일의 유일한 위안과 희망이 위클리 매거진 연재였다. 엄청난 기회가 와서 삶을 통째로 바꿔놓을 것 같아서가 아니었다. 연재 매거진 제목이 <별을 따라 걷다 보면>였는데. 주변이 다 깜깜하게 느껴지고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내가 사막을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 생각했던 것들. 이것들을 따라 살아갈 용기만 있다면 희망도 어딘가 분명히 있을 것만 같았다. 그걸 기록한 연재 글들은 그때 내가 따라 걸어갈 별이었다.
브런치에서는 위클리 매거진 선정 후 파트너 출판사들에게 미리 원고를 보냈다. 종종 연재 시작도 전에 출간 계약이 맺어지거나 혹은 연재 동안 반응이 폭발적인 매거진들은 여러 출판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나는 두 경우 다 해당사항이 없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좌절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마음마저 마지막 연재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기에 결국 접었지만.
포기하고 있었는데 브런치 연재 매니저님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희망하면 연재가 끝난 내 글을 브런치 파트너 출판사들에게 보내 다시 한번 출간 검토 요청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보내도 안 될 텐데 왜 굳이 다시 요청해.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괜찮다고. 수고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감사했다고. 답변할 참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이 펄펄 뛰면서 "그게 무슨 말이야! 당연히 해달라고 해야지"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왜 굳이 해'라고 했지만. 진짜 마음은 무서웠던 것 같다. 다시 아무 답변도 없을까 봐. 침묵의 거절이 두려웠다. 관심 있는 출판사는 없을 거라고 확신하면서도. 남편의 그 말 한마디에.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어요,라고 답장을 고쳐 보냈다. 그리고 답장을 보낸 후 정확히 일 년째 되는 날. 나는 출판사에서 이제 막 인쇄소에서 도착한 따끈따끈한 <사하라를 걷다>를 쓰다듬고 있었다.
출간에 맞춰 남편과 서울에 들어간 나는 책이 나오자마자 서울에 있는 교보문고 열 군대를 돌았다. 일정에 여유가 있었다면 독립서점이나 동네 서점에도 들려 직접 책을 소개하고 지방까지도 갔겠지만. 곧 출국을 해야 해서 삼일 동안 열 군데 교보를 들리며 일일이 책 앞에서 기도를 했다. 책은 신간 에세이 매대에 진열되어 있었는데, 신간 에세이는 베스트 에세이 매대 옆에 있었다
책이 놓여진 매대 앞에서 눈을 감고 속으로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올해가 끝나기 전에 책이 날개를 달아 이 옆의 베스트 에세이 매대로 날아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책이 정말 베스트셀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드린 기도라기보다는(물론 그런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만). 베스트로 넘어가지 못하면 책은 곧 반품 처리되어 물류창고로 돌아가고. 언젠가 폐기 처분되는 가슴 아픈 운명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게 출판 시장의 슬픈 현실이었다. 아무리 여러 사람이 함께 정성 들여 책을 만들고 힘들게 서점에 자리를 잡아도. 출간 초기에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하면 결국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삼일 동안 교보문고 순례를 하자 한국말을 모르는 남편도 서점에 들어가기 무섭게 내 책을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느님이 그런 우리의 노력을 가상히 여기셨는지. 아니면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파리로 돌아가는 길에 출간 제안을 해주셨던 출판사의 팀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2쇄 찍어요. 책이 나온 지 보름만이었다. 기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한 해가 끝나기 전 광화문과 강남 교보문고에서 정말로 책이 신간에서 베스트 에세이 매대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한국에서 보내준 사진을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사실 책은 이미 이해인 수녀님의 추천사라는 엄청난 축복을 받으며 태어났다. 감히 나 같은 사람이. 이 정도의 글이 받기에는 너무도 고맙고 과분한 축복이었다. 그리고 작년 말 지인으로부터 박완서 작가님의 막내 따님이 책을 읽으시고 한 번 통화를 하셨으면 하신다는 말씀을 전달받았다. 그렇게 지난해 마지막 날 아침. 박완서 선생님의 목소리를 꼭 빼닮은 따님과 통화를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존경하는 소설가인 박완서 선생님의 따님인 그녀의 목소리는 매스컴으로만 들었던 선생님의 청량하고 소녀 같은 목소리와 똑같아서. 나도 모르게 하늘에 계신 선생님의 이름을 외칠 뻔했다. 책 잘 읽었다고 하시며. 행복하게 살라고 했다. 그게 제일 중요하더라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이자 다른 한 해를 시작하기 직전 들은 그녀의 말씀을 마음에 고이고이 새겼다.
삶이 드라마나 영화였다면. 나는 이제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서 유명해지고 책도 많이 팔려 인세도 쏠쏠이 들어오며. 방송도 나가 여러 출판사로부터 아직 쓰지도 않은 다음 책에 대한 러브콜을 받겠지만 (물론 실제로 이런 작가님들도 계신다). 출간 후 내게 일어났던 기적 같은 일들은 거기서 멈추었다.
그리고 몇 달 전 인세를 받았다. 연간 인세 계약이라 지난해 판매된 부수에 대한 인세였다. 책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1쇄가 거의 다 팔렸지만 계약금을 빼고 들어온 금액은 많지 않았다. 전업 작가를 할 능력도 없지만 전업 작가를 했다면 생계유지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처음 사하라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따지면 책이 나오기까지 일 년 반 가까운 시간과 공이 들어갔는데. 통장에 찍힌 숫자는 노력과는 상관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실망했냐고? 결코 아니다. 이미 이 책 덕분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들은 내 능력과 분수를 뛰어넘는 것들이었다. 베스트셀러를 쓸 능력도 없으면서 책이 살아남기 위해 베스트 에세이 매대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그 기도를 또 하늘은 들어주셨고.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이해인 수녀님을 만나고 박완서 작가님의 따님과 통화도 했으며.
책을 읽어주신 너무도 고마운 분들이 있다.
책이 그 이상의 지속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지금 내 능력이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다. 받은 인세를 고이 간직해두었다. 책이 나오기 전부터 결심했었다. 얼마가 되든 무조건 다 기부하기로. 현재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은 아니지만. 없을 때도 적으나마 기부하는 습관을 쌓아야지, 나중에 있게 되면 더 많은 기부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 책에도 나오는 라파엘 수녀님에게 어디에 기부를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수녀님은 근처 다른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한 단체를 소개해 주셨다. 서울역 근처에서 쪽방촌 사람들과 노숙인들에게 무료 점심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추운 날 내 책이 누군가의 따뜻한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기적이었다
수녀님이 알려주신 한 끼에 드는 비용을 계산해보니, 받은 인세로 두 번의 점심 식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돈이라는 게 참 신기했다. 통장에 입금된 숫자로만 봤을 때는 내가 들인 시간과 정성에 비해 적다고 느껴졌는데. 똑같은 돈이 이 추운 날씨에 한 끼도 아닌 두 끼가 돼서 여러 사람의 입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내 책이 누군가의 마음과 영혼의 양식이 되지는 못했어도. 배고픈 누군가의 한 끼 양식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에 태어나서 충분히 자신의 몫을 했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책의 첫 번째 생일을 축하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글을 읽어주신 덕분에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또 책이 팔린 덕분에 인세가 들어와, 많지는 않아도 기부를 할 수 있었으니.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과 함께 기부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따뜻한 한 끼 식사를 함께 나눠드셨다고 기쁘게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