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의 <볼레로>를 들으며 오열했다

by 주형원

지난주 수요일 저녁, 야근을 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한 프랑스 노인 부부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재네 때문에 코로나가 생겨서"

"중국에서는 피자에 바퀴벌레를 넣어 먹는다지?"


십 년 넘게 파리 살면서 지나가다 누가 '니하오'하며 조롱하듯 웃기라도 하면 '야 나 한국인이야. 한국말로 어떻게 인사하는지 가르쳐죠?'라고 버럭 쏘아붙이던 나였다. 조금이라도 차별적인 발언이나 제스처를 취하면 상대가 그 행동을 두고두고 후회할 때까지 맞서던 나였다. 친한 한국 동생이 예전에 '언니 왜 그걸 다 대응해'라고 했는데 이유는 딱 하나. 그래야 다른 동양인들에게 감히(?) 또 그 짓을 못할 거 같아서였다.


하지만 이 날은 달랐다. 화가 나야 마땅한 상황에서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심지어 바퀴벌레 피자라는 기발한(?) 발상이 저 연세에 유치뽕짝이다, 싶어 웃기기까지 했다. 그날 저녁은 마크롱 대통령이 삼일 후부터 적용될 저녁 9시 통금 정책을 발표한 직후였다. 나 역시 야근 중 그 소식을 듣고 앞이 캄캄해졌다. 9시 통금이면 7시 넘어서 는 무조건 집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집에 일찍 들어가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올해 봄보다 더 악화되고 있는 이곳 코로나 상황이었다. 우리 모두 봉쇄가 목전에 왔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통금은 봉쇄를 어떻게든 막아보고자 하는 마지막 조치에 더 가까웠다. 9월부터 대중교통이나 길거리를 비롯해 회사나 가게를 비롯한 모든 공공장소에서 마스크가 의무화됐음에도 확진자 숫자는 미친 듯이 치솟고 있다. 봉쇄 이후 출근길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이들을, 매일 아침 전날보다 많이 마주친다.


한 번 더 봉쇄가 찾아온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초반에는 한 여름이 되면 바이러스가 저절로 사라질 거라고 했고. 봉쇄 때는 끝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연말이 다가오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한지 다큐 촬영에 들어가는데. 다시 봉쇄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는 길. 세상이 온통 절망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그 누구에게라도 하지 않아야 하는 말로, 길가던 나를 공격한 저 나약한 노인네들의 심정이 슬프게도 이해가 됐다.


나 역시 너무 절망스러워서 아무나 붙잡고 원망하고 싶은 그런 암울한 밤이었으니까.




다음 날 프랑스 동료들에게 전날 이야기를 했다. 그녀들은 차분히 말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며, 자신들이 직접 당한 것처럼 펄쩍펄쩍 뛰며 화를 냈다. 인종차별이라며. 가만히 놔뒀냐며. 그녀들도 어제 그 노부부와 같은 프랑스 인이었지만, 코로나로 동양인들을 욕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 동양인들을 비난하는 서양 사람들이 있고, 나 역시 코로나 이후 동양인 기피 현상을 체감하고 있다. 하지만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문했다. 과연 저 노인들의 마음이 그들만의 것일까.


코로나가 한국에서 먼저 터졌을 때 걱정돼서 매일 같이 기사를 찾아보았다. 코로나 관련 모든 기사들에는 엄청난 댓글이 달렸는데. 그 댓글의 상당 부분은 중국을 욕하고 있었다. 조금 지나 코로나가 어느 정도 진압되기 시작하니 코로나를 피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해외 교민들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다. 봉쇄 중에도 일을 했고 남편이 있어 한국으로 피난 갈 엄두도 못 냈지만. 갈 수 있었어도 그 비난이 무서워 못 갔을 것이다.


그러고 얼마 후 어디 코로나, 어디 코로나, 네이버 검색어가 뜨기 시작했고. 그 도시의 주민들을 싸잡아 욕하는 댓글들을 보았다. 코로나와 아무 상관없는 정치적이고 지역적인 발언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서웠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코로나로 동양인들을 탓하며 기피하는 서양인들이 일부인 것처럼. 코로나로 같은 국가의 특정 도시 주민들을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일부라는 사실을. 그날 저녁 나에게 다가와 욕을 하는 프랑스 노부부에게 마땅히 화가 나야 했음에도 화가 나지 않았던 이유는. 그날 내게도 그런 마음을 아주 조금은 느꼈기 때문이란 걸.


누구라도 비난하고 원망하고 싶은 마음을


그런 마음이 고개를 들자마자 접을 수 있었던 건, 그 마음이 진짜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음은 마음먹기 달린 거라고. 마음을 단디 먹어야 한다고. 내 마음부터 잘 단속해야 하는 시기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주변에서도 확진자가 한 명 두 명 나오기 시작하고 모두들 '종말' 분위기라고 하는 암울함이 깔리자, 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태풍을 만난 바다처럼 요동쳤다.


그러다 지난주 토요일, 통금이 일주일째 되던 날 저녁. 길거리에 쥐새끼 한 마리 소리도 들리지 않는 깊은 침묵 속에서, 라벨의 볼레로를 무한 연속으로 듣고 있었다. 한 세 번쯤 들었을까. 엉엉 울기 시작했다. 볼레로가 커져갈 때마다 내 울음소리도 커지더니, 어느 순간 오열하고 있었다.


온 세상이 침묵에 잠긴 토요일 밤이었다.




<볼레로>는 드뷔시와 함께 프랑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대표곡이다. 라벨은 '나는 단 하나의 걸작만을 썼다. 그것이 <볼레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곡에는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안 들어본 사람이 없는 유명한 곡이지만 정작 라벨은 죽을 때까지도 <볼레로>의 성공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게 이 곡은 음악이 아닌 실험이었기 때문이다.


볼레로는 15분이라는 시간 동안 동일한 리듬 속에서 단 두 개의 선율이 악기만 바뀔 뿐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라벨은 피아노에 앉아 한 선율을 연주하며 친구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선율에서 어떤 끈질긴 힘이 느껴지지 않아? 난 이 선율을 발전시키지 않은 채 내가 가지고 있는 관현악 편성 실력을 발휘해 여러 번 반복시키면서 점차적으로 진행시켜 보겠어."


그는 실제로 이 두 선율의 끈질긴 힘을 15분 내내 반복한다. 선율이 반복될 때마다 새로운 악기들을 더하며 크레셴도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다 관현악 총주로 흥분이 폭발되며 카타르시스의 순간을 선사한다. 그리고는 맨 끝에 리듬을 비틀어 15분 동안 끈질기게 쌓아온 곡을 순식간에 무너트린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래 이 곡은 발레곡이었다. 1928년 러시아 출신 안무가 '이다 루빈시테인'에게 라벨은 다음과 같은 장면에 대한 음악을 작곡해 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스페인의 어느 허름한 술집, 희뿌연 가게 안에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고 그 가운데 한 탁자 위에서 댄서가 춤을 추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춤은 반복되는 리듬 가운데 고조되어 가고 점차 손님들도 댄서에 관심을 보이기 된다. 마침내 모두 일어나 댄서와 함께 격렬한 춤을 춘다.'


하지만 볼레로는 오늘날 우리에게 오케스트라 곡으로 더 친숙하다. 오케스트라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곡이기 때문이다. 악기가 점점 추가되며 같은 선율을 같은 리듬으로 연주하다 마지막에는 모두 함께 연주하며 폭발하는. 아무리 대단한 솔로 연주자도 혼자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오케스트라만이 선사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이 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요란하고 유난스럽게 느껴져서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올봄,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던 국가 봉쇄 중 남편이 어느 날 한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파리의 국립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볼레로> 영상이었는데. 우리처럼 집에 갇힌 파리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각자의 방과 거실, 발코니 혹은 정원에서 연주하고 있었다.


편안한 집 옷차림으로 화면으로 다른 동료들을 보며 연주하는 그들의 합주는 여태껏 들은 그 어떤 오케스트라 공연보다 감동적이었다. 연주하는 이들이 각각 하나의 화면으로 분리돼서 나왔는데. 처음 시작할 때는 두 개였던 화면이 네 개가 되고 나중에는 수십 개로 하나의 모자이크를 이뤘다.


그때부터 봉쇄가 끝날 때까지 볼레로를 하루에도 몇 번씩 줄기차게 들었다. 들을 때마다 신기하게 위로가 됐다. 취향은 한순간 바뀌기도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한 달 전, 파리 필하모니에 볼레로 연주를 들으러 갔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빈 좌석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연주 준비 중인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보고 깜짝 놀라 남편에게 속삭였다.


'마스크를 안 쓰고 있어'.


낯선 이의 맨 얼굴을 본 게 하도 오랜만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충격을 받은 것이다. 나는 그날 뭐에 홀린 듯 연주자들의 얼굴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곡이 끝날 때마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소를 짓고 눈짓을 하는 얼굴을. 베테랑 연주자지만 관객의 환호 소리에 어김없이 빨갛게 상기되는 얼굴을. 지휘자의 신호에 얕은 미소로 응하며 자신의 파트를 시작하는 첼리스트의 얼굴을. 떨어져서 연주할 때는 볼 수 없었던 얼굴이었다.


그들을 보며 우리가 하나의 오케스트라 라면, 상상해 보았다. 똑같은 선율을 끈질긴 힘으로. 모두 합세해서 하나의 음악으로 연주한다면. 그렇다면 볼레로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 시기가 끝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마스크 없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가 끈질기게 연주해야 하는 단 두 선율. 그게 비난과 미움은 아님을 굳게 믿는다.


그렇게 펑펑 울고 나니 다시 살아갈 힘이 느껴졌다. 어쩌면 라벨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볼레로 안에는 음악이 없다는. 대신 어떤 끈질긴 힘이 있다는. 이 암울한 시국에서도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그 끈질긴 힘을, 볼레로와 함께 한바탕 울고 난 뒤 느꼈다.





* 오늘(10/28) 밤 9시에 통통 튀는 브런치 작가 코붱님이 작가님의 유튜브 채널 '부엉이 책방'에서 제 글 '과일 하나를 딸 때도 필요한 마음(https://brunch.co.kr/@lavieenrose/180)을 고맙게도 소개해주실 예정입니다. 코붱 작가님만의 개성으로 글이 어떻게 소개될지 너무 기대되고 설렙니다 :)


https://youtu.be/01BdLqa_l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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