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센느강 위로 빛이 출렁거렸다. 파리에서 가장 화려한 다리라 불리는 알렉산드로 3세 다리에는 모든 가로등이 켜져 있었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다리의 황금빛 청동상 못지않게 화사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에펠탑이 반짝거렸다. 별처럼 빛나는 에펠탑을 넋을 잃고 보았다. 파리에서 태어나 평생을 산 프랑스 감독도, 파리에서 십 년 넘게 산 나도 홀린 듯 바라보았다.
파리만큼 아름다운 밤의 도시를 나는 알지 못한다.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도시로 많은 이들이 손꼽는 파리에 여태껏 살면서 외부인이 보는 파리와 나처럼 생활인이 겪는 파리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자주 경험했다. 많은 이들이 파리를 아름다움과 낭만의 도시로 선망할 때 나에게 파리는 치열한 생활 전선이었다. 하루하루 밥벌이하며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내가 사는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멈춰 서서 음미할 여유가 별로 없다.
어쩌면 그 아름다움에 너무 익숙해져서 무신경해졌는지도 모른다. 파리의 밤은 다르다. 다행히도 나는 아직 파리의 밤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오래된 가로등의 빛이 들어온 파리를 보면 늘 처음처럼 감탄이 튀어나온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도시에 살고 있다는 걸 불현듯 실감하는 순간이다. 파리만큼 아름다운 도시는 있을지 몰라도, 파리만큼 아름다운 밤은 없다. 빛의 도시인 파리가 어둠을 뚫고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다.
여기 사는 이들에겐 그저 높고 두꺼운 고철 덩어리인 에펠탑이 저녁만 되면 정각마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것도 파리의 밤이 그토록 빛나는데 한몫할 것이다. 그럴 때면 닳도록 본 광경임에도 눈을 떼지 못한다. 온 세상이 마법에 걸리는 순간이다. 에펠탑은 눈요기를 위해서만 반짝이지 않는다. 지난봄 봉쇄 때 고생하는 의료진들을 위해 매 저녁 여덟 시마다 반짝거렸고, 축하할 일이나 애도할 일이 있을 때도 반짝거린다.
5분 내지 10분의 찰나의 시간 동안 꿈을 꾸고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누군가를 마음 깊이 응원하고 기쁜 일을 축하하기도 하며. 위대한 이의 죽음 혹은 참사로 안타깝게 사라진 소중한 생명을 애도하기도 한다. 우리는 반짝반짝이는 에펠탑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프랑스는 결국 재봉쇄에 들어갔다. 연이은 봉쇄로 영화 및 티브이 등의 영상 산업이 완전히 죽을 것을 우려한 정부는 봉쇄 중에도 촬영은 허가했다.
불금이었지만 원래대로라면 꼼짝없이 집에 있었을 것이다. 촬영을 나와 간만에 보는 파리의 밤은 너무도 아름답고 지금 프랑스가 처한 암울한 상황과 극적으로 동떨어져있어서 잠시 모든 걸 잊었다.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어둠은 잠시 모든 걸 가려주었고 그 어둠을 밝히는 화려한 불빛들에 꿈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때 감독이 외쳤다.
"맞다! 에펠탑 반짝일 때 촬영해야 하는데"
감독의 말이 끝남과 거의 동시에 에펠탑은 반짝임을 멈추었다. 오후 인터뷰 끝나고 파리 밤 전경을 담겠다고 달려온 이 다리에서 정작 파리 밤 전경의 하이라이트인 에펠탑의 반짝거림을 카메라에 담는 걸 놓친 것이다. 이미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촬영했고, 봉쇄로 어디 들어가 기다리면서 따뜻한 차 한잔할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에 찍기로 하고 집에 돌아와 쉬는데 감독에게 문자가 왔다.
"아까 에펠탑 반짝였던 거 있잖아. 뉴스 보니까 오 년 전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촬영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니..."
감독의 문자를 보고 엄청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감독의 말처럼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반짝거린 에펠탑을 못 찍었다고 안타까워한 것도 부끄러웠지만. 오늘이 그날인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이 더 충격이었다.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날이었다. 심지어 첫 촬영 날짜를 보고 오 년 전 그날을 떠올렸었다. 그날도 달력을 보며 똑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13일의 금요일이네.
특별히 미신을 믿지는 않지만 달력을 보며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날 밤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저녁에 사진 수업을 갔다가 어두운 암실에서 필름을 인화하는 걸 보며 서서히 드러나던 사진에 감탄하던 장면을. 암실에서 나와 테러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곧이어 그 테러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 바로 근처라는 걸 알았을 때. 엄습하던 공포감.
여기 있으면 위험하다고 집에 빨리 들어가라고 해서 다른 학생들과 나오다 보았다. 혼비백산하여 미친 듯이 도망가고 있던 사람들을. 재난 영화에서나 봤던 광경이었다. 센터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모두 건물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고 한참을 거기서 있다가 홀로 거리로 나섰다. 거리는 횅했고 근처 지하철은 봉쇄되었으며 남은 테러범이 어디로 도망쳤는지 아무도 모를 때였다.
생전 처음 죽음이 코앞에서 느껴졌다.
닫혀 있는 근처 지하철역을 지나 마침내 지하철을 타게 되었을 때. 나는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던 그 눈길을 잊지 못한다. 테러범들이 아직 잡히지 않았을 때였고, 그들이 누군지 알지 못했기에 우리는 서로를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집에 가는 길이 그토록 멀고 길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정부는 그다음 날 모든 공공시설을 닫고 시민들에게도 웬만하면 집에서 나오지 말기를 권유했다. 어둠에 잠긴 세상이었다.
그다음 해에 한 영화를 보러 갔는데 하필 영화 속에서 공격받는 행성의 이름이 테러가 일어난 장소와 같은 레퓌블리크였다. 무기를 가지고 쫓아오는 이들을 뒤로하고 행성의 주민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는 화면 속 배우들 위로 테러 날 밤 달려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겹쳤다.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그 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잊어서도 안 되는 밤이었다
테러가 일어난 지 삼 일째 되는 날, 태어나 처음으로 미칠 것 같아 글을 썼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돌아버릴 거 같아서. 그 수많은 이들이 근처에서 처참하게 죽어나가는 사이 아무것도 모르고 암실에서 인화되는 사진을 보며 감탄하고 있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같았다. 아직 책도 안 냈고 브런치는커녕 한 번도 글을 공개해 본 적이 없었지만 덜컥 한 언론사에 글을 보냈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믿었기에, 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야 할 일종의 의무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네이버 메인에 내 글이 떴다는 거였다. 친구의 문자를 받고 네이버에 들어가 보니 정말 메인 한 중앙에 내 글( https://n.news.naver.com/article/002/0002011177 )이 떠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분들이 이야기를 읽고 호응해 주셨다.
워낙 많은 분들이 읽고 댓글도 남겼기에 수많은 응원의 댓글들 가운데 악플도 일부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상처 받지 않았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내가 겪은 일이지만 나만의 일이 아닌, 내 이야기지만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 글을 읽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신기했고 진심으로 고마웠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 그걸 들어주는 과정이 그토록 치유가 될지는 몰랐다.
그 이후 그 글을 까맣게 잊었다. 올봄 코로나로 프랑스 전역이 봉쇄에 들어가며 집에서 격리를 하기 전까지는. 격리가 이주에서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두 달이 되는 동안 미치지 않기 위해 생전 안 보던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마음대로 집 밖을 나갈 수 없는 이 길고 긴 시간 동안. 잠시라도 생각을 멈추지 않으면 정말 미칠 것 같아서 보기 시작한 드라마는 <동백꽃 필 무렵>이었다.
한 번 보기 시작하자 풍덩 빠져서 새벽까지 정주행을 했다. 새벽 두 시가 넘어 몽롱한 정신으로 용식이가 까불이를 잡고 의기양양하게 경찰서를 나오며 하는 말을 듣고 있다 까무러칠 뻔했다. 오 년 전 썼던 기사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돌았다. 그때 쓴 글을 지금 이 상황에서 드라마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남편 깰까 봐 입을 틀어막고 그 새벽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브런치에 그 이야기를 썼고, 브런치에서 그 글을 지난 5월 1일 카카오톡 채널에 소개해서 지금까지 7만 명이 넘는 분들이 읽어주셨다.
https://brunch.co.kr/@lavieenrose/141
카카오톡 채널로 수많은 분들에게 그 글이 배달된 날은 마침 공휴일인 노동절이었다. 격리 생활을 한지 한 달 반이 지나고 있을 때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시차로 이미 수만 명이나 그 글을 읽은 걸 보았다. 댓글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갔다. 그 기사를 읽었었다는 분도 있었고, 드라마에서 그 대사가 인상 깊어 기억한다는 분들도 있었다.
힘내라고. 결국 다 지나갈 거라고 응원해 주신 분들도 있었고. 이 시기에 힘이 되고 위로 받았다고. 희망을 얻어 간다는 분들도 있었다. 울컥하며 읽던 중 어느 한 분이 남겨주신 댓글을 보고 와락 눈물을 쏟았다.
저는 자영업자 입니다. 많이 힘드네요. 정부에서 내주는 자금은 고스란히 빚이 되어 돌아오는 미래도 두렵고 갚을 능력이 생길지도 두렵고.... 머 그래도 날씨좋은 부산에서 출근을 준비하면서 브런치 읽고 힘내서 출근합니다~~^^
쓰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그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썼던 글들이 나를 위로했고 나아가 그 글을 읽는 다른 이들에게도 힘이 된다고 했을 때. 버틸 수 없어 썼던 글이 버티게 해주었다. 재봉쇄가 시작되고 테러도 연달아 일어나는. 끝이 안 보이는 칠흑 같은 암혹 속에서 쓰는 지금.
내 글이 나와 글을 읽는 분들에게 잠깐이라도 에펠탑처럼 반짝이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