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은 죽을 쑤며 보냈습니다. 매일 오늘은 무슨 죽을 쒀야지를 고민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크리스마스이브 새벽부터 아프기 시작했거든요. 남편이 통증을 호소한 크리스마스이브의 긴 밤을 하얗게 뜬 눈으로 지새우고, 메리 크리스마스를 응급실에서 보냈습니다. 코로나로 환자를 제외한 보호자는 병원에 들어갈 수 없어서, 남편만 들여보내고 유달리 추운 겨울날 스산한 병원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생각했습니다. 힘들었던 한 해가 결국 이렇게 끝나고 마는구나. 이 어두운 세상에서 크리스마스만은, 우리만은, 즐겁고 따뜻하게 보낼 수 있으리라는 오만하고 이기적인 착각이 보기 좋게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모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북적거리는 모임 대신 단둘만 오붓이 보내기로 한 크리스마스이브. 발칙한 아내인 저는 브런치에 연재할 첫사랑 이야기를 이브 오후 내내 썼고요.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써?’라는 남편에게 ‘첫사랑’이라고 약간의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시선을 회피하며 그러나 뻔뻔하게 대답했습니다. 남편은 짐짓 삐진 표정을 하며 ‘그러면 내가 마지막 사랑은 맞지?’라고 물었고요. 그런 남편에게 장난기 잔뜩 어린 표정으로 ‘그럼 물론이지’라고 말하고 둘 다 웃음을 터트리고는 둘만의 조촐하지만 즐거운 이브 파티를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건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하반기 둘 다 쉴 새 없이 일하며 몸도 정신도 바닥에 다다른 상태에서 오랜만에 갖는 휴식의 시간이자 함께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까지. 이 황금연휴야말로 산타 할아버지가 가져다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그저 기쁘기만 했습니다. 새벽에 남편이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며 깨기 전까지는요. 진통제를 먹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들지 않았습니다.
깜깜한 밤. 긴급번호로 연락을 하니 크리스마스이브 새벽인 그때 문을 연 관련 병원은 한 군데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곳의 크리스마스는 한국에 설이나 마찬가지라 모두 연휴에 들어가거든요. 날이 밝기 무섭게 부랴부랴 간 응급실에서 반나절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저는 병원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서 어딘가 모르게 음산한 병원 부지를 서성거리며 헤맬 때도. 참 뭐 같은 한 해에 걸맞은 크리스마스라고 생각했습니다. 환자가 너무 많은데 의사는 없어 응급 치료를 못하고 진단서만 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어 기다릴 때도. 어둠에 묻힌 밤이었습니다.
코로나에 걸린 것도 아니고 다행히 바로 치료를 받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간단한 응급 치료도 못 받는 기가 막힌 현실 앞에서. 그럼에도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더 기막힌 사실 앞에서. 한국이면 상상도 못 할 이 황당한 상황 속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고 저녁이 돼서야 마침내 의사 얼굴을 봤어도 빨리 치료를 받으란 말만 듣고 병원을 나와 깊은 밤 문을 연 약국을 찾아 향하던 막막함. 병원을 가서 다시 기다리고. 다시 병원에 가서 기다리고. 마침내 치료를 받은 남편이 회복할 때까지.
단 며칠의 시간이었지만 깜깜한 터널 속을 걸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진통제와 항생제를 먹고 하루 종일 누워있는 남편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죽을 쑤는 일이었습니다. 음식을 제대로 섭취할 수도 없던 남편이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죽이었습니다. 죽을 제대로 끓여본 적도, 끓일 줄도 모르는 저는 매일 새롭게 망했습니다. 처음부터 물을 너무 많이 넣어서 두 시간 가까이 끓이며 저는데도 전혀 졸지 않았고요. 그 후에는 네이버 파워 블로그의 레시피를 검색한 후 회심의 미소로 쌀알을 볶다가 다 태워 연기로 가득 차고 며칠 동안 집에서 탄내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요리사 남편을 두었다는 팔자 좋은 핑계로 요리와는 담을 쌓고 살아서 그런지. 원래 재능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죽을 쑤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더군요. 우리가 흔히 망하거나 실패했을 때 쓰는 ‘죽썼다’는 표현이 도대체 뭐에 근거한 것인가, 슬쩍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나는 죽도 못 쑤는 인간인가, 잠깐 좌절감이 들기도 했고요. 그렇게 남편이 회복할 때까지 며칠 동안 죽을 쑤며 쉬이 풀어지고 뭉쳐지지 않으려는 쌀알들을 보았습니다. 쌀알들이 결국 보글보글 휜 입김을 뿜으며 풀어지고 뭉개져 죽이 되는 걸 보며.
웃긴 소리지만 우리가 이 쌀알 같고 사랑은 죽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빨리 낫을 수 있다면.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플 수 있다면. 속상하고 원망스럽고. 팔이 아플 정도로 무식하게 죽을 저으며 그래도 뭔가 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제 안의 단단하던 무언가도 죽처럼 흐물흐물해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고대하던 연휴 대신 응급실과 병원에서 보낸 연말이었지만, 남편이 아프니 한 해 동안 중요하게 여긴 일들과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든 일들이 다 무의미하게 느껴지더군요.
지난해 코로나와 두 차례 봉쇄로 받던 스트레스. 지긋지긋하니 이제 제발 끝났으면 좋겠다고 하던 말들도요. 코로나나 다른 질병으로 지금 이 순간도 고통받고 있을 이들과 그들 가족들의 심정을 감히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처음으로 깊게 와닿은 순간이었습니다. 남편이 드디어 치료를 받고 회복을 시작하자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연말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건강한 게 최고예요, 인사말처럼 주변에 늘 했으면서도요.
지난 한 해를 죽 쑨 해라고, 기억하기도 싫은 한 해라고 모두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크리스마스 날 병원 입구를 서성이며 잔뜩 저주라도 퍼붓고 싶어지더군요. 도대체 이 X 같은 한 해도 부족해서 크리스마스 날까지 왜 이러는 거냐고.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고 회복되는 과정 속에서 며칠 동안 마음 졸이고 가슴 아파하면서. 당연한 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연한 세상도, 사랑도 없다고요.
뽀얀 죽을 정성껏 휘저으며 지난 한 해 동안 불리고 불렸던 여러 질긴 마음들이 죽 속의 쌀알처럼 풀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원망하는 마음. 이기적인 마음. 미워하는 마음. 자만하는 마음. 욕망하는 마음. 그럼에도 완전히 녹이지 못한 마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건 시작하는 한 해의 몫이라 믿어 봅니다.
올해도 지난해처럼 우리는 죽을 쑬지 모릅니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됐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거기에만 희망을 걸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신 연말에 매일 죽을 쑤며 느꼈던 것들. 기다림. 사랑. 감사.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에 희망을 걸어보려고 합니다. 당연한 건 없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마음 깊숙이 새기면서요. 어쩌면 이 뜨거운 시간을 통과하며 우리는 죽처럼 뭉개지며 뭉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을 쑤는 일은 많은 시간과 그보다 더 많은 마음을 필요로 하는 일이니까요.
끝과 시작이 교차됨과 동시에 이어지는 오늘. 올해도 지난해처럼 글로 천천히 또 정성껏 마음의 죽을 쒀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처럼 망한 죽 말고 맛있으면서도 모두에게 건강한 죽을 쑬 날도 오지 않을까, 감히 희망하며 새해에는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