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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an 02. 2024

흐림과 맑음 그 사이에서

3년 전 새해 일출을 봤던 곳으로 연말에 짧은 여행을 떠났다. 코로나 창궐 이듬해였던 2021년 1월 1일에도 코로나는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마스크와 거리 두기뿐 아니라 내가 사는 프랑스에서는 연말 모임을 막기 위해 오후 6시 이후 통행금지라는 극단의 조치가 내려졌었다. 겨우 3년 전이지만 지금은 그때가 까마득하다. 그땐 언젠가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렸고 결국엔 다 지나갔지만, 잠시나마 새삼스레 느꼈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도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그 해 연말은 남편이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아프기 시작해 크리스마스를 응급실에서 보내야 했었다. 남편은 코로나 환자는 아니었지만, 병원 내 코로나 감염을 예방하고자 보호자들은 응급실 안으로 함께 들어갈 수 없어 그 추운 겨울에 병원 밖에서 서성거려야 했다. 그 끔찍했던 크리스마스 직후에 떠났던 곳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곳으로 만조 때는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고 간조 때는 드넓은 갯벌을 산책할 수 있었다. 영하의 추위에 벌벌 떨며 걸었지만, 바닷바람을 쐬며 남편은 눈에 띄게 빠른 회복을 했다.


2021년 1월 1일. 우리는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나왔다. 바다 위에 놓인 등대길을 물안개 사이로 걸어가면서 서서히 빛이 들어오고 얼마 후 넘실대는 태양이 떠오르며 사방이 반짝이는 과정을 감탄하고 또 감탄하며 눈에 담았다. 그때 생각했다. 아 이 어둡고 지긋지긋했던 한 해가 드디어 떠나고 저 태양처럼 빛나는 한 해가 시작하는구나. 그때 찍어놓은 등대길 사진은 여전히 내 사무실 컴퓨터 화면 속에 남아있다. 코로나와 몇 차례 국가 봉쇄로 유독 힘들고 어두웠던 한 해를 그 순간만큼은 훨훨 떠나보내며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벅차고 또 설레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감동을 기대하며 일출을 보러 갔다. 짙은 어둠으로 시작해 세상이 환하게 밝아올 때까지 고이고이 눈에 담고 싶어 꼭두새벽에 일어나 준비했다. 남편은 보온병에 따뜻한 커피를 챙겼고. 전날 미리 사놓은 빵으로 간단히 아침도 먹었다. 바다 위에 떠있는 고깃배들만 빛을 내고 있었다. 3년 전 등대길에 도착한 우리는 그때의 관경을 기다렸다. 등대는 어둠 속에서 불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태양은 잔뜩 낀 구름과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그 사이 어둠이 물러가며 순식간에 날이 밝아 왔다.


‘뭐야 날이 뜨기 시작하잖아.‘


이건 내가 기대했던 스펙터클한 일출과도. 3년 전에 봤던 그 황홀한 광경과도 거리가 멀었다. “에이 뭐야.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한 해를 기분 좋게 시작하기 위해 보러 왔던 일출에서 오히려 허탈감만 느끼며 투덜댔다. “이런 흐릿한 일출을 보러 새벽부터 일어나 나왔다니.” 실망감과 함께 머릿속에서는 어느새 본전을 따지고 있었다. 어둠은 물러갔지만 여전히 안개가 자욱한 바다 또한 태양으로 빛나는 바다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경이롭게 느껴졌다. 이 안갯속에서도 밤은 지나가고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온다는 사실이. 그것도 아무런 기척 없이.


남편에게 말했다. "이제 나이가 드나 봐.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봤던 것들이 이제 눈에 들어오네. 겨울 마지막 자락에 솟아난 꽃봉오리나. 밤이 지나고 동이 틀 때나.“ 남편은 말했다. "그만큼 시간이 가는 게 느껴진다는 거지." "응. 시간이 가는 게 점점 두려운 것 같아."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그러더니, 해가 갈수록 시간은 쏜살같이 달려가고 이제는 내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 두려운 게 뭘까. 단지 시간이 지나가는 게 아니라, 시간이 덧없이 흘러가는 게 두려운 건 아닐까.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았던 한 해였지만, 돌이켜보면 뭘 했는지 잘 모르겠다. 흐릿한 일출처럼 마냥 어둡지도 그렇다고 환하지만도 않았던 한 해였다.


이게 정말 내 길인가 싶으면서도 주어진 일에 그때그때 성실했지만 성취감이나 인정은 좌절감이나 모욕과 비례해서 찾아왔고. 완벽한 선인은 못 돼도 일상에서 베풀 수 있는 작은 선의는 가능하면 베풀려 나름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줬을 것이다. 짠하고 빛나는 성과도 그렇다고 폭망한 일도 없지만. 하루하루를 그때 기분이나 타인의 시선에 좌지우지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간다는 자체가 얼마나 힘들고 또 대단한 일인지를,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으며 되새겨야 했다.


안개 낀 바닷가처럼 희망과 절망의 경계가 희미한 날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럴 때는 한 발자국씩만 내딛는다는 기분으로 나아갔다. 지금. 오늘 할 일만 생각하자. 가끔 속에서 견딜 수 없는 게 치밀어 오르고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으면 맛있는 걸 잔뜩 사서 들어와 저녁 내내 소파에서 드라마를 봤다. 그러면 다음 날은 견디기가 조금 수월했다. 예전에는 이런 결핍들이 뭔가를 성취하면 채워질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그때 꿈꿨던 많은 것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제대로 살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종종 사로잡혀 이전과는 다른 결핍을 느낀다.




다음날 바닷가에 다시 산책하러 나왔다. 여전히 안개가 자욱했지만, 그 사이로 빨간 등대가 선명하게 보였다. 맑지도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은 바닷가는 어딘가 매일매일의 일상과 닮아 보였다. 찬란한 빛으로 반짝거리는 바닷가는 아니었지만, 안개로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진 바닷가도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태양이 완전히 바다 밖으로 나오면 그제야 불을 끄는 등대가 새삼 눈에 들어왔다. 일상에서도 흐린 날에는 태양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언제나 거기 있는 등대를 보면 위안이 되지 않을까.  


원래는 마흔이 되는 해지만 만 나이 통일법 덕분에 서른아홉을 한 번 더 살게 되는 특수를 누리게 됐다. 작년이 아홉수였을까 아니면 올해가 아홉수가 될까 문득 궁금해지지만, 30대가 일 년 더 연장된다는 사실에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아휴, 곧 마흔인데 흰머리 하나 없네요." 며칠 전 미용실에서 들은 말이다. 유달리 호들갑을 떨며 말하는 미용사 나름의 칭찬에 "없긴요. 얼마 전까지 봤는데.."라고 대답하면서도 기분 좋기보단 벌써 흰머리가 나는 게 당연한 나인가 싶어 조금은 쓸쓸해졌다. 몸도 마음도 마흔을 받아들이기는 여전히 이르게만 느껴지나 보다.


새해가 왔다고 예전처럼 마냥 설레고 좋지만도 않다. 서른아홉이면 정말 멋진 사람이 됐거나 아니면 그전에 죽었을 줄 알았는데. 멋진 사람이 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죽지도 않아서 어쩔 땐 맑은 날을 또 어쩔 땐 비 오는 날을 겪으며 대부분은 흐릿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섣부르게 희망을 믿지도 그렇다고 쉽게 좌절하지도 않게 되었다.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보다는 바로 옆에 사랑하는 사람을 등대 삼으며 바다 위의 고깃배처럼 흔들흔들 떠다니고 있지만,


이것도 뭐 나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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