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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May 27. 2018

프랑스 수녀원 기행

안갯속의 한 줄기 빛

 

어떤 사람과 어떤 장소는 그 사람을 만나기만 해도, 그 장소에 가기만 해도 집에 돌아온 느낌을 준다. 아니 집보다 더 집 같은 느낌을 준다. 내게는 그런 소중한 사람이 많지는 않아도 몇 명 있고, 나만의  비밀의 화원이 몇 곳 있다. 파리 근교의 숲과 지금 가는 프랑스 수녀원이 그중 하나이다.


초원 넘어로 보이는 수녀원

         
어제저녁 출장에서 늦게 돌아와서 또 오늘 기차를 타고 다시 어딘가로 떠난다고 생각하니 살짝 귀찮은 느낌이 들었다. 출장 며칠 동안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아니면 아무래도 여행이 아닌 일로 가서 긴장한 탓인지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호스트 수녀님에게 간다고 말을 해놓은 상태였다. 수녀원을 찾는 이들이 많은 성령감임일 주말에 일부러 내 방을 따로 잡아 주셨는데, 이제 와서 그것도 당일에 내 컨디션이 안 좋다고 취소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나에게 이 곳만큼이나 육체와 영혼이 깊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난 지금 그런 휴식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간신히 눈을 뜨고 다시 이번 주말을 보낼 짐을 주섬주섬 챙긴 후 동역에서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타자 마자 나는 고개를 떨구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혹시라고 역을 놓칠까 두려워 중간에 고개를 들어 졸린 눈을 여니 밖에는 마치 숲 한 중앙을 지나듯 푸르른 나무들이 보였고, 찬란한 햇살이 창문을 넘어 쏟아 들어오고 있었다.


기차를 타기까지의 피로와 귀찮음은 햇살과 함께 눈 녹듯 사라지고 실로 오랜만의 평화가 마음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잠시 떠나 있던 고향으로 그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약 일 년 전 처음 이 곳으로 가던 기차 안에서 느꼈던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처음 이 곳을 떠나 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느꼈던 깊은 상실감이 떠올랐다.


'내가 이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벌써 몇 번째지?'


약 일 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이번에 정확히 다섯 번째 돌아가고 있었다. 가톨릭 신자도 아니었지만 난 매번 이곳을 떠날 때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잠시 이별하듯 마음이 매여오곤 했다.


다음에 다시 돌아올지 그리고 돌아온다면 언제일지는 늘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돌아가야 할 때는 내가 간절히 원할 때였고, 그건 늘 그때가 되야지만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난 언제나 몇 달이 지나면 약속한 듯 돌아오곤 했고, 그렇게 이 수녀원의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과 봄을 차례차례 경험하였다. 또한 계절과 더불어 매번 이곳에 돌아올 때마다 나 역시 조금씩 변해감을 느꼈다.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이 베네딕토 수녀원은 7세기에 설립된 곳으로 수녀원 자체가 프랑스 정부로부터 역사적 유적지로 지정된 곳이다. 한때 오스트리아 왕비가 머물기도 했던 이 수녀원은 프랑스혁명에 의해 파괴되었고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지만 18세기에 복원이 되었다. 지금은  수십 명의 수녀님들이 계시며, 이분들이 직접 손으로 빛어 굽는 세라믹 도자기 예술 작품들로도  유명한 곳이다. 


기차에서 내려 한 시간에 한대 있는 마을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뛰어갔지만, 휴일이 낀 주말이라 그런지 마을버스는 운영을 하지 않았다. 수녀원까지는 역에서 걸어서 45분 정도 걸리는데, 그리 멀진 않았어도 경사진 언덕을 올라야 해서 결코 만만한 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날씨도 좋았고, 난 산티아고 길에서처럼 걸어서 수녀원에 도착해야 하는 게 반가운 마음도 들어서 가방을 등에 지고 트렁크를 끌며 다리를 건너 강을 넘고 경사진 언덕을 올라가서 땀에 젖어 수녀원에 도착했다.


수녀원을 가는 길에 위치한 강


수녀원 앞에는 벌써 이번 주말에 머물 다른 체류객들 몇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기다리고 있자 호스트 수녀님이신 안나 수녀님이 도착했고, 그녀는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시며 말했다.


"여기 아는 얼굴이 있네"


워낙 유서 깊은 수녀원이다 보니 이곳에 오는 이들 중에는 이십 년 혹은 삼십 년 넘게 정기적으로 방문했던 이들이 있어 이들에 비하면 관계를 맺은 지 얼마 안 되었다.


하지만 프랑스인도 아니고 게다가 가톨릭 신자도 아닌 동양 여자가 혼자 일 년 가까이 나름 주기적으로 와서 그런지 올 때마다 점점 더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게 느껴졌다.


방에 짐을 두고 저녁 시간이라 저녁을 먹으로 식당으로 갔다. 수녀원의 식사는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철저한 침묵 속에서 진행된다. 처음에는 이 사실이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몇 번 그렇게 식사를 하다 보니 침묵 속에서 오고 가는 눈빛과 미소가 말보다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괜히 이런저런 식사나 술자리에서 침묵을 메꾸기 위해 했던 수많은 공허한 말들과 그 말들을 내뱉고 난 후 이어졌던 끝없는 후회들을 생각하면, 이 침묵은 더없이 빛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편했다. 서로가 제스처와 눈빛으로 음식을 권하고 알아서 일어나서 새 음식을 가져오고 접시를 치우고 하는 일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숙박하는 건물 안에서도 침묵을 되도록 지키며, 휴대폰 사용 자제를 요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침묵이 강조된다고 해서 만남이 이뤄지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쓸 때 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아도 되고, 자연스럽게 눈빛과 미소로 시작하여 대화가 이뤄지기에 상대방에게 집중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솔직하게 된다.  

 

수녀원에는 호스트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공간 말고도 조그마한 카페 같은 주방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는 아침 식사 및 간식거리와 차 혹은 커피가 늘 있어서, 오전 미사 후에는 이곳에서 만남과 대화가 가능하다.

만남과 대화가 이뤄지는 장소 


이 곳에 올 때마다 주말을 이용하여 짧게는 일박 이일 길게는 이박 삼일 정도를 머물었는데, 매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그런 만남들을 가질 수 있었다.


이곳에는 기도를 하기 위해 온 가톨릭 신자부터, 다른 공동체에서 오신 수녀님과 신부님, 시험을 준비하러 온 학생, 유아 심리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온 정신과 의사, 아프리카 난민 출신 뮤슬림 학생 등 내가 사회에서 만날 수 있는 것보다 더 다양한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만큼 열려 있는 사고를 지닌 수녀원이었으며, 편견이나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랬기에 나 역시 세상 다른 그 어느 곳에서보다 자유롭다고 느꼈는지 모른다.


또한 이 수녀원은 나에게 일상적 소비의 구조에서 잠시나마 조금 비켜날 수 있는 장소였다. 이곳은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곳이라 각자 비용을 알아서 내면 되었고, 그 비용은 스스로의 형편이나 의지에 따라 정하면 되었다.


식사 후 설거지 및 다음 식사 테이블 세팅은 물론이고, 퇴실할 때는 다음 방문객을 위해 깨끗이 방을 청소하고 나가게 되어있다. 원하면 정원일 등의 수녀원의 다른 일을 도울 수도 있다. 이곳에서 단순한 손님 혹은 고객으로만 머물렀다 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는 좋았다


기도나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 참여하고 싶은 체류객은 참여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 어쩌면 신과 만나는 것만큼 자신과의 만남이 필요한 이들이 이곳에 오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나 자신을 만나러 오던 내가 언제부터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대여섯 번 있는 기도로 하루의 전체 리듬이 결정되는 이 수녀원의 일상은 처음에는 내게 미지의 세계와도 같았다.


수녀원의 예배당 


기도에 참석하라고 등 떠 미는 사람도 전혀 없고, 의무도 아니기에 처음에는 호기심에 가장 짧은 기도에 참석했다. 하지만 성당에 울려 퍼지는 수녀님들의 노랫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다음번 이곳에 돌아왔을 때 또 난 또다시 기도에 참석을 하였고, 점차 이 곳에 올 때마다 기도에 참여하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일 년이 채 안된 지금, 어느새 나는 이곳에서 다음 기도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놀라곤 했다. 이게 아마 이 수녀원을 다니면서 내가 경험한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한국에 계시는 아는 수녀님에게 이 말을 하자 수녀님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가톨릭 신자 되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그런 그녀도 우리가 아는 내내 나에게 한 번도 가톨릭 신자가 되라고 한 적이 없었고, 이곳에서도 아무도 내가 가톨릭 신자가 아닌 거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러기를 권유하는 이도 없었다.


난 자발적으로 기도에 참여했고 점차 기도하는 법을 배워갔으며 적어도 이 곳에 있을 때만큼은 진심을 다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모두 다 성당을 나간 후에도 혼자 남아 눈물 흘리며 기도했으며, 또 가끔은 친구에게 속삭이듯 기도했다.


그 기도 속에서 나는 내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나를, 아니면 신을 만날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싼 촘촘한 안개가 걷어지는 듯한 이곳에서의 며칠이 지나면 나는 또 마음에 이슬을 머금고 안갯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겠지만, 아마 기도는 이 안갯속을 헤쳐나갈 수 있는 한 줄기 빛이지 않을까.


오늘도 그렇게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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