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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n 03. 2018

칸영화제 개막작 <에브리바디 노우즈>

진실을 아는 것이 과거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까?

2013년 칸영화제 공식 포스터


파라디 감독의 영화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은 2013년 칸영화제 기간 동안이었다. 이전에 파리에 있는 한국 방송국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나는 이년 연속 깐느 영화제에 취재차 참가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이런 행운은 일생에 두 번 다시없을 것을 알았기에, 나는 출장이 끝나고도 자비로 주말 동안 며칠 더 칸에 머무는 엄청난 짓(?)을 감행했다. 칸의 물가, 특히 영화제 기간 동안의 물가는 실로 어마어마했지만, 프레스 패스가 있기에 칸영화제 기간 동안 상영되는 거의 모든 영화를 사전 예약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데서 나는 위안 아닌 위안을 받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영화를 보다 머리가 더 이상 그 어떤 이미지나 대사를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포화 상태가 될 때면 나는 영화제 건물 바깥으로 나와 해변가를 걸었다. 오월의 칸은 아름다웠고, 바닷가는 빛났다. 파리가 아직 겨울과 봄 사이에서 노선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 거리고 있을 때, 칸의 오월은 봄보다는 여름에 가까웠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고 전 세계의 스타들이 몰려온 칸영화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토록 평화로운 해변가와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가 펼쳐진다는 사실에 나는 감탄했다.


지금 이 곳에서라면 저 상영되는 영화 외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홍상수 감독이 칸영화제 기간 동안 프랑스의 국민 배우인 이자벨 위페르와 함께 <끌레어의 카메라>를 촬영한 것도 그런 칸의 숨어 있는 이야기를 상상했던 게 아닐까?


칸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각각의 영화들은 영화제 기간 동안 이곳에 모인 이들에게는 단순한 문화 상품을 넘어서 어떤 숭고한 대상이었다.


한때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었던, 아니 그때는 여전히 꿈꾸고 있었던 이십 대의 나에게, 그곳은 말 그대로 꿈의 장소였다. 영화라는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전 세계에서 모인 장소라 마치 영화제 전체가 하나의 심장이 되어 박동 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때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아무도 머무르지 않았다>를 만났다. 칸영화제에서는 영화를 ‘보다’라는 말보다는 ‘만난다’는 말이 더 맞았는데, 정해진 시간 안에 어떤 영화를 만날 것인가를 선별한 후 그 영화가 상영될 때까지 마치 첫 미팅처럼 설레 하며 기다리기 때문이다. 나는 마법의 프레스 배지 덕분에 줄을 서지 않았지만, 일반 관객들은 상영시간 훨씬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여태껏 적지 않은 영화를 보았고, 그중 소수의 영화를 제외하면 거의 다 잊었지만, 칸에서 만났던 영화만큼은 아직까지도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어떤 영화는 기억은 있지만 감동은 잊었고, 또 어떤 영화는 오랫동안 여운이 지속되었는데 파라디 감독의 영화는 후자에 가까웠다.

 

그의 영화를 본 것이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그전에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봤었는데, 그때도 강렬한 인상을 받았지만 <아무도 머무르지 않았다> 만큼은 아니었다.<아무도 머무르지 않았다>는 일단 불어권에서 살거나 유학한 적 없는 감독이 완벽한 프랑스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나에겐 굉장한 충격이었다.

 

우디 알렌은 그곳이 프랑스던 스페인이든 영어로 완벽하게 뉴오커적인 그만의 색깔이 짙은 작품을 촬영하는데, 파라디 작품은 감독을 모르고 영화만 보면 프랑스나 스페인 현지 감독의 작품이라고 믿을 정도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완벽하게 다른 나라의 문화와 언어가 흡수된 영화를 찍으면서도, 한 번도 그의 영화가 인간의 깊은 내부의 미묘한 갈등 및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건 이번 주 주말에 파리 한 영화관에서 봤던 <에브리바디 노우즈>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칸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파라디 감독의 이번 신작은 내가 좋아하는 스페인의 대표 배우인 페넬로페 크루주와 하비에르 바르뎀이 주연 배우로 출연하고, 스페인 까스띠야 지방의 조그마한 와인 재배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에브레바디 노우스> 공식 포스터


실제 부부이며 스페인의 대표 배우인 이 두 배우가 출연했었고 인상 깊게 봤던 다른 영화는 우디 알렌 감독의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였고, 십 년 전 이 영화를 봤던 나는 오비에도에 가기를 그토록 꿈꿨었다. 제 작년에야 그 오랜 꿈을 이룰 수 있었던 나는 정작 그곳에 도착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어 했지만 말이다.


그의 영화는 여주인공인 로라가 동생의 결혼식을 맞아 자식들과 함께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한때 인생의 한 시절을 보냈었지만 이제는 내 삶에서 영원히 사라졌다고 믿는 과거의 장소로 돌아갈 때 늘 그렇듯, 그녀에게도 고향은 반가움과 동시에 두려움의 장소이다.


고향으로 회기 한다는 것은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은 잊었다고 믿은 지난 기억 및 아직 곪지 않은 상처와 마주쳐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말이다.  


파라디 감독의 이전 영화인 <아무도 머무르지 않았다> 역시 고향은 아니지만, 주인공 남자가 인생의 지난 한 시기를 보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시작된다. 그 영화의 불어 원제가 le passé, 직역하면 <과거>라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돌아간다는 행위 자체는 늘 돌아가는 이에게도, 그리고 그곳에 남아있던 이들에게도 지난 과거를 맞닫뜨려야 함을 의미했으니 말이다.  


그건 다시 돌아온 계기가 <아무도 머무르지 않았다>에서처럼 이미 몇 년 전에 헤어진 부인과의 이혼이라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든지, <에브리바디 노우즈>에서처럼 동생의 결혼식이라는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든 간에 마찬가지다.


<에브리바디 노우즈>에서는 모두 다 고향에 돌아온 여주인공 로라를 환영하였고, 성공한 사업과 남편과 결혼하여 스페인 촌구석에 머무르지 않고 아르헨티나로 떠난 그녀를 부러워함과 동시에 질투한다. 그녀의 남편은 일 때문에 바빠서 함께 올 수 없었고, 그녀는 한참 사춘기의 딸과 어린 아들을 데리고 혼자 고향에 돌아온다.


그녀 동생의 결혼식은 흥겨운 축제로, 모두 다 춤을 추며 기쁘고 행복해 보인다. 그녀의 딸이 사라지기 전까지 말이다. 그녀의 딸은 사라지고, 그녀는 인질범으로부터 돈을 요구하는 문자를 받는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결혼식의 현장이 범죄 현장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범인은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한 이들 중 한 명이거나, 적어도 공범자다. 여기까지는 언뜻 보면 아가타 크리스틴의 소설을 연상시킨다.


영화 속 흥겨운 피로연 장면


파라디 감독의 영화에는 항상 스릴러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아무도 머무르지 않았다>에서도 그는 누가 사미르의 아내를 자살로 몰았는가에 대해 웬만한 추리소설보다 더 강한 스릴과 반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런 서스펜스는 파라디 감독의 영화에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다. 이 장치를 통해 그는 주인공들의 내면 깊은 곳에 잠재해 있던 분노, 원망, 욕망을 하나씩 드러내고, 각자의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파라디 감독의 진실은 결코 흑과 백 혹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뉘지 않는다. 그게 내가 파라디 감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의 진실은 복합적이고도 상대적이다.


그리하여 그의 영화를 보는 재미는 범인을 찾는 데 있는 게 아닌 그 복합적인 진실을 각각의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에서 보며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마침내 진실과 마주하게 된 주인공들이 하게 될 선택을 추측해 보는 데 있다. 파라디 감독 역시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는 영화의 중요한 기능은 질문을 불러일으키고 관객들을 이야기로 초대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관객들이 단지 외부 관찰자가 되는 것보다, 영화가 그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고 영화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때 더 큰 희열을 느낀다고 믿는다'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국가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우디 앨런처럼 새로운 곳에 와서 그곳을 발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그곳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가는 인물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놀라운 시도로 느껴졌다. 그런 곳에서 자신이 모르는 외국어로 촬영을 하며 현재나 미래가 아닌 과거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그랬다.


또한, 그는 파리에서 촬영하면서도 한 번도 에펠탑이나 파리의 주요 관광 명소를 영화 속에 넣지 않았고, 스페인에서 찍으면서도 바르셀로나마 마드리드 같은 우리 모두가 아는 도시가 아닌 조그마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설정하였다.


즉 그는 한 장소와 문화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닌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했고, 그게 이란에서 촬영되었으며 이란 문화의 특수성이 시나리오에서 부각되어 있던 그의 전의 영화들과 달라진 점이었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보편성을 두 번이나 '과거'에서 찾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현대성의 정의 중 한 가지는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온전히 전진하려고 하는 데 있다. 그렇지만, 세계 어디서든 과거의 무게는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우리는 과거를 잊은 척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과거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진실을 아는 것이 그의 영화의 주인공들로 하여금 마침내 과거의 무게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를 받아들이고 나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여전히 잊은 척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그건 아마도 파라디 감독의 주인공들이 처한 딜레마이자, 관객인 우리들의 삶에서 또한 영원한 딜레마가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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