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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May 15. 2018

안나 가발다<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사랑이 떠난 자리에 딱지가 떨어지고 꽃이 피어나면

그렇게 서점에 서서 그녀의 책들을 물끄러미 보는데, 일 년 전 그녀의 신간을 읽은 후 찾았지만 그때는 서점에 재고가 없어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던 그녀의 첫 장편 소설인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가 보였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책을 집어 들고 계산을 마친 후 서점 밖으로 나왔다. 휴일이 이틀이나 끼어있는 주라 그런지 한참 거리에 활기가 돌아야 할 월요일이었지만 파리의 거리는 마치 여름휴가 시즌을 연상시키듯 텅 비어있었다. 초저녁의 햇살도 여전히 심지가 남아 있어서 봄보다는 여름을 연상시켰다.

 

오월의 한 월요일, 텅 빈 파리와 여름의 햇살은 나로 하여금 내가 모르는 행성에 이제 막 착륙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지하철을 타고 동네에 도착하니 지하철 역의 조그마한 꽃 집에서는 너무도 아름다운 노란 튤립이 보였다.


나는 늘 지하철에서 나올 때마다 꽃집 앞에서 망설이고는 했다.  


투박한 투명 종이로 싸져서 정렬되지 않고 여기저기 놓여있는 꽃들은 늘 나를 설레게 했고, 오늘은 한 다발 사갈까 하면서 두리번거리다가 도 늘 ‘다음에 선물할 때 있으면 사야지’라고 생각하며 미뤄왔다.  

 

정작 그 꽃을 갖고 싶었던 건 나였지만, 신기하게도 난 늘 그 꽃들을 보며 받으면 행복해할 다른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했다. 그리고 그 얼굴에 단 한 번도 내 얼굴은 떠오르지 못했다. 그렇게 기웃거리다 결국은 발걸음을 돌리는 게 나의 일과가 되었고, 오늘도 한 오분 가까이 서성거리다 지하철 역을 나왔을 때 내 안 깊은 곳에서 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까지 돌아 서기만 할 거야’  


그 목소리에 끌려 난 처음으로 발걸음을 돌려 꽃집으로 들어갔다.  

 

“저기요. 노란 튤립 주세요.” 

 

꽃집 아저씨는 여러 묶음으로 있던 노란 튤립을 꺼내며 물었다.

 

“몇 묶음 줄까? 한 묶음이 이 정도인데”  

 

“한 묶음만 주세요”  

 

아저씨는 웃으면서 두 묶음을 꺼내며 말했다.

 

“이거 한 묶음은 내 선물이야. 튤립도 이게 시즌 마지막이거든”  

 

“네? 이게 마지막 이라고요?”

 

“그럼 이제 튤립 시즌이 끝나가잖아. 지난 몇 주 동안 굉장히 많이 갔다 놓고 팔았는데 못 봤어?”

 

“봤어요. 보고 항상 망설였어요.”

 

“왜?”

 

“왠지 저 스스로에게 꽃을 사주는 게…” 

 

꽃집 아저씨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너무도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스스로에게 선물을 할 줄 아는 건 중요한 거야”  


저녁을 먹은 후 안나 가발다의 소설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하려다가, 튤립 시즌이 끝난다는 꽃집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고 나는 문득 튤립이 나는 시기가 궁금해졌다.  


인터넷에 ‘노란 튤립 시즌’을 치자, 연관 검색어로 예상치 못한 ‘노란 튤립 꽃말’이 검색창에 떴다. 호기심에 클릭을 해보니 노란 튤립의 꽃말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으로 좋아하는 이성에게 선물을 해서는 안 되는 꽃으로 꼽히고 있었다.  

 

심지어, 좋아하는 이성에게 노란 튤립을 선물 받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라고 올라온 글도 있었다. 그리고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날 저녁에 읽기 시작하여 그다음 날 오후에 끝냈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소설 역시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해 그리고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떠난 사람, 남겨진 사람, 떠나지 못한 사람. 그리고 이들 각자가 서로에게 또는 스스로에게 입힌 상처들.


떠난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떠나지 못한 사람도, 상처에서 자유러운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갑작스럽게 떠난 후 홀로 어린 딸들과 남겨진 며느리에게 시아버지가 하는 말은 그녀를 분노케 한다.


“왜 아무도 떠난 사람의 슬픔은 말하지 않지? 남겨진 사람은 위로하지만 떠난 사람은?


"떠난 그들이 뭐를 더 원하는데요? 상이라도 줘야 하나요? 아니면 격려의 말이라도 해줘야 하나요?"


"그들은 어느 날 아침 스스로를 거울에서 보면서 자신들에게만 들리게 묻지. '내가 틀릴 권리가 있나?'. 단지 이 몇 단어야. 자신의 삶을 직시하고, 모든 것을 깰 용기.. 이게 단지.. 순전한 이기심에 의해서일까? "


틀릴 권리, 근데 이걸 누가 주지?



너 자신이 아니라면 말이야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변호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그를 비난하고 분노하지만 시아버지는 말한다.

 

“너는 이것보다 더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한 번도 너의 내면에서 너를 꼬집으면서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어? 네가 많이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그는 떠난 상처도, 남겨진 상처도 결국은 모두 언젠가 아무를 거라고 말했다.


“삶은 강하니까..”

 

그리고 그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신도 상처를 받는 게 두려워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평생 아물지 못한 딱지처럼 살아온 자기 삶의 단 한 번의 사랑 이야기를.


"그 며칠 동안 나는 나 자신이었던 거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나 자신. 그녀와 함께 있으면, 내가 좋은 사람인 것만 같았어. 그렇게 간단했어."


"나는 처음으로 너무 행복해졌었어. 너무 행복했다고. 나는 궁금했고, 두려웠어. 이렇게 행복한 게 당연한 걸까? 내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

 

그는 상처를 입고 아무는 게 영원히 아물지 못한 상처를 평생 딱지처럼 지니고 사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다.


"나는 네가 평생 조금씩 고통스러워하며 사는 것보다 지금 많이 고통스러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고통스러워하며 사는 사람들을 봐왔어. 그 조금은 모든 걸 망치기에 충분하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대가는? 영원히 아물지 못할 후회와, 죄책감, 균열과 타협이라면. 영원히. 내 말 들려!"


평생에 단 한 번 진정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지만, 결국은 그 여인을 잃고 말았던 시아버지는 행복하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해결이 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행복은 거기에 있었는데 나는 내 삶을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행복을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줬지. 단지 손만 내밀면 되었는데 말이야.

 

"다른 것들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되었을 텐데 말이야. 우리가 행복할 때 나머지 것들은 자동적으로 해결되거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자칫하면 잘 못 오해될 수 있는 이 소설을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 혹은 가족을 버린 무책임한 가장과 남겨진 아내 그리고 그렇게 떠난 아들을 변호하려는 시아버지의 이야기로만 읽으면 곤란하다.


이 소설은 우리 삶의 매 순간에 존재하는 선택과 그 선택에 뒤따르는 상처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시간이 지나 아물 수 있는 상처와 반대로 영원히 고름처럼 남을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떠났던 7년 전 그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이맘때였는데 나는 누군가를 떠나고 있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것도 나를 떠났었던 누군가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나를 떠났었기에 나는 다시 그에게 돌아갈 수 있었고, 또 누군가를 떠났기에 그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선택과 상처와 눈물이 있었고, 떠났다고 해서, 돌아갔다고 해서 고통과 후회와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프고 힘들었던 나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토록 아물지 못할 것 같던 상처도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아물었고 상처가 있던 자리에는 어느새 보니 꽃이 났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나 자신에게 되묻는다. 그때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랬으면 어땠을까? 아마 그랬다면,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조금씩, 하지만 모든 걸 망치기에는 충분하게 조금씩, 그렇게 평생을 고통스러워하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결국은 주변까지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떨어지지 않은 딱지 같았던 그녀의 데뷔작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가 마침내 상처가 있던 자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자신의 유일한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털어놀 수 있었던 소설의 주인공 역시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녀를 사랑했나요?"


"어"


"어떻게 사랑했나요?"


"사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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