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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May 15. 2018

안나 가발다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떨어지지 않은 딱지처럼 내 안에서 아물지 못한 소설  


어제는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날이 더워져서 일부러 조금 열어놓고 잔 천장 창문에서는 강한 아침 햇살이 흘러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아직은 다 깨지 않은 상태로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마치 영화에서처럼 지금 눈을 뜨면 한 십삼 년 전의 나로 돌아가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의 내가 내가 아닌 느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


나는 꼭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만 그런 감정이 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도 그런 느낌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도 특별할 거 없는 아침이었고, 다른 날처럼 흘러가던 하루였는데, 왜 난 그때의 아침이 기억났을까? 지금보다 그때가 더 행복해서?


아마, 그때 이후 내 보잘것없는 삶을 관통한 십삼 년의 세월이 정말 빛의 속도로 지나갔음을 문득 어제 아침 눈을 떠보니 아침이라기 보단 오후에 더 가까운 햇살과 함께 느껴졌던 게 아닐까 ?


뭔가 허무하달까. 아니면 돌릴 수 없는 어떤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 그것도 아니면, 또 이 순간도 그렇게 지나갈까 싶은 두려움일까. 출근하는 내내 이 기분을 떨치치 못한 나는 오전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일에 매달렸다.


그렇게 해서 시간을 잡을 수는 없겠지만 내 뒤로 경주마처럼 달려가고 있는 시간을, 그 경주마에 모든 것을 다 걸은 사람처럼 조마조마하며 지켜보던 시선을, 껌벅거리는 윈도 화면 커서로 옮기고 싶었다.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는 안나 가발다의 단편들을 모아 만든 첫 소설집이었고, 그녀는 이 소설집을 시작으로 명실 공연한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이 책은 내가 프랑스에서 불어로 읽은 첫번째 소설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나간 프랑스 영화 퀴즈 대회에 준우승하여 프랑스 문화원에서 니스로 삼주간의 어학연수를 보내주었고, 그때 어학원에서 따르던 선생님이 추천해 준 소설이 그녀의 첫번째 단편집이었던 것이다.


그 후 어떤 우연인지, 십사 년이 지나 내가 첫 책을 냈던 그 해에, 내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서 15년 전에 한국에 나왔다가 절판되었던 안나 가발다의 첫 장편 소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를 개정 출간하였다.  


열여덟 살에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언어로 읽었던 소설이었고 또 누군가 나에게 어떤 책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결코 단 한 번도 손꼽아 말하던 책도 작가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의 어떤 인물들과 소설 속의 상황들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녀의 첫 단편집은 세상의 강한 주파수를 찾아 나서던 열 여덣의 나에게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로 강렬한 자극을 주지는 못했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책의 울림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어서 잊을만하면 나를 불러내곤 했다.


그리고 오늘 퇴근 후 한 파리의 서점에서, 열여덟 살에 읽었던 첫 불어 소설 앞에 나는 다시 서 있었다. 마치 십삼 년 전의 아침이 오늘 아침과 겹쳐졌던 것처럼, 결국은 힘들게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에 서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녀의 첫 책을 읽은 후, 그녀는 적지 않은 책을 냈지만 내가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이후 읽었던 그녀의 소설은 작년까지만 해도 <더 나은 삶> 이 다였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은 내가 희미하게 하지만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던 안나 가발다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녀의 첫 소설집의 느낌이 틀렸던 것인지, 아니면 굳건히 자리 잡은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쓰기만 하면 책의 흥행이 보장되는 그녀가 변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그녀의 책을 다시 찾지 않았다.    


아마 영영 다시 찾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작년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그녀의 신간을 출간할까 하는데 혹시 그쪽 분위기가 어떤지 알려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지 않았으면 말이다. 소설도 읽어보고 대략적인 느낌을 말해줄 수 있겠냐고 해서 금요일 저녁 퇴근하는 길에 서점에 가서 나오자마자 떡하니 베스트셀러 매대에 올라와 있는 그녀의 신간 소설을 집어 들고 집에 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주말 이틀 동안 거의 다 읽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처럼 단편으로 엮어진 그녀의 신작에서는 그녀의 데뷔작에서 느꼈던 그 느낌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왜 내가 그녀의 첫 작품을 잊지 못하고 있었는지 15년 만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아물지 않는 상처를 긁는 듯한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희망을, 그것도 절망적인 희망을 이야기하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그녀의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 딱지처럼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수없이 상처를 입을 때마다 그 딱지 역시 떨어지지 못하고 내 안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는 12개의 단편 소설들로 이뤄져 있다. 소설마다 다 다른 주인공이고, 이 주인공들이 처하게 되는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은 다들 예기치 못한 절망적인 사건을 겪게 된다.


방금 태아를 유산했지만 가족의 결혼식이 있어 이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결혼식에 참석하는 여자와,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수십 명의 사망자를 낸 교통사고가 일어난 것을 저녁 뉴스로 알게 되는 가장, 친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아버지의 재규어를 몰래 끌고 갔다가 도로에서 멧돼지를 만나 박살을 내고 마는 아들.


마지막 단편은 에필로그라는 제목으로 한 예비 작가가 원고를 보낸 출판사에서 미팅을 제안하여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며 출판사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언뜻 그녀의 첫 데뷔작인 이 소설이 나오기까지의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꼭지로 해피 엔딩을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독자의 마지막 기대마저 보란 듯이 산산조각 낸다.


주인공은 지금 당장 출판은 어렵겠다는 출판사 담당자의 말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온몸이 마비되어 다른 이들에게 들려져서 거리로 나오게 된다.


12개의 단편 소설들 중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해피엔딩은 단 하나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에피소드들 중 그 어느 것도 단지 절망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그들이 처한 상황이 호전되어서도, 주인공들이 어떤 해결책을 찾아서도 아니다.


다만 소설의 주인공들은 너무 빨리 절망에서 벋어나려고 하지 않고, 어설픈 희망을 말하지도 않는다. 단지, 시간이 지나 상처의 딱지가 자연스럽게 떨어지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 또한 내 안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아물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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