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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an 21. 2018

진실이 상처가 되는 것이 두려울 때

진실은 우리들 사이에 놓인 강을 건너가기 위한 조그마한 징검다리

동생은 진실을 말하라는데. 동생이 하는 말을 다 전할 수는 없죠. 그러면 엄마가 상처받으니깐요


"안 그래도 나도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서 힘든데, 동생이 하는 말을 엄마가 너무 상처받지 않도록 고쳐서 전하려니 더 힘든 거 같아요."


내 앞에는 서로 성인이 되고, 결혼하고, 애 엄마 아빠가 될 때까지 지구 반대편에서 소식도 모르고 살아오다가 작년에 다시 만나게 된 어렸을 때 프랑스로 입양된 남자와 그의 한국 친 여동생이 있었다.


둘 사이에 공통된 모국어만 없다 뿐이지 나란히 앉아있는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오빠와 여동생이었다.


그는 중고등 학생들 상담일을 해오다가, 다시 한국 가족들과 재회한 후 한국과 프랑스를 자주 오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13년간 있던 직장을 떠나고 얼마 전에 무역일을 시작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듯 '잊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 한국의 친 여동생과 시작한 사업이라 그런지 그는 당장 많을 돈을 버는 것보다는 그렇게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자신의 한국 가족을 만나고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그리고 자신의 뿌리를 알아가는데 더 많은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 문화를 알아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들을 나열하다 그는 말했다.


진실을 말하는 게 가장 힘든 거 같아요. 여기서는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말하는 게 너무 당연한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하면 자주 상처받는 거 같아요.


처음에는 그가 말하는 진실이 정말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늘 직설적이었고 감정 표현만큼은 그게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상하 여부를 막론하고 자신이 가진 그 감정 자체를 온전히 들어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깐.


하지만 그들의 말을 듣다 보니 거의 사십 년 만에 재회한 엄마와 아들이 보였고, 그 수십 년이란 '잊어버린 시간'을 본인도 능숙하지 못한 영어로 징검다리를 놓고 있는 누나가 보였다.


아주 모래알만 한 진실도 어떻게 전달되느냐에 따라 파도가 되어 현재를 덮칠 수 있는 과거 앞에, 이미 내가 모르는 세계 속에 자라 성인이 된 고집 센 아들과 수십 년을 죄책감 속에 보냈을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그 진실이 자신의 엄마에게 비수가 돼서 꽂히지 않도록 거르고 걸러서 전해주고 있을 누나가 있었다.


"중간에서 말을 통역하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진실을 말한다는 것, 특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상처받을 수 있을 때 진실을 전한다는 것. 그건 우리가 삶에서 수없이 막 딱 드려야 하는 상황이다. 나도 이번 주만 해도 '이 사람에게 진실을 말해야 하나'를 수 없이 고민했고 결국은 말을 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아무리 상대를 위한다고 하더라도 상대에게 상처를 입혀야 한다면 결국에는 나 역시 말하지 않은 편을 더 자주 택하며 살고 있었다. 심지어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의 등을 떠밀기도 했다.


"아니 친하다면 이런 건 말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니야?"


저도 그 정도까지 친한 건 아니에요. 어떻게 말을 해줘요? 정말 친했으면 말을 했겠지만... 그러고 보면 저랑 그 친구의 관계도 그렇게 진실한 건 아니죠.

남매는 작년에 재회한 후 벌써 프랑스와 한국으로 왕래만 세 번이었고, 그동안 이미 여러 번 싸우고 울었다고 했다. 수십 년의 세월을 서로의 부재 속에 살았으며 영어라는 제 3 국어로 어렵사리 의사소통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 끈끈함은 함께 세월을 건너온 가족만큼이나 질겨보였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하다 보니, 거기에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더라도 이해를 하고 이해를 받으려는 끝없는 노력이 있었다.

 

얘는 항상 진실을 말하다 보니까, 저도 처음에는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우리는 정말로 상대방의 입장이 될 때까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내가 어느덧 상대방의 입장에 놓이게 되면, 그때야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하기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내가 그때 생각했던 진실은 어디까지나 나만의 진실이었다는 걸.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 언젠가 놓이게 되는 이런 운 좋은 경우는 인생에 매번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정말 안타깝게도, 그런 기회가 생긴다고 해도 이미 너무 늦었을 때가 삶에서는 대부분이었다.


그러기에 이 남매가 지금 아이 엄마 그리고 아이 아빠가 돼서 다시 만난 지금 각자의 진실을 말하고, 상처받고 또 상처를 주며 울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서로를 이해해 나가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내겐 무척이나 건강해 보였다.


이 모든 것은 '애정'과 '용기'가 없으면 가능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에. 그리고 나 역시 대부분 진실을 말하는 것을 피해가며 살아가고 있기에.


어쩌면 진실은 이들의 '잊어버린 시간'을 찾아가기 위한 핑계에 불과한 게 아닐까?


어쩌면 진실은 우리들 사이에 놓인 강을 건너가기 위한 조그마한 징검다리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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