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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an 15. 2018

파리의 이태리 미용사

파리 마레지구 애증의 파마 체험기  

"네가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나는 지금 내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지금 나한테 협박을 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무런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오히려 본인이 씩씩거리며, 이빨을 깨물고 마치 영화 대부에나 나올 듯한 마피아처럼 나직한 목소리로 말이다. 대머리에, 긴 수염, 문신이 잔뜩 새겨진 그의 팔은 총만 안 들었다 뿐이지 나를 언제고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네가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난 너의 파마를 할 수 없어. 일단 머리를 자르고 그때 보자."


아니 나를 도착해서 지금까지 한 시간 넘게 기다리게 했으면서, 사과는 못 할 망정 지금 나를 협박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순간 나는 내면의 갈등이 극에 달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까지 굳이 파마를 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 파마는 다음에 한국 들어갈 때 하고 오늘은 머리만 자르고 말까.'


마레에 사는 직장 동료가 산책하다 우연히 발견한 미용실인데 최고의 미용실이라고 그렇게 칭찬을 해서 두 달 전에 예약을 잡고 여태껏 기다려 왔는데. 이게 웬걸, 미용실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잡은 약속인데, 늦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와 나는 칼퇴를 하고 걸음을 재촉하며 예약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지만, 십오 분이 넘어 삼십 분이 되고 삼십 분이 한 시간이 될 때까지 그는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기다리며 먹으라고 물이나 커피 한잔도 주지 않았다. 저녁도 못 먹고 달려와서 허기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어 지금이라도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한참 고민하다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참고 앉아 있었는데, 그다음 상황은 점점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그는 나를 의자로 안내하고는 어떤 파마를 하고 싶은 건지 한참을 묻더니,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질문을 했다.


"이 전에는 어떻게 파마를 했어?"

"응? 그게 무슨 말이에요?"

"뭘로 했냐고?"

"뭘로 했다니요. 미용실에 있는 기계로 했지요."

"음.. 우리는 기계가 없어."

"네? 기계가 없다니요? 그럼 어떻게 해요?"

"약으로 할 거야"


세상에 파마를 하는데 기계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 나에게 파마란 집게와 비닐 그리고 머리 위에서 돌아가는 기계인데 말이다. 너무나 황당한 그 말에 "아니 기계가 없이 어떻게 해요?" 했다가 그는 나를 오히려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보고는 말했다.


"여기는 기계로 하는 곳이 별로 없어. 그건 거의 대부분 불법이야"


저건 또 무슨 말이란 말인가. 한국에서는 모든 미용실에서 파마를 기계로 하는데, 그럼 한국 모든 미용실이 여기서는 불법이라는 말인가. 프랑스에 온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커트는 프랑스 미용실에서 해왔어도, 파마만큼은 늘 한국에서 해온 나는 순간 어리둥절 해지며 지금 이 이태리 미용사 아저씨가 나한테 사기를 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잠시 있다가 아저씨가 또 사라져서 보니, 아저씨는 뭔가를 한참 찼다가 그 찾는 게 보이지 않는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고는, 미용실 다른 한쪽 구석으로 가서 전화까지 하고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무슨 문제가 생겼구나라고 느끼고 아저씨를 잡고 물어봤다.


"저기 혹시 무슨 문제 있으세요?"

"별 일은 아닌데.. 내 파마 기구가 없어졌어. 다른 미용실이 하나 더 있는데 거기서 빌려가서 안 가져다줬어."


산 넘어 산이라고, 파마 기계가 없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아니 이제는 파마 기구마저 없다고 하면 오늘 파마를 하긴 하겠다는 건지 싶었다. 아저씨에게 어이없다는 표정과 불신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오늘 저녁 파마를 하긴 하는 건가요?"


딱 봐도 미용사보다는 마피아에 가까운 외모의 아저씨는 이를 자신의 능력에 대한 도전이라 여기고 불 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네가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난 너의 파마를 할 수 없어."


나도 기계도 없고 기구도 없는 이 아저씨에게 파마를 맡기는 게 불안했던 찰나에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유럽에서는 기계 없이 파마를 하는 곳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이때는 알지 못했다.


커트를 하기 전 머리를 감는데, 아저씨는 직접 머리를 감기고, 머리 마사지도 정성껏 아주 오랫동안 해주었다. 머리를 감긴 후 나에게 자리에서 일어서라고 하더니, 선 상태로 머리 커트를 시작했다. 서서 얼굴 각도를 조금씩 틀게 한 다음 매번 오른쪽 왼쪽의 길이를 확인하면서 마치 조각을 하듯 머리카락을 손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방금까지 나를 협박하던 이태리 마피아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신의 일에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진정한 장인 아니 예술가가 나타났다.


길이를 줄이는 것도 아니고 파마를 하기 위해 머리만 다듬을 뿐인데,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완벽함을 추구하는 조각가처럼 머리를 자르고 체크하는 과장을 거의 수십 번 반복했다, 머리 커트가 끝나자 나는 왜 아저씨가 한 시간이나 늦었는지, 파마를 할 수 있겠냐는 말에 왜 그토록 기분 나빠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여태껏 했던 커트 중 가장 정성이 들어간 커트였다. 커트가 끝나자 내 입에서 절로 모르게 나왔다.


"저 오늘 파마할래요."

"진짜야?"

"네"

"너 미쳤구나"


그러고는 우리 둘은 한참 웃고서는 그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지금 시작하면 굉장히 늦어질 텐데, 차라리 다른 날에 오면 어때?"

"아니요. 저 오늘 할래요."


그 말에 그는 나에게 입히고 있던 가운의 마지막 목의 매듭에서 힘을 줘서 내 목을 거의 조를 뻔했다. 


다시 한번 과연 그에게 내 머리를 맡겨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이렇게 된 거 어쩌겠는가. 씩씩거리면서 파마약을 준비하는 그의 모습에서 일종의 쾌감도 느꼈다. 나와 함께 온 동료뿐 아니라 미용실의 다른 직원들도 나와 보스 간의 팽팽한 신경전을 소리 없이 지켜보고 있었고, 다시 살벌한 분위기에서 파마는 시작되었다.


그는 숙련된 솜씨로 머리를 잡아 말았고, 다시 커트할 때처럼 고도의 집중력으로 펌을 시작했다. 그는 놀라웠는데, 미용사로서의 기술뿐만 아니라 머리를 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그의 유일한 고객이 된 것만 같았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동작 하나하나에 엄청난 정성을 쏟았고,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여타 다른 미용실에서 하는 것처럼 동시간에 여러 손님을 받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음에도, 한 타임에 딱 한 손님만 받았고, 그 손님이 자신의 마지막 손님인 것처럼 모든 정성과 시간을 들였다.


자연스럽게 내가 그랬듯, 그다음 손님의 차례는 기약 없이 늦어졌을 것이다. 자신이 보스임에도 그 어떤 것도 다른 동료에게 부탁하지 않았고, 다른 직원이 다 퇴근한 후에도 혼자 남아서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손님의 머리를 했다.


머리를 말고 약을 붇기 시작하자, 표피가 누구보다도 약한 나는 쓰라린 고통을 겪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아저씨와의 신경전과 허기로 에너지가 소진될 때로 소진된 나는 더 이상 고통을 호소할 기운도 없이 체념하듯 앞으로 다가올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최악의 상황은 파마가 끝나고 거울을 볼 때 벌어질 것이라 확신하면서.그렇게 약이 들기를 기다리고, 아저씨가 다시 헹구어내고, 약을 부우기를 반복하는 동안 나는 얼마 후면 거울 속에 보일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경험으로 볼 때 이런 상황에는 보통 결과가 둘 중 하나였다


아주 좋거나 혹은 아주 나쁘거나.


아저씨가 머리를 다 헹구고 마침내 일어나라고 했을 때, 나는 벌떡 일어서서 거울로 달려가려고 했지만 바로 그 찰나에 아저씨는 내 어깨를 잡고 다시 머리를 감은 의자에 앉혔다.


"당장 달려가서 어떻게 머리가 나왔나 보고 싶지"


내가 웃자 그 또한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내가 너를 알아가지 않아?"


그리고는 정성스럽게 머리에 물기를 어느 정도 짜낸다음 "자 이제 저기로 가도 돼" 하며 거울을 가리켰다.


두 근 두 근 두 근....


차마 거울을 보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다 용기를 내 거울을 보니, 이게 왠 걸 미용실 오면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예뻐진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하자 아저씨도 기쁘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때부터 미용사 아저씨는 신났는지 한참 또 머리를 말리면서 이런저런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협박을 하고 있던 그는 이제는 내가 몇 년 동안 그곳을 다닌 친한 단골인 것처럼 대했고, 우리는 그렇게 애증의 시간을 갖은 후 기념으로 함께 사진까지 촬영하고 웃으며 혜어졌다.


심지어 그는 예약을 한 동료에게 다음 날 전화해서 내 머리를 체크한 다음 며칠간 감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으며, 문제가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까지 전했다.


애증의 파마.. 이 파마는 몇 달 지나면 풀리겠지만, 그의 미용실에서 보냈던 장작 다섯 시간에 가까운 기억은 언제 어디서 파마를 하든지 기억날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나는 어쩌면 나의 기준에 맞춰 너무 쉽게 불신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며 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끝까지 그를 믿는다는 게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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