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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an 26. 2018

인생의 체중계

지금 내 인생의 몸무게는 얼마나 나갈까?

                                                                                                                                                                                                                                                                                                                                                 

“요즘 몸무게가 매일 같이 늘고 있어서 큰일이에요.”


“아니 몸무게를 매일매일 재세요?”


“네”


“보기보단 외모에 신경 많이 쓰시네”


“아니 그게 아니라..”


'몸무게가 중요한 게 꼭 외모 때문이 아니라요. 그게 제 인생의 현재 상태를 반영하는 거라서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들어갔다.


벌써 몇 번을 그다음 얘기를 했었고 다들 들을 때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말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해를 못하는 건 좋은데 종종 다들 자기식대로 내 말을 해석하고는 했다.


“그래 살이 찌면 건강에 안 좋으니까”


그러면 거기서 또다시 긴 설명에 들어가야 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요. 저는 제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끼거나, 우울해지면 살이 찌거든요. 그래서 몸무게를 매일 체크하는 거예요.’


그 정도쯤 되면 상대방도 더 이상 반박을 하거나 어설픈 해석을 내놓지는 못했다. ‘몸무게’라는 가벼운 주제가 갑자기 늘어난 몸무게만큼이나 무거워지며 분위기도 따라 가라앉는 걸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난 내가 행복하지 않을 때나 혹은 뭔가 회피하고 싶은 게 있을 때 몸무게가 고무줄처럼 늘어났던 경험이 있다.


그때는 집에 체중계도 없어서 목욕탕에 가거나 하지 않으면 몸무게를 잴 일도 없어서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던 게 태반이었다. 그러다 몇 달 후에 적게는 몇 킬로에서 많게는 십 킬로 넘게 늘어난 걸 보고 충격을 받거나 아니면 체중계가 고장이 났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오죽하면 목욕탕에서 체중계 고장 났다며 목욕탕 아주머니에게 난리를 쳤을까.


항상 그렇게 체중계의 눈금이 급격히 전진하기 시작했을 때는 삶에 전반적으로 불안과 불만이 침투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였고, 그럴 때면 그 어느 때보다 음식을 통해 보상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채우지 못한 무언가를 다른 반복적인 행위들을 통해 보상을 받고자 할 때, 그때가 바로 우리의 마음에 적신호가 켜져 있을 때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삶에서 그런 적신호가 뜰 때 대피하는 중독적인 행위들이 있다. 한 지인은 그럴 때는 마구잡이로 쇼핑을 한다고 했다.


“필요해서 사는 것도 아니고 입어보지도 않고 사 와서는 그다음 날 바로 바꾸거나 환불받으러 가요.”


또 다른 친구는 말했다.


“난 그럴 때는 잠을 계속 자. 졸려서 자는 게 아니라 그냥 잠만 와”


나는 이럴 땐 먹는다. 먹고 또 먹고, 그리고 신기하게도 즐겁지 않게 먹은 음식은 그렇지 않을 때 먹은 음식보다 더 빨리 살로 간다. 한때 미스코리아를 양성하던 미용실에서 일했던 이모가 했던 말이 있었다.


‘맛있게 먹지 마. 맛있게 먹으면 다 살로 간다’


하지만 나는 불행할 때 먹은 음식은, 마치 음식이 그 불행의 일부가 된 듯 몸을 떠날지 몰라했었다. 그 어떤 것도 한번 내 몸 안으로 들어온 불행을 몸 밖으로 몰아내지는 못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다행히 그런 시기는 지났고 불행이 몸안에 남아 독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돌보는 법을 배웠지만, 그래도 매일 아침마다 체중계에 올라간다.


단지 내가 몇 킬로가 덜 나가고 더 나가는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 잘 지내는지 그리고 행복한지를 보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정말 그런 인생의 체중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지금 우리 인생의 몸무게를 재어주고, 내 삶이 얼마나 더 다양한 '비계'들로 무거워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인생의 체중계가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하고 말이다.  



정말로 그런 체중계가 있다면, 지금 내 인생의 몸무게는 얼마나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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