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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Oct 11. 2018

사막 횡단에서 배운 열 가지

 

어려웠던 시간을 지난 뒤,
생생한 색채를 띠는
저 나무들, 저 꽃들,
저 여인들, 저 미소들,
우리들에게 주어진
평범한 것들의 합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중


마라케시로 돌아가는 길에 일행 중 에이트 벤하두라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요새 도시에 들려야 하는 사람이 있어, 우리 모두 거기에 들려 점심을 먹고 관광을 했다. 글레디에이터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 곳에는 관광객이 넘쳐서 거리에는 온통 상인들의 호객행위가 이뤄지고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된 에이트 벤하두 ⓒ 주형원


일주일 가까이 고요로 가득한 사막에 있다가 갑자기 닥친 이 소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머리가 아프고 눈이 따가우면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요새를 다 둘러보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 일행과 다시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갔다. 그 후로도 하루 종일 차를 타고 마라케시에 지칠 대로 지쳐서 도착했다.

 

사막에서는 아무리 뙤약볕에서 걸어도 피곤하다는 생각이 신기할 정도로 안 들었는데, 여정이 끝나고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은 갑자기 엄청난 피로가 몰려옴을 느꼈다. 일행들도 똑같이 말했다.
 
 “잠을 못 잘 때도 하나도 안 피곤했는데, 갑자기 엄청 피곤해”
 

마라케시에 도착한 날 밤에 머물렀던 호스텔에 다시 돌아와서 거의 일주일 만에 샤워를 했다. 전에는 머리를 깜고 샤워를 하는 게 이토록 특별한 행위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모든 동작 하나하나를 음미했다. 샤워 후에는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뽀송뽀송 한 시트와 베개가 있는 침대에 누우니 엄청난 호사를 누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익숙함이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다.


다시 내가 아는 익숙한 문명으로 돌아온 게 편하고 좋기도 하는 한편, 내가 며칠 동안 사막에서 살아본 유목민의 삶이 벌써부터 미칠 듯이 그리웠다. 한 번이라도 다르게 살아본다는 것. 그건 여태까지의 당연함을 물음표로 바꿔놓았다. 나는 앞으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마음속에는 늘 한구석에 사막이 있을 것임을 확신했다.





비행기에서 내다 보이는 구름 바다 ⓒ 주형원


드디어 모든 사막 여행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창문 옆에 앉아 낮이 밤이 되어가는 과정을 경이롭게 지켜보고 있다. 구름은 마치 굽이치는 파도를 떠올리게 했다. 사막에서도 모래 언덕이 광활한 모래 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들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우주의 모든 것은 서로 닮은 구석이 있었다.  하늘과 바다가, 바다와 사막이. 그리고 사막과  마음이.
 
예전 같으면 무심코 넘겼을 해가 지고 해가 뜨는 광경들이 사막 여행 이후 다르게 보였다. 파리로 가는 세 시간이 넘은 비행 동안 나는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며 유심히 보았다.  

 

지는 황혼과 파도 같은 구름, 그 위로 서서히 내려오는 밤의 푸르름. 칵테일 하늘이 사라지며 찾아온 어둠. 그리고 그 어둠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별 하나.   어느  하나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안에서, 사막 모래 언덕 위에서 일몰을 볼 때처럼 감동했다. 왜 생텍쥐페리가 그토록 밤 비행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마라케시에서 파리로 가는 밤 비행 ⓒ 주형원

 

오를리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했고, 비행기를 나오자마자 프랑스 한 은행의 광고들이 통로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 광고에는 <모든 것이 야망에 달려있다>라는 공격적인 마케팅 문구가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정말 다행이라고

 

아직은 지구 상에 야망이  자리가 없는 사막 같은 공간이 존재해서.


광활한 사막 언덕에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혼자 앉아 있어 본 사람은 야망이 이 우주에서 얼마나 공허한 단어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사막 언덕에 읹아 있는 이브라임 ⓒ 주형원


 집으로 오는 길에 사막에서 내가 배운 것들이 뭐가 있을까 하나하나 적어보았다.

 

 1.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경이라는 
 
 2. 이빨을 닦고 샤워를 하는 일상의 행위가 성스러운 행위라는 
 
 3. 물은 삶이라는 
 
 4. 별과 달은 인터넷이나 영화보다  흥미진진하다는 
 
 5. 고요는  무엇보다 값진 것이라는 
 
 6. 사막에서도   방울로 식물과 나무  생명이 자란다는  
 
 7. 사막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8. 홀로는 결코 사막을 건널  없다는 
 
 9. 광활한 사막 안에 우리 존재는 왔다가 가는 바람과도 같다는 
 
 10. 아무것도 없을  모든 것이 보인다는 
 

이제 현실로 돌아왔기 때문에 또다시 힘든 일상이 시작되겠지만 나는 안다. 힘들고 지칠 때면 사막 언덕에 홀로 고요히 앉아있던 그때로 돌아갈 것임을.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과 사구를 보며 느꼈던 마음의 평화를 떠올릴 것임을.


뜨고 지는 태양과 반짝이는 별들 그리고 그것들 만으로도 충만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그리고 기억할 것이다.


너무 힘들 때 달려갈 수 있는 마음의 사막이 늘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어린왕자> 중 사막의 꽃 삽화



연재 마지막 회입니다. 비록 세 달 동안의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저에게는 이 연재가 사막보다 더 삭막한 하루살이에서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걸어 나가게 하는 별빛이었습니다. 많이 부족한 글과 사진이었지만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 별이 되어 함께 은하수 길을 만들 수 있기를 꿈꿔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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