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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Sep 27. 2018

사막에 무지개가 뜬다면

사막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풍경이다.

생텍쥐페리


사막 여행 중 매일 밤이 되면 작은 모닥불 음악회가 열렸다. 저녁을 먹고 모두 모닥불 옆에 동그랗게 앉으면 뮤지션인 할리파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그 옆에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모하메드가 어디선가 가져온 통을 두드렸다. 음악을 하는 솔렌 역시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우리 모두에게 기타가 돌아갔다.

 

하지만 유목민 가이드들과 우리 모두가 서로 같이 아닌 노래라고는 징글벨 밖에 없기에 함께 아는 노래를 찾아서 부르기는 쉽지 않았다. 나 역시 프랑스에 오래 살았어도 모든 프랑스 노래를 아는 건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리파도 뮤지션이고 항상 무엇을 하든 노래를 부르는 그였지만, 모닥불에서 단독으로 노래를 부르려니 어색했던지 아니면 재미가 없었던지 몇 곳만 부르고 말았다.

 

진짜 사막의 음악회는 이렇게 유목민 가이드들이 우리를 위해 일부러 마련한 자리가 아니었다. 나의 기억 속에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는 사막의 음악회는 우리가 잠자리에 들면 우리의 유목민 가이드들이 하루의 피로를 풀고 즐기기 위해 즉흥적으로 열리는 말 그대로 음악의 축제였다.

 

일행 거의 대부분이 잠을 자러 갔을 때 나는 하늘에 잔뜩 뿌려진 별을 사진에 담아보겠다고 계속 시도를 하다 생각만큼 나오지 않는 사진에 실망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부족한 사진 실력을 탓하며 모래 언덕 위에 침낭을 깔고 잠에 들 준비를 시작할 때, 언덕 아래서 모닥불 연기와 함께 올라오는 솔렌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즉석에서 자작한 곡을 기타와 함께 연주하며 부르고 있었다.


사막에서 연주 중인 가이드 하리파와 광대 솔렌 ⓒ 주형원

 

“나는 낙타 등에 올라가 세상을 여행하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사막 언덕을 미끄럼틀처럼 타고 내려와,

 

세상을 거꾸로 보는 거야"

 

그녀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아름다운 가사가 들리자 나는 침낭에 들어가지 않고 언덕을 내려가 모닥불 옆에 자리 잡았다. 모닥불 옆에는 하리파와 그의 동료이자 친한 친구인 모하메드 그리고 솔렌과 끌레르가 있었다. 주로 하리파나 모하메드가 기타를 잡고 반주를 넣기 시작하면, 우리 중 한 명이 떠오르는 멜로디나 노래를 시작했고 다른 이들은 거기에 화음을 맞춰 따라 불렀다. 끌레르가 갑자기 부탁을 했다.

 

“한국 노래 하나만 불러주면 안 돼?”

 

“한국 노래?”

 

“그래 한국 노래 듣고 싶어”

 

모하메드가 기타 반주를 시작했고, 나는 얼떨결에 나 빼고 여기 있는 이들 중 그 누구도 살면서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을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을 부르기 시작했다. 반주를 하는 모하메드는 전혀 모르는 곡이었지만 내 멜로디를 따라 반주를 넣기 시작했고, 나는 기억을 더듬어 가사를 찾아가며 부르기 시작했다.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며,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별이 빛나는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서 모닥불 옆에 앉아 사막의 유목민들과 프랑스인들 앞에서 이문세 노래를 부르고 있는 지금 이 순간과 그런 나 자신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고요한 사막에서 그들은 내 노래에 귀를 기울여주었고, 어느 순간 낙타 관리인 목타르까지 와서 팔꿈치를 베고 누워서 듣고 있었다.


모로코 유목민들과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말로 부르는 이 노래를, 과연 가사도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로 얼마나 공감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내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노래를 듣고 있는 그들의 표정에서는 가사로 미처 다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마음으로 귀 기울여 듣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기억이 미쳐 다 나지 않는 가사를 더듬어가며 부른 노래가 끝나자 모두들 지나칠 정도의 찬사를 해주었다.


음악과 함께 저물어가는 사막의 저녁 ⓒ 주형원

 

내 노래가 끝나자 우리의 즉흥 음악회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누군가 기타로 즉흥 멜로디를 시작하면 다른 누군가는 노래를 불렀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에 맞춰 흥얼거리면서 그 자체가 음악이 그리고 노래가 되었다. 심지어 솔렌은 가사도 즉석에서 지어 하리파나 모하메드가 연주하는 멜로디에 함께 넣어 부르곤 했다.

 

이때 나는 알 수 있었다.


다 같이 아는 노래가 없다는 사실이 같이 노래를 부르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함께 부르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말이다.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중 하리파가 물었다.

 

“너희 농담 아는 거 있어?”

 

“농담?”

 

“응”

 

“글세, 지금 당장은 생각이 안 나는데”

 

“그럼 내가 문제를 내볼 테니 답을 맞혀봐”

 

“뿔이 없을 때도 있고, 두 개가 생기기도 하는 게 있어. 이게 뭘까?”

 

“염소?”

 

“아니”

 

“아 알겠다. 유니콘?”

 

“아니”

 

우리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자 그는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멀리 있지 않아”


모닥불 옆에서 끓고 있는 우리가 저녁마다 마시던 차 ⓒ 주형원

 

내가 불현듯 생각이 떠올라 말했다.

 

“달”

 

“정답”

 

“맞추면 뭐가 있는 거야?”

 

하리파는 농담으로 “저기 저 낙타 한 마리” 하면서 웃더니, 두 번째 문제를 냈다.

 

“여자랑 낙타의 차이가 뭔지 알아?”

 

이건 한참 동안 아무도 답을 맞히지 못하자 결국 하리파는 답을 말했다.

 

“여자랑은 삶을 건너고, 낙타랑은 사막을 건너지”

 

고등학생 끌레르가 김이 식었다는 표정으로 “에이, 이게 무슨 농담이야” 라며 싱겁다는 듯 웃었고, 나 역시 '나는 무슨 웃긴 말이라고”라고 하며 따라 웃었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삶의 동반자랑은 인생의 사막을 함께 건너지

 

구름 낀 밤하늘에서도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사하라 사막의 별들 ⓒ 주형원


우리는 그렇게 새벽까지 노래를 부르고 농담(?)을 하다 잘 채비를 하려고 모닥불 옆에 침낭을 깔고 누웠다. 그 순간이 너무도 행복해서 바로 자고 싶지 않았다. 누워서 별을 조금 더 바라보다 자고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모르게 스르르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행복한 날은 늘 잠도 쉽게 찾아왔다. 


그렇게 사막에 온 지 처음으로 누운 지 얼마 안돼 바로 꿀잠에 빠졌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얼굴에 한 방울, 두 방울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어느새 사정없이 빗줄기가 얼굴을 내리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야외에서 자던 이들 모두 짐을 챙겨 텐트 안으로 대피하고 있었다. 


사막에 비가 그것도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동이 트는 사하라 사막의 새벽 ⓒ 주형원

다음날 아침, 나는 저절로 떠진 눈에 아침 일찍 일어났고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해 모래 언덕으로 올라갔다. 태양이 완전히 떠올랐을 때, 내 뒤에서 알렉스가 불렀다. 돌아보니 그는 내 뒤편의 하늘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등을 돌려 하늘을 본 나는 내 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너무도 찬란한 무지개가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걸쳐있던 것이다.

 

사막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무지개를 볼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나는 이때 처음 알았다. 사막에도 비가 내리고 무지개가 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무지개가 사라지면 모래에 떨어진 빗방울들로 이 척박한 사막에도 생명이 싹튼다는 것을. 어느새 무지개는 두 겹이 되어 우리의 텐트 뒤 사막 하늘에 걸쳐 있었다.

 

나는 희망한다.


아니 믿는다.


종종 아무런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막 같은 우리 인생에도 비가 오고 무지개가 뜨는 날이 언젠가는 있다는 것을.

 

우리 텐트 뒤로 겹으로 뜬 무지개 ⓒ 주형원


우리는 준비가 잘된 축제에 온 것 같은 가벼운 흥분마저 맛보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없이 궁핍했다.
바람과 모래와 별들뿐.
하지만 이 어둠 속에서, 이 세상에 추억 외에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예닐곱 명의 사나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를 서로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마침내 서로 만난 것이다.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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