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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Oct 04. 2018

아름다운 것들만 언제나 끝이 있다

늘 좋은 것들만 끝이 있어

 

장뤽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인생에서는 좋지 않은 일들도 언젠가는 끝이 나게 되는데 왜 좋은 것들만 끝이 있다고 할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빨리 끝났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것들은 종료와 동시에 안도와 해방감을 느낀다는 것을. 하지만 정말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은 오랫동안 두고두고 끝을 아쉬워한다는 것을.

 

오늘은 다른 날보다 걷는 게 더욱더 쉽지 않았다. 거리도 지금까지 걸었던 것 중 제일 길었고, 날도 무척이나 더웠다. 하지만 나를 정말 힘들 게 하는 건 더위도 피로도 아니었다. 벌써 내일이면 이 사하라 사막 여행이 끝난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몰려오는 아쉬움이었다.


장뤽의 말처럼 좋은 것들만 끝이 있다지만 이제야 사막과 하나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 벌써 여행이 끝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함께 낙타를 타고 사구를 넘고 있는 솔렌과 샤샤 ⓒ 주형원

 

걷고 있는데, 솔렌이 다가와 말했다.

 

“오늘 저녁은 우리가 처음에 밤을 보냈던 정착된 비우박으로 돌아간데”

 

“설마. 오늘도 사막에서 야영하는 거 아니야?”

 

“그런다고 하던데”

 

“그러면 사실상 여행이 끝나는 거잖아”

 

“그렇지”

 

“나는 벌써 끝내고 싶지 않은데”

 

사막을 자기 마당처럼 거니는 이브라임 ⓒ 주형원


시간과 제약을 벗어난 공간에서 약 일주일 가까이 생활했는데 이제 다시 그것들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것은 무한성이라는 바다에서 헤엄치다 한계와 제약이라는 촘촘한 그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정착된 비우박도 사막에 있기는 했으나, 그곳은 더 이상 지금처럼 매일매일 걷다가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짐을 놓고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키는 유목민의 터전이 아니었다.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별 대신 벽이, 바람 대신 창과 문이 있음을 의미했다.

 

사막, 제약이 존재하지 않은 공간 ⓒ 주형원

 

오늘 저녁을 보낼 장소에 다가가자 저 멀리 안테나가 보이기 시작했고, 사막도 여태까지 본 사막과는 다른 마른 평지에 가까운 전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다시 처음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분명 그때도 같은 경관을 봤겠지만, 사막 깊숙한 곳에서 며칠을 보내고 돌아오니 그때와는 다른 눈으로 보였다. 사막이 변한 것일까?


아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변한 것이다.

 

다행히 오늘 밤을 보내는 곳은 고정된 비우박이 아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낙타에서 짐을 내리고 텐트를 치고 오늘 밤만 머무를 야영지가 완성되었지만, 더 이상 같지 않았다.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막 위에 버려진 쓰레기가 보였다.


나는 내 안의 사막이 여기서 이미 끝이 났음을 느꼈다.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자 저 멀리 지프차가 다가오더니 첫날 만났던 여행사의 사장인 사이드가 내렸다. 그는 내려서 우리에게 오더니 물었다.

 

“여행 어땠어?”

 

“너무 좋아서 벌써부터 다시 오고 싶어. 더 길게”

 

그는 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그래 다음에는 더 길게 와. 우리는 이주 트랙도 있고, 한 달짜리 트레킹도 있어.”

 

“한 달이요?”

 

“그래. 세 달 동안 걸어서 모로코 사하라부터 모리타니 사하라까지 가는 사람도 있는데 뭐”

 

“그 트랙도 하세요?”

 

그는 엄청난 관심을 보이며 급격하게 빛나는 내 눈빛에 조금은 당황하더니 재미있다는 듯 보면서 대답했다.

 

“아니 우리는 그건 안 해”

 

그렇게 세 달 동안 사막을 걸으러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을까? 나 또한 그의 표정을 보고 내 질문이 조금 황당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비록 언제 일지는 모를지라도 꿈꿀 수 있는 여행이 하나 더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니까.

 

저녁에 마지막으로 사하라 사막에서 별과 달을 보기 위해 모래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에 올라가니 한쪽으로는 달과 별로 가득한 사하라 사막의 하늘이, 다른 한쪽으로는 문명에 가까워졌다는 신호인 안테나와 마을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달과 별이 빛나는 하늘은 이제 내가 떠나야 하는 곳이었고, 안테나와 불빛은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나는 문명을 등지고 앉아, 한참 동안 별과 달을 바라보았다.

 

기억할 수 있을까? 이 사막을, 별과 달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사하라 사막에서의 마지막 노을 ⓒ 주형원

 

그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도시로 가기 위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기 전에, 나는 가져온 물티슈로 온 몸을 닦고 사막에 와서 처음으로 칫솔질을 했다.

 

여태까지는 물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못하다 며칠 만에 이빨을 닦으니 칫솔질을 하는 그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새롭게 느껴졌고 생각지도 못한 기쁨을 느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반복적으로 하던 일상적인 행위들이 사실은 얼마나 경이롭고 성스러운 행위였는지.

 

그러고 보면 우리 일상 곳곳에 경이롭지 것은 않은 단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우리를 여태까지 안내한 사하라 사막의 유목민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다음에 또 만나기를 바래요’라는 내 인사와 포옹에 마치 아빠처럼 느껴졌던 최고의 사막 요리사인 이브라임은 답했다.

 

“인샬라(만약 신이 원하신다면)”

 

어느새 솔렌은 울기 시작했다. 나 역시 사막을 떠나면서 차에서 무언가 돌처럼 묵직한 것이 마음을 누르는 것을 느꼈다. 사막과 벌써 이별하고 싶지 않은데, 이별할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다가온 것에 대한 슬픔과 아쉬움이 나를 덮치고 있었다. 가는 도중 엠마가 말했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거 같은데, 또 동시에 아주 오래 전의 일 같아.”

 

모두 그 말에 공감을 했다. 어쩌면 사막을 빠져나온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 사막에서의 모든 기억은 이미 오래 전의 과거의 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모든 삶의 마법은 어느 순간 결국 깨지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믿는다. 영원히 깨지지 않을 마법도 이 세상에는 존재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마법을 찾을 때까지 나는 삶의 여행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마법같은 사막 ⓒ 주형원



진주를 만지기는 하면서도 그것을 해면에까지
내올 줄 모르는 인도의 잠수부여
그대는 이제 어디로 가서 보물을 찾으려는가?
내가 디디고 걸어 다니는 이 사막,
납추 모양으로 땅에 붙들려 있는 내가 걷는 이 사막
나는 거기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마술사여,
그대에게는 이것이 모래의 베일에 지나지 않고,
한 가면에 지나지 않는 것을.

-생텍쥐페리 <남방 우편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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