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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Sep 20. 2018

'사막에서 뭐 해?'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오직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걸음.

항상 같은 걸음일지라도 내딛어야 한다.


-생텍쥐페리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쉽고 빠르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 걸어서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건 아직 무언가를 믿는다는 게 아닐까?
걸어서 사막을 횡단 중인 일행 ⓒ 주형원


어떤 가치를 믿고, 꿈을 믿고. 사람을 믿고, 자연을 믿고. 또한 세상의 편리함에 역행할 수 있는 용기가 아주 조금은 있다는 게 아닐까? 세상은 분명 편리함을 추구하는 이들에 의해 발전할 수 있었지만, 또한 그 편리함을 지나치게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파괴되고도 있으니 말이다.

  

사막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륜차나 낙타를 타고 들어와 정착된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갔다. 하지만 나는 사막의 진정한 발견은 오직 걸어서 만이 가능함을 이번 여행에서 느꼈다.


사막이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 발로 천천히 사막의 속살을 헤집어 들어갔고, 해가 다시 들어가고 달을 데리고 나온 저녁이 하늘에 별을 뿌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모닥불을 피우고 노래를 불렀다.

  

매일 밤 모닥불 주변에 앉아 노래를 부르던 우리  ⓒ 주형원


사막에는 그 어떤 자취나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했으며, 그건 누군가가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암묵적으로 한 약속이었다. 사막은 정착하는 이들의 소유지가 아닌 자유로운 유목민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그 누구의 땅도 아니었기에 동시에 모두의 땅이기도 했다.


우리가 떠나기 전 매 아침마다 그 전날 사용한 휴지나 쓰레기는 모두 태워졌으며, 곧 바람에 흩어질 재만 남겨놓고 매일 다시 짐을 챙겨 떠났다. 물이 없어 전혀 씻지 못하기에 어느새 머리카락과 모래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매일 머리를 감는 게 습관이 되었기에 머리를 못 감는 건 힘이 들었는데 그것도 며칠이 지나니 적응을 했는지 더 이상은 가렵지도 않았다.

 

사막은 건조해서 아무리 씻지 않고 걸어도 크게 땀으로 끈적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우리는 샤워를 하지 않아도 특별히 냄새가 나지 않음을 신기해했다. 냄새가 만약 나고 지저분하다고 느껴졌더라도 모두가 같은 상황이었기에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장실은 광활한 사막에서 각자가 일을 보고 싶을 때마다 고르는 은밀한 곳이었고, 우리는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수많은 사막 언덕 중 하나를 골라 뒤로 가서 일을 보고 나왔다. 사막에 결코 쓰레기를 버리거나 묻지 않는다는 원칙에 의해 휴지는 철저하게 소각했다.

 

잠이 유일한 문제였는데, 안 그래도 잠에 예민한 나였는데 아무래도 환경이 완전히 바뀌다 보니 잠이 드는데 시간이 걸렸고 새벽에 쉽게 깨고는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몸이 완전히 깨는데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상하게도 잠 부족 자체에 의해 피곤하다고는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걸 느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엠마도 내 말에 동의하면서 말했다.

 

“집에서 이렇게 잠을 못 잤으면 회사에 가서 커피를 연달아 마시면서 기분도 별로였을 거야. 근대 신기하게 여기서는 그렇지 않아. 잠을 분명이 잘 못 자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아”

 

그녀의 말이 맞았다. 분명 잠을 잘 못 자고 씻지도 못했으며 심지어 뙤약볕에서 하루 종일 걷는데도, 집에서 주말에 정오까지 늦잠을 잘 때 보다 덜 피곤했고, 심지어 에너지가 몸 안에서 솟구침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피로는 육체보다는 정신적인 상태에 더 좌지우지되는지도 모르겠다. 


걸어서 사구를 오르고 있는 일행들 ⓒ 주형원






우리는 오전 내내 걸어서 다음 야영 장소에 도착하면 사막 바닥에 누워 쓰러져 낮잠을 잤다. 이렇게 사막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쉬면 마치 집 소파에서 쉬는 것만큼 편했다. 아니 어쩌면 집보다 더 집 같았다. 

 

내 파리의 작은 아파트 거실 소파에 누워 쉴 때면 내 손에는 가끔 책이 그리고 그 보다 더 자주 휴대폰이 쥐어져 있었다. 난 그 휴대폰으로 원하는 정보도 찾고, 영화도 보고, 멀리 있는 친구와도 이야기를 하는 등 여러 가지를 했지만, 동시에 아무 것도 안하고 있었다.

 

집에서 휴식을 취하면서도 난 단 한 번도 바깥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본 적이 없었으며, 그와 동시에 나 자신과도 온전히 연결되지 못했다. 하지만 자연이라는 거대한 집에서 거실 소파가 아닌 사막에 누워 휴대폰 액정 화면 대신 하늘과 구름 그리고 별을 볼 때면 내 자신 그리고 내가 속한 이 세상과 완벽하게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이 나중에 돌아와서 사막에 다녀왔다면 물었다.

 

사막에서 뭐 해? 심심하지 않았어?

 

이 질문을 받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사막에서 단 한 순간도 심심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냥 항상 이렇게 살아왔던 것만 같았다. 오히려 그토록 사람들이 동경하는 파리에 살면서 심심하다고 느낀 적이 더 많았다.

 

“아니 전혀 안 심심했는데”

 

내 대답에 상대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사막에 와서 지루함만 사라진 건 아니었다. 동시에 시간 감각도 온전히 사라졌다. 사막에 들어온 이후 시간을 볼 필요도 없고, 휴대폰을 충전 하지도 못하니 자연스럽게 단 한 번도 시간을 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지 않고 지내니 모든 시간 감각이 사라졌다.

 

어느새 내 유일한 시계는 해와 달과 별이 되었다.


오늘이 며칠인지, 몇 요일인지 지금이 몇 시 인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내가 시간에 대해 유일하게 아쉬워하는 건 딱 한 가지 얼마 후면 이 행복한 시간이 끝난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면 더더욱 매 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노을 지는 사막의 언덕 ⓒ 주형원


그래서 종종 일행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사막 언덕을 찾아 올라갔다. 사막 언덕 위에 홀로 앉아 있으니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사막과, 물결처럼 이어져 있는 사구들이 보였다. 다른 때였으면 자연의 웅장함이나 광활함에 압도당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외부의 전경에 흡수되는 게 아니라 내 안으로 더욱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있었지만, 정말로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이 사막이 아닌 내 내면의 무늬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막은 항상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내 안에 있어왔는데, 이제야 오랫동안 내 안에 있던 사막을 내 밖에서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 같았다. 

  

안에서 무언가 용암구처럼 끌어 오르기 시작함을 느꼈고, 나는 그동안 내 안 어디선가 나를 짓누르고 있던, 혹은 내가 짓누르고 있던 감정들이 화산 폭발처럼 터져 나오려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질량의 슬픔이 썰물처럼 나를 덮쳤다.

 

하지만 이 슬픔은 내가 일상에서 종종 느끼고 하는 그런 분노가 섞인 우울이나 슬픔과는 결이 달랐다. 보통 슬픔은 슬픔의 파장을 확장시키고는 했는데, 지금은 슬픔이 슬픔을 위로하고 있었다. 때때로 슬픔은 더 깊은 슬픔에 의해서만 치료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잔잔한 파도를 연상 시키는 사막의 사구들 ⓒ 주형원

 

눈물이 폭포수처럼 넘쳐 흐를 것 같았지만, 정작 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건 눈물 딱 한 방울이었다. 생텍쥐페리는 비행기 조종사로 사하라 사막을 비행하며 사하라 사막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역시 사막에 오면 모래 언덕에 오랫동안 앉아있고는 했다. 그는 말했다.

 

난 항상 사막을 좋아했어. 사막 언덕에 앉아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하지만 무언가가 침묵 속에서 빛나고 있어.


그가 말하는 침묵 안에서 빛나는 무언가는 어쩌면 눈물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삶에는 눈물처럼 침묵 안에서만 빛나는 것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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