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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Sep 13. 2018

사막 한복판에서 길을 잃다


우리는 친숙한 풍경이며 정다운 집이며 애정을 간직한 단 하나의 진정한 별,
바로 우리의 별을 찾다가 결코 다가갈 수 없는 100개의 별들 가운데서
길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것들을 간직하고 있던 단 하나의 별 ...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중


오후에는 점심을 먹고 우리가 위치한 드라 계곡 지역에서 가장 높은 모래 언덕을 올라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자하르 모래사막에 있는 ‘울부짖는 모래 언덕’이라고 불리는 가진 이 모래 언덕의 높이는 무려 300미터로 일반 건물의 한 층의 높이가 평균 4미터 정도 된다고 봤을 때 무려 75층에 해당되는 높이이며,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의 높이와도 같았다.

 

그래서 그랬을까? 하리파는 이 곳을 설명하면서 웃으며 말했다.

 

“너희는 이제 유목민의 에펠탑을 보러 갈 거야”

 

점심을 먹고 조금 휴식을 취한 후 울부짖는 모래 언덕을 향해 가는데 여태까지는 이번 여행에서 보지 못했던 그토록 꿈꾸었던 금빛 모래사막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여행을 시작해서 암석 사막이라고 불리는 돌사막을 주로 지나왔다. 모래사막은 전체 사하라 사막 면적의 십 분의 일도 안 되었기에 주로 모래사막보다는 돌사막을 지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한편, 모래사막은 걸으면 발이 푹푹 빠지기 때문에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기가 훨씬 더 어려워서 하루 종일 트레킹을 하기에는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던 참이었다.  

 

사하라의 모래사막 ⓒ 주형원


바다라고 다 같지 않고 각각의 바다마다 제각기 다른 빛깔과 고유의 파도 소리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사막 역시 각각 고유의 경관과 바람 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이 모래사막에는 ‘울부짖는 언덕’이라고 불리는 높은 모래 언덕이 여러 있었는데, 바람이 불면 이 언덕들이 마치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를 낸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여러 모래 언덕들은 바람이 지나가면 종종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소리를 내기도 했는데, 이렇게 바람과 모래 언덕이 만나 함께 내는 멜로디는 ‘모래 언덕의 노래’라고 불렸다. 모래 언덕의 노래의 신비에 대한 여러 과학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적만 가득할 줄 알았던 사막도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고, 바다와 바람이 만나 파도가 생기 듯 사막은 모래와 바람을 통해 자신만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샤샤를 업고 사구 위를 걸어가는 솔렌 ⓒ 주형원


나와 솔렌과 샤샤를 비롯한 고등학생 클라리스와 갸이아르는 감탄을 반복하며 걸어가다가 그만 가이드와 다른 일행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거대한 사막은 모래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더 이상 그 누구의 발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나머지 그룹의 자취를 찾기 위해 솔렌이 일단 눈에 보이는 가장 높은 모래 언덕 위로 올라갔다.

 

“저기 있어. 저기”

 

나머지 일행을 따라잡기 위해 솔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지만, 또 얼마 지나면 그들을 잃어버렸다. 마치 사막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찾고 잃어버리기를 반복하다가, 더 이상 그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순간이 찾아왔다. 우리는 ‘왼쪽? 오른쪽?’을 말하며 나머지 일행이 어느 쪽으로 갔을 것인가에 대한 추측을 시작했다.

 

‘일행이랑 길이 완전히 엇갈린 거 아니야? 사막에서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사막에는 길 표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하나로 나있는 길 또한 없었다. 이 말인 즉 모든 곳이 동시에 길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의미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막에서 길을 잃게 되면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새삼 유목민들이 이 사막에서 길을 잃지 않고 매번 옮겨 다니며 사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궁금해서 목타르에게 물어보았다.

 

“너희는 길 표시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이 사막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

 

“모래 언덕과 나무를 보며 찾지”

 

그의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면 내 눈에는 모두 똑같이 생긴 모래 언덕들이고 나무였다. 타고난 길치인 나에게는 나무와 모래 언덕들로 ‘도대체 어떻게 구별을 한다는 거지?’ 싶었지만, 사막이 삶의 터전인 이들에게는 각각의 나무와 언덕이 모두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걸은 지 일정 시간이 지났음에도 일행이 계속 보이지 않아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근처에 있는 높은 모래 언덕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랬더니 이 사막에서 가장 높은 모래 언덕 위에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하리파와 나머지 일행이 보였다.

 

가장 높은 모래 언덕 위에서 길 잃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일행들 ⓒ 주형원

 

가까스로 그들이 있는 언덕까지 도착해 오르려고 보니 모래 언덕이라기보다는 가파른 절벽에 더 가까웠다. 혹시나 떨어져 구르게 되어도 허공으로의 추락이 아닌 쿠션같이 푹신한 모래에서 썰매 타듯 구르는 것 밖에 아닐 텐데도 나는 떨어지는 게 두려웠다. 체력적으로도 발이 푹푹 박히는 300미터짜리 사막 경사를 오르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어서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간신히 정상에 도착하였다.

 

정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막 등성이 아닌 모래로 이뤄진 사막 산 하나를 탄 것만 같았다. 내려갈 때는 경사길이 아닌 측면으로 마치 보드를 타듯 모래를 미끌며 내려왔는데, 만만치 않은 높이에 현기증이 났다. 밑에서 나를 기다리던 다른 일행들은 “달려서 내려와. 그럼 더 빨라” 라며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외쳤지만 나는 도무지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침대 매트리스보다 더 푹신한 이 모래 위에 떨어져도 결코 다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나는 떨어질까 봐 조심하며 내려가고 있었다.


조심스레 모래 사구 경사를 내려오고 있는 나 ⓒ 주형원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태양은 어느새 꿈을 꾸기 위해 사막 이불 깊숙하게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 세상이 캄캄 해지며 별들이 하나둘씩 얼굴을 드러냈다. 우리 모두는 배낭에 헤드램프를 지니고 있었지만, 별빛 말고는 빛 한 점 없는 사막에서 그 누구도 그걸 꺼내 켜려고 하지 않았다.

 

하리파는 우리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고 있었고, 어둠 속에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노랫소리는 별 빛만큼이나 뚜렷하게 빛나며 우리의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별을 따라 걸었다.


길이 없다는 것, 그건 모든 것이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그저 모래와 별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연약한 존재,
단지 숨을 쉰다는 것의 달콤함 만을 의식하고 있는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 가슴 속에는 꿈이 가득 찼다.
그 꿈들은 샘물처럼 소리 없이 다가왔다.
나는 그것을 깨닫자 두 눈을 꼭 감고 황홀한 추억에 나 자신을 맡겨 버렸다.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중
바람과 모래 그리고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영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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