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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Sep 06. 2018

사막의 바람, 유목민 뮤지션 하리파

나는 영혼의 정착민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아무것도 나누지 못하며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생텍쥐페리>


오늘 아침에는 걷는 내내 가이드인 하리파와 유목민의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하리파를 처음 보자마자 그가 풍기는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압도당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이거나 조금 더 어릴 거 같아 보였던 그에게서는 자신만의 별을 따라가는 이들에게만 느낄 수 있는 자유러우면서도 깊고 신비한 분위기가 있었다.

 

특히 그는 하늘색 유목민 의상을 입고 하얀색 터번을 두르고 있었는데, 그런 그를 보며 나는 그가 사막의 하늘을 꼭 빼닮았다고 생각했다. 짙은 눈빛과 하늘색 옷을 입고 모래 언덕 위에 앉아 있거나 한쪽 팔을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 있는 그를 볼 때면, 그가 사막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사막과 하늘을 이어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을 정도였다.


사막과 하늘의 중간 어디쯤의 하리파 ⓒ주형원


하지만 그런 그의 분위기에 매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견고한 자신의 세계가 있어 보이는 그이기에, 내가 다가가 말을 거는 것조차 방해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역시 원래 말이 별로 없는지 함께 온 유목민들과의 대화에서도 이야기하기보다는 주로 듣는 쪽이었다. 하지만 말이 많지 않은 그는 종종 걸으며 노래를 불렀다. 그가 노래를 시작하면 함께 온 동료들도 그의 멜로디를 따라서 이어 부르고는 했다. 솔렌은 아침을 먹으며 말했다.

 

“하리파는 뮤지션이래. 유럽이나 아프리카 등의 여러 나라 국제 음악 페스티벌들에 초청을 받아 가서 연주도 한데.”

 

어제 모두 다 첫날의 여정에 지쳐 일찍 자려고 누웠을 때, 솔렌이 샤사를 재우고 모닥불 옆에서 하리파와 늦은 시간까지 소곤소곤 오랜 대화를 나누고 있어서 무슨 이야기를 첫날밤 저렇게 할까 싶었는데, 둘의 공통의 관심사인 음악에 대해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 것이다. 솔렌도 광대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고, 또 음악도 전문적으로 하고 싶은 꿈이 있다고 했다.

 

나는 사막의 하늘을 그토록 닮은 그가 뮤지션이라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사막의 하늘을 닮은 하리파 ⓒ주형원

 

“무슨 음악을 하는데?”

 

“젬배. 그룹으로 하는데 올해 여름에도 프랑스의 음악 축제에 초대받았다고 했어. 정확히 어디서 할지는 아직 안 정해졌다고 하는데 알게 되면 말해달라고 했어. 나도 가보고 싶어서.”

 

“그럼 언젠가 너희 둘이 함께 음악을 하면 되겠네”

 

솔렌은 내 말에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그럴 수 있으면 좋은데.. 나는 아직 아마추어 단계야”

 

그렇게 아침을 먹고 오전에 출발해서 혼자 걷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가 먼저 다가와 대화를 걸었다. 그는 얼굴은 분명 아시아인이고, 한국인이라고 하면서 프랑스 사람들과 불어로 말하며 다니는 내가 신기했던지 나에게 여러 질문을 했다.  


“프랑스에 살아??”

 

“어”

 

“프랑스 어디?”

 

“파리”

 

“언제부터?”

 

“글쎄 한 십 년 넘었어.”

 

“너는? 너는 항상 여기 산 거야?”

 

“응”

 

“여기서는 친구를 만나면 뭘 해?”

 

“사막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이랑 친구들이 있어서, 그들을 만나러 가서 차를 마시거나 같이 음악을 연주해”

 

“사막에 집이 있는 거야?”

 

“아니. 사막에 텐트를 치고 사는데 일정한 기간마다 옮겨 다녀”

 

“아직도 사막에 사는 유목민이 많이 있어?”

 

그렇게 내 삶에 대해 그리고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우리의 대화는 어느새 사막에서 여전히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이들로 주제가 옮겨갔다.

 

이 지역 사하라 사막에 살았던 유목민들의 숫자는 최근 40년 동안 급격히 줄었다. 지속되는 가뭄과 알제리와 모로코 사이의 국경 문제가 생기며 사막을 종횡하며 생활하던 유목민들의 대다수가 정착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착한 유목민’이라 불리고 있었다.  

 

“왜 늘 옮겨 다니는 거야?”

 

“물 때문이야”

 

“한 두 달이 지나면 대부분 있는 곳에서 물을 찾기가 힘들어 지거든”

 

“아니, 그렇게 살면 돈은 어떻게 벌어?”

 

“사막에서 사는 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아. 여기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어”

 

어떻게 돈을 안 벌고 먹고살 수 있어?


ⓒ주형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질문에 나 스스로 당황해하고 있을 때, 그는 오히려 이런 질문을 받아본 게 한두 번이 아닌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어보았다. 돈을 벌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살고 싶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인 사회에 사는 나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현재 나의 삶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었다. 종종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될까’라고 주위에 물어볼 때마다 매번 메아리처럼 늘 돌아오는 답변이 있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돈은 벌어 야지’

 

그런 나에게 그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도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나를 지금 놀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럼. 키우는 염소에서 나는 우유와, 고기가 있고 모래 빵도 있고”

 

“모래 빵?”

 

“응. 모래로 만드는 빵”

 

“모래로 빵을 만든다고? 말도 안 돼”

 

“빵 반죽을 해서 뜨거운 모래 안에 넣어서 그 위에 불을 지피면 빵이 돼서 나오지. 내일 저녁에 만들 예정이니까 그때 보여줄 게”


여태껏 살면서 먹은 그 어떤 빵보다 맛있었던 사막의 모래 빵 ⓒ 주형원


그의 대답을 듣고 나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돈을 안 벌어도 되면 하루 종일 이 사막에서 뭘 하며 지내는데?

 

“할 일은 늘 많아. 여자들은 염소를 데리고 나가고, 남자들은 낙타를 데리고 나가서 하루가 끝날 때 돌아오지. 염소젖을 짜고, 장작으로 쓸 나무를 찾고, 빵을 만들고, 물을 찾고 하루가 금방 지나가지.”

 

“너는? 너는 마라케시 같은 도시에 가서 살고 싶지 않아? 그러면 공연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고, 음악 하기도 더 쉬울 텐데?”

 

“아니. 나는 여기에 사는 게 좋아. 도시에서는 살고 싶지 않아. 여기서 나는 자유롭고 평화로워.”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그가 부러웠다. 도시에 가면 뮤지션으로 성공할 기회가 더 많아질 수 있음에도 자유롭게 이 곳에 살기를 선호하는 하리파는 사막의 바람처럼 살고 있었다.


 바람처럼 사막을 자유롭게 종횡하는 하리파 ⓒ 주형원

가만히 들어보면, 사막에서는 정말 바람 소리가 다르게 났다. 왜 그럴까 생각하니, 사막에서는 벽이나 높은 건물 같은 장애물이 없어서 바람이 자유롭게 사막을 종횡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리파는 이 바람과 같았고, 나 역시 그처럼 살고 싶었다.

 

어느새 솔렌과 낙타몰이꾼 목타르가 함께 징글벨 노래를 부르며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연초에 그것도 사하라 사막 한 가운에서 징글벨 노래를 듣는 건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솔렌이 불어로 한 소절을 부르면 목타르가 아랍어로 솔렌이 부른 멜로디를 따라 부르며 가고 있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며 걷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광활한 자연이 있는데 왜 우리는 그토록 좁은 공간에서 서로를 원망하고 미워하며 살아가는 걸까?’

 

벽과 천장으로 가득한 세상에 사는 우리는 어쩌면 서로와 서로의 사이에도 이미 너무 많은 벽을 두고 살아가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우리들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고 영혼의 유목민으로 사막의 바람처럼 서로 오갈 수 있기를 꿈꿔본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추억들 가운데 오래 지속되고 있는
우정을 찾아보거나 소중한 시간의 목록을 만들어 보면,
그것들이 돈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임을 확실히 알게 된다.

메르모즈 같은 사람과의 우정, 그리고 함께 겪은 시련을 통해
영원토록 맺어진 동료와의 우정을 돈으로 살 수는 없다.

야간 비행과 수십만 개의 별들, 청명함, 몇 시간의 숭고함,
이런 것들은 모두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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