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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Aug 23. 2018

본격적인 사막 횡단 시작

사막은 그대에게 선물을 안겨 주고 그대를 변화시킨다.

그대 자신에 몰입하고, 좌절하고, 괴로워하고 싸우며

갈증으로 들끓는 사막을 횡단하라.

눈물을 감추어라.

그러면 내 그대의 성숙을 도울지니.

 

<생텍쥐페리>

  

숙소를 떠나 중간에 십 오분 정도 휴식을 취한 걸 제외하고는 오전 내내 걸었다. 지난해 사하라에 잠깐 왔을 때는 사방이 사구로 이루어진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막을 경험했었기에, 그때를 생각하고 과연 준비되지 않은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오늘은 대부분 평지 사막이라 걱정했던 것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게다가 커다란 짐들은 낙타가 대신 짊어지고 가주고 있어서, 하루 종일 거의 십 킬로 가까이 등에 매고 걸어야 했던 산티아고 길을 걸었을 때보다 훨씬 가벼웠다. 물론 더위와 모래 바람이 기다리고 있기는 했지만 나는 이들이 비교적 두렵지는 않았다.


더위에는 비교적 강하고 이미 산티아고 길을 여러 번 걸은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하루 종일 더위에 걷는 것도 두렵지는 않았는데, 내가 가장 두려웠던 건 오히려 저녁이 오면 닥칠 사막의 추위였다. 텐트가 아닌 비박으로 별을 보며 사막의 밤을 보내리라 다짐하고 왔던 나는 여름에 태어나서 그런지 추위를 굉장히 많이 타는 편이다.


지난해 여름 산티아고 포르투갈길을 남편과 함께 걸었던 게 반년 전 일이었는데도, 이렇게 걷는 게 참 오랜만의 일만 같았다. 이제야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생텍쥐페리에게 비행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였고, 그랬기에 다시는 비행을 하지 않겠다는 아내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다시 비행을 하다 결국 영영 사라진 것처럼 어떤 행위는 결국 포기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 앞에서 걸어가는 유목민 가이드들 ⓒ 주형원


오후가 되자 우리를 안내하는 유목민 가이드들은 사구로 둘러 쌓인 평지에 멈추더니 여기서 오늘 저녁을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들은 낙타가 짊어지고 있던 카펫을 내려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 펼치더니 또 작은 매트리스들을 내려 카펫 주위로 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사막 한가운데 지붕과 벽이 없는 거실이 만들어졌다.

 

사막 한가운데 숙소와 부엌이 있을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정말 벽과 천장을 벗어난 대자연 안에서 생활하게 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면 사하라 사막은 내가 겪은 세 번째 사막이었다.

 

남편과 난 약 십 년 전에 호주에서 농장일을 한 돈으로 중고차를 사서 호주 사막을 여행했다. 여행하는 도중 돈이 떨어져서 호주 아웃백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호주의 가장 큰 유적지인 울루루에서 한 달가량 일을 했었다. 나는 그곳 리조트 청소를 남편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해서 남은 여행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청소는 늘 아침 일찍 시작했기에, 나는 사막의 일출을 보며 걸어서 출근하고 일몰을 보며 퇴근하였다. 그때 그 고요한 새벽의 사막을 매일 아침 두 발로 걸으며 일출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넘어서 신비함을 느꼈다.   


방송국에서 일했을 때는 첫 출장으로 나미비아 사막을 일주일 동안 떠났다. 하지만 중고차로 호주 사막을 여행했을 때는 호주 사막 중간중간 있는 취사 시설과 샤워시설이 갖춰진 캠핑장에서 밤을 보냈으며, 출장으로 나미비아 사막을 갔을 때는 사막 안의 숙소에서 묵었다. 자동차와 취사 혹은 샤워 시설이 아무것도 없는 사막 안에서 온전히 걷고 생활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텐트를 치고 있는 유목민 가이드들 ⓒ 주형원


우리와 함께하는 유목민 가이드들은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낙타 위의 짐을 내리더니 자신들의 주방이 될 작은 텐트를 순식간에 세웠고, 곧 마시라며 차를 내왔다. 처음에 사막에 트레킹을 하러 간다고 했을 때, 이미 사하라 사막 트레킹을 다녀온 사람이 말해주었다.

 

“저녁마다 지프차가 씻을 때 필요한 물이랑 요리할 때 필요한 가스 등을 가져다 줄 거야”

 

하지만 어제저녁 떠나기 전에 질문을 하자 여행사의 대표인 사이드는 말했다.

 

“백업 차량은 따로 없어”

“그럼 어떻게 요리를 해?”

“나무를 베어서 불을 만들 거야”

“사막에 나무가 있어?”

“그럼”

“사막에 식물이 자란다고?”


물론이지. 사막에서는 비가 몇 방울만 내려도 생명이 자라

 

비 몇 방울에 사막에서도 생명이 자란 다니. 그러고 보면 생명은 질김과 동시에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렇게 일주일 가까이 낙타가 싣고 가는 짐으로만 생활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낙타 네 마리가 우리의 짐과 공동 텐트, 일주일 동안 마실 물이며 식량을 지니고 이동할까 싶었는데, 정말 이렇게 떠나는 것을 보면 사막을 종횡하고 다니던 예전 대상 행렬의 일부가 된 느낌이었다.

 

사막에서의 첫 식사인 샐러드 ⓒ 주형원


점심은 샐러드가 나왔다. 사막에서 이렇게 신선한 샐러드를 먹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며칠 지나자 거의 모든 점심과 저녁을 포함한 식사들이 같은 재료로 다르게 요리된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리사는 베르베르 부족 출신 이브라임으로 유목민 가이드들 중에 제일 나이가 많았다.


그런 그의 손에 고기와 야채가 들어가면 점심에는 신선한 샐러드로 저녁에는 타진이라는 모로코 전통 요리로 변신되었다. 신기하게도 늘 같은 재료로 요리하는데도 단 한 번도 맛이 같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항상 맛있었다.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이브라임 ⓒ 주형원

그는 항상 걷다가 처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볼 수 있도록, 혹은 그 사람이 자신을 볼 수 있도록 모래 언덕에서 뒤처진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뒤쳐진 사람이 그가 있는 곳까지 당도하면 그는 늘 물었다.

 

“괜찮아?”


“네. 괜찮으세요?”


그는 항상 따뜻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가 괜찮으면 나도 괜찮아”

 

이브라임 ⓒ 주형원


그는 조각처럼 새겨진 잔주름과 깊은 눈빛을 지니고 있었는데, 나는 그가 사막을 걷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그가 사막을 걸을 때면 혹은 우리 중 뒤쳐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면, 그와 사막이 마치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막 이외의 그 어떤 배경도 그에게 이처럼 잘 어울릴까?

 

점심을 먹고 난 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모래 언덕을 넘었다. 사막에서 함께 온 그룹과 잠시 떨어져 있고 싶으면 간단했다. 사막 모래 언덕 위에 올라가면 사막 안에 홀로 놓여 있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마치 파도처럼 끊임없이 물결치며 이어지는 모래 언덕을 보고 있으면, 여기 오기 전에 지니고 있던 걱정들이 모래 파도 저 너머로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오후에는 사막 유목민의 부족장을 만나러 간다고 해서 사막 한가운데에 사는 나이 지긋한 현자를 상상했다. 가이드 하리파가 “매번 집에 계시는 게 아니라서, 혹시 계시면 만나실 수 있을 거야”라고 해서 그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었다. 우리의 야영지에서 약 한 시간 정도 넘게 걸으니 돌로 만든 작은 집이 나타났다.

 

ⓒ 주형원

 

하리파는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하면서 말했다.

 

“안에 계시는지 보고 올게”

 

하지만 정작 돌집에 들어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

 

“어디 계시는 거야?”

 

그는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이 아래에 계셔”

 

당황한 우리가 말했다.

 

“뭐예요? 지금까지 살아계신 부족장을 뵈러 오는 건지 알았잖아요”

 

그는 우리의 그런 반응이 재밌다는 듯 웃으면서 답했다.

 

“여기 계실 때도 있고, 안 계실 때도 있다고 했지.”


유목민 가이드 하리파 ⓒ 주형원

그는 돌집 주변 사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전에는 이곳에 유목민 마을이 있었고, 부족장이 살았지. 모래 위에 돌들이 올려져 있는 곳들 보이지? 그곳들이 이곳에 살던 유목민들의 무덤이야. 부족장만 특별히 돌집 형식의 무덤이 따로 있지. 지금도 유목민들은 종종 음식을 만들어서는 이 집에 와서 함께 나눠 먹고는 해. 그게 그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지”

 

그러고 보니 내가 오면서 모르고 무심코 밟았던 모래 아래 이들의 조상이 묻혀 있었던 것이다. 내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자, 오히려 하리파는 별일 아니라는 듯 “괜찮아”를 반복했다.


사막의 유목민은 죽어서도 사막에 묻혔고, 이들의 무덤인 모래 위에는 이름이 적힌 비석 대신 누구의 무덤인지 구별할 수 없는 돌들 만이 놓여 있었다.

 

사구에 앉아 일몰을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 ⓒ 주형원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사막의 언덕 위에 앉아 일몰을 기다렸다. 솔렌느 그리고 벨기에에서 온 클레르, 비슷한 나이 때의 삼십 대 여성인 우리들의 대화는 어느 순간 자연스레 ‘출산’과 ‘아이’ 로 흘러갔다.

 

클레르는 아직 미혼이었으며, 나는 결혼 한지 이제 일 년이 되었으며, 우리 중 가장 언니인 솔렌은 결혼도 했고 벌써 네 살짜리 아이도 있었다. 솔렌은 남다른 삶만큼이나 결혼과 출산의 과정도 달랐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나는 ‘이 사람이야’라는 확신이 있었지. 그리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거야”

 

“얼마 만에?”

 

“이주 만에”

 

“이주? 이 주면 서로에게 확신을 갖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잖아. 그런데도 애를 낮아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럼.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정말 행복했어. 그도 그건 마찬가지였고. 우리 샤샤를 나아서 키워야겠다는 데에는 단 한 치의 의심도 없었지”


솔렌은 자신의 출산 경험을 이야기하며 말했다.

 

“어느 순간에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정말 죽을 것 같은 거야. 하지만 그 순간에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이자 내 안에서 한 생명이 나왔어. 지금은 샤샤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둘째를 갖고 싶어.”

 

“그래서 함께 여기에 온 거야. 둘째를 갖기 전에 샤샤와 함께 꿈꿀 수 있는 그 무언가를 함께 만들고 싶어서” 


함께 꿈꿀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그것이 여행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그건 어쩌면 엄마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그리고 소중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멋진 선물이 아닐까?

 

어느새 사막은 끓는 해를 삼켰고, 푸르른 태기를 띈 사막 위로 빛나는 별 하나가 탄생했다. 생명이라고는 전혀 나지 않을 것 같은 사막에서도 단 몇 방울의 물로 싹이 트고 나무가 자랐으며, 그 사막을 종횡하던 유목민은 죽어서 모래로 돌아가고 있었고,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출산의 고통 후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였다.


삶과 죽음은 어쩌면 이 사막의 모래 언덕만큼이나 서로 이어져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내가 알던 나 또한 이 사막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고, 새로운 내가 서서히 태어나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서서히 죽어가는 걸지도 그리고 동시에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천천히 태어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노을 후 찾아오는 사하라의 저녁 ⓒ 주형원

 

나는 조금씩 태양과 멀어진다.
고장이 나면 나를 맞아 줄 저 커다란 황금빛 표면과도 멀어진다…
내가 가는 길을 안내해 줄 표지들과도 멀어진다.
암초를 피하게 해 주었을, 하늘위로 솟은 산의 옆모습들과도 멀어진다.
나는 어두운 밤 속으로 들어간다. 비행을 계속한다.
나에게 남은 것은 별들뿐이다.
세상의 이와 같은 죽음은 더디게 진행된다.
나는 빛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생텍쥐페리<인간의 대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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