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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Aug 30. 2018

아름다운 별, 사막에서의 첫날밤

잠에서 깨었을 때 밤하늘의 웅덩이 밖에 볼 수 없었다.

나는 팔을 좌우로 벌린 채 저 별들의 웅덩이를 향해 언덕 위에 누워 있었다.

그 깊이를 미처 가늠하기도 전에 나는 현기증에 사로잡혔다.

그 깊이와 나 사이에는 붙잡을 만한 뿌리 하나 없고,

지붕이나 나뭇가지도 없어 다이버처럼 나는 기댈 곳을 잃은 채 추락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중 


불어로는 벽이나 텐트도 없이 완벽한 야외에서 하늘을 보며 잠자는 것을 ‘dormir à la belle étoile’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아름다운 별에서 잔다’라는 뜻인데, 나는 사하라 사막에 와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텐트도 없이 완전한 대자연 속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지난해에 사하라 사막에 왔을 때도 정착된 텐트에서 밤을 보냈기에 이번에는 오기 전부터 꼭 ‘아름다운 별’에서 밤을 보내리라 결심했었다.


오늘 밤을 보낼 야영지에 도착하자마자 유목민 가이드들은 우리가 단체로 함께 저녁을 보낼 단체 텐트를 설치했지만, 난 이 드넓은 사막을 놔두고 단체 텐트 안에서 끼어 자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텐트는 우리 열명이 들어가서 자기에는 비좁았다.  

 

“오늘 저녁에 밖에서 잘 사람?”


“글쎄, 춥지 않을까?”

 

첫날밤이라 어느 정도 추울지 다들 알지 못하였기에 밖에서 자기를 지원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으며, 결국에는 솔렌과 그녀의 아들 샤샤 그리고 나 이렇게 세명만 온전히 별 아래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추위를 대비해 따뜻한 슬리핑 백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부랴부랴 사서 오기는 했지만, 나 역시 장벽 없는 사막의 밤의 추위가 얼마나 매서울지는 예측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나는 추위에 워낙 약해서 일상 속에서는 조그마한 추위도 참지 못한다.


나머지 일행들은 텐트로 들어가며 말했다.

 

“용감하네. 저녁에 얼마나 추웠는지 내일 아침에 말해줘”

 

“알았어. 잘 자”


사막 모닥불 옆에서 자려고 준비 중인 이들 ⓒ 주형원


나는 아직 꺼지지 않고 활활 타고 있는 모닥불 옆으로 자리를 잡고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침낭은 생각보다 아늑하고 따뜻했으며 심지어는 조금 덥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신고 있던 수면 양말까지 벗고, ‘이 정도면 잘만 한 데’라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누웠는데 집 천장에 듬성듬성 붙어있는 이제는 빛도 희미해진 야광 별이 아닌 셀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광경은 가히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겁부터 덜컥 났다.


내가 제일 걱정했던 건 추위였지만, 이 아름다운 별 아래 나를 덮친 건 추위가 아닌 갑작스러운 공포였다.

 

매일 저녁 좁은 방에서 천장과 벽을 사이에 두고 잠을 자다 벽 대신 이 광활한 사막에서 하늘과 별 아래 온전히 홀로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이 경관에 감탄하기도 채 전에 두려움이 먼저 몰려온 것이다. 이 두려움에는 이름이 없었다. 아무런 위험도 존재하지 않은 고요한 대자연속에서 더없이 움츠려 드는 나 자신을 보며 깨달았다.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은 벽도 천장도 아닌 나 자신이 만들어 내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사실을. 그러기에 나를 보호함과 동시에 나를 옥죄이고 있는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순간 해방감이 아닌 공포가 먼저 나를 덮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건 내가 아직까지 내면적으로 충분히 단단하거나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 주형원


그렇다고 나 혼자 인건 아니었다. 나머지 일행들은 잠을 자기 위해 텐트에 들어갔지만, 사막 모닥불 주위로는 솔렌과 그녀의 아들 샤샤 그리고 가이드 하리파가 있었다. 네 살짜리 샤샤는 아무런 두려움과 근심 없이 이미 모닥불 옆에서 깊은 잠에 든 지 오래였고, 솔렌과 하리파는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모닥불 옆에서 한참 동안 속삭이며 대화를 나눴다.


얼마 후 솔렌도 내 옆에 누웠고 조금 있다가 가이드 하리파도 담요 하나만 덥고는 마치 푹신한 매트리스에 눕는 사람처럼 모래 위로 누웠다. 그가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불에 넣은 장작 덕분에 모닥불은 꺼지기 직전 다시 생명을 되찾았고, 우리 넷은 그렇게 모닥불 주위로 옹기종기 누워있었다. 나는 잠에 들려 다가도 아주 조금 만한 인기척이나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서 일어나곤 했다.


자기 전에 모닥불을 다시 지피는 하리파 ⓒ 주형원


그렇게 몇 번을 잠에서 깨다가 이젠 좀 잠에 드나 싶더니 새벽에 급격히 떨어진 온도에 저절로 눈을 떠졌다. 사하라 사막에서 밤을 보내며 알았다. 하루 중 가장 추워질 때는 별이 뜰 때가 아니라 별이 해에게 다시 하늘을 내줄 때며, 밤이 새벽에게 그리고 빛이 어둠에게 자리를 내줄 때라는 것을.

 

모닥불이 여전히 켜져 있을 때만 해도 별로 춥지 않다고 생각하고는 수면 양말을 벗고 모자를 쓰지 않은 게 큰 실수였다. 어젯밤 잠에 들 때는 상상하지도 못 한 추위였다. 오들오들 떨다 결국 잠을 포기하고 눈을 여니 마침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모두 여전히 자고 있는 고요한 새벽이었고, 어젯밤의 모닥불은 재가 된 지 오래였다.

 

어젯밤 나를 오랫동안 잠 못 이루게 한 두려움과 갑작스레 찾아온 추위에도 불구하고 아침을 위해 물러나 주는 사막의 밤, 해와 별, 석양과 일몰이 각각의 층을 이루며 마치 삼색 칵테일을 연상시키는 하늘을 보고 있으니 지금 이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졌다. 빛이 어둠 뒤에 찾아오듯, 마음 또한 두려움 후의 고요함으로 찾다.


사하라 사막의 칵테일 일출 ⓒ 주형원


오전 7시. 회사를 가기 위해 그 전날 잠자리에 들기 전 착실히 오분 간격으로 맞춰놓은 알람이 나의 기분이나 컨디션과는 무관하게 사정없이 울리며 일어나라고 나를 독촉하고 있을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마지 노선까지 눈을 뜨기를 거부하며 침대 속에서 버티고 있을 시간.

 

바로 그 시간에 지금 나는 사하라 사막 깊은 곳에서 알람 없이도 자동적으로 해가 뜨는 시간에 일어나, 휴대폰 화면의 알람 정지하기를 복수하듯 신경질적으로 눌러대고 있는 대신에 세상의 경이를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지켜보고 있었다. 일출이 끝날 때쯤에 옆에서 자던 네 살짜리 샤샤도 잠에서 깼는지 일어나고 있었다.

 

“잘 잤어? 안 추웠어?”


“아니요. 전혀 안 추웠어요”


나의 대단하다는 표정에 자랑스러워하며 환하게 웃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네 살짜리 샤샤가 나보다 더 내면적으로 강인하고 자유로울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희망했다. 나 또한 이번 사막 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사랑처럼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중력을 느끼며 빛나는 수많은 별들 아래에서 달콤한 꿈을 꿀 수 있기를.


지구별에 꼭 달라붙어 있음을 감사해하며.     


사막에서 자고 일어나 환하게 웃고 있는 샤샤 ⓒ 주형원


그러나 나는 조금도 추락하지 않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 자신이 대지에 얽매여 있음을 알았다.

나는 나의 무게를 땅에 내맡기고 있는 데에서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

중력이 마치 사랑처럼 절대적인 힘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중력에 의해 나 자신이 지구별에 달라붙어 있음을 알았다.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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