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형원 Aug 16. 2018

사막에서 만난 행복한 광대, 솔렌

산다는 것은 서서히 태어나는 것이다. 

이미 다 완성된 영혼을 빌리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일 것이다. 


<생텍쥐페리>


여기에 와서 너무 행복해. 지구 상에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번 사막 여행에서 광대를 만나리라는 것을. 그 광대는 나와 거의 비슷한 나이의 삼십 대 여성이며, 일주일 가까이 아무것도 없는 사막 여행에 네 살짜리 아들을 데려올 정도로 용감한 엄마임과 동시에 아이의 선크림과 침낭은 챙길 생각도 하지 않고 온 무모한 엄마일 거라는 것을.


어쩌면 용감함과 무모함은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위해 늘 철저히 모든 것을 준비하려는 부모는 아이와 이런 여행을 떠날 생각조차 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깐.   


우리의 사막 여행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작되었다. 어제 장작 11시간 동안 차를 타고 사막 초입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해서 머리 위로 수많은 별들을 보며 나는 다시 사막에 돌아온 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어둠에 가린 모래는 아직 보지 못했었다. 오늘 아침 숙소에서 나와서 황금빛을 입은 사막을 보자 그제야 나는 내가 사막에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으러 가자, 단지 몇 시간 전 새벽에 도착한 카사블랑카 프랑스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중년의 프랑스 선생님과 그녀를 보러 모로코에 놀러 온 그녀의 조카와 조카의 단짝 친구가 와있었다. 카사블랑카에서 기차를 타고 마라케시에 가서 마라케시에서 저녁에 차를 타고 새벽 내내 달려서 이제 도착한 것이다. 


“피곤하지 않아?”


내가 물으니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클라리스와 가이아르는 괜찮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로서 우리 그룹은 총 열 명으로 네 살 꼬맹이부터 십 대 고등학생에 육십 세가 넘는 퇴직자까지 다양한 연령 및 직업을 아우르게 되었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우리와 함께 사막에서 일주일 조금 안 되는 시간을 함께 할 유목민 가이드들을 만났다. 이들은 가이드인 할리파와, 베르베르 출신의 요리사 이브라임, 낙타를 지키는 목타르 그리고 이런저런 일을 모두 돕는 할리파의 가까운 친구 모하메드, 이렇게 네 명이 있었다. 이렇게 약 일주일 동안 사하라 사막을 걸어서 횡단할 대상이 구성되었다. 


본격적으로 떠나기 전 준비 ⓒ 주형원


이들은 낙타를 끌고 와서는 우리가 사막 여행 동안 필요한 짐을 낙타에 실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든 일정을 걸어서 이동하기로 되어 있었고, 유일하게 낙타에 타서 이동하는 것은 네 살짜리 샤샤만 있었다. 네 살짜리 어린아이에게는 아직 뜨거운 사막에서 하루에 적어도 네다섯 시간씩 걷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본격적으로 떠나기 시작한 사막의 대상행렬 ⓒ 주형원


그녀는 낙타에 탄 샤샤와 함께 걸음을 맞추려 하고, 나는 일행의 맨 뒤에 천천히 걸어가며 내 리듬대로 경치를 즐기다 보니 우리는 어제저녁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리 중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고 계속 싱글벙글 웃으며 “여기에 와서 너무 행복해”를 반복했다. 그녀를 보며 나는 아이가 생기면 더 이상 진짜(?) 여행을 할 수 없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샤샤는 이미 방글라데시며, 세네갈 등 어른도 쉽게 가지 못 하는 곳들에 가서 단순 관광이 아닌 시골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몇 주를 보낸 꼬마 여행자였다. 나는 솔렌에게 말했다.


“나는 아이를 갖는 순간 더 이상 이런 여행은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


“아니야. 아이랑 함께 어디든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어. 이렇게 함께 여행을 하면서 나도 엄마가 되는 법을 배워. 여행은 아이를 이해하게 해주거든” 


“하지만 세 살이 넘으면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게 조금 어려워져. 그때부터는 아이가 이미 문화에 어느 정도 정착을 했기 때문에, 전혀 다른 곳에 가면 문화 충격을 겪거든. 세네갈에서 나는 부끄러웠어.”


나는 부끄러웠다는 그녀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순간 고민했다.


“왜? 어린 데도 이렇게 당당히 함께 여행하는 게 자랑스럽지 않고?” 


“물론 우리 샤샤가 자랑스러울 때도 있었지. 하지만 세네갈 애들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 샤샤가 그런 곳에서 밥을 안 먹는다고 투정 부릴 때 나는 부끄럽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런 여행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꼬마 여행자 샤샤 ⓒ 주형원

어느 순간 맨발로 걷는 그녀를 보며 나는 조심하라고 했다.


“양말이라도 좀 신어”


그녀는 괜찮다고 미소를 보이고는 얼마 후 햇살에 잔뜩 달궈진 모래에서 계속 걷는 게 힘이 들었는지 결국 양말을 신었다. 내 앞에 짝짝이 양말을 신고 마치 줄 타는 광대처럼 걸어가는 그녀를 보며 나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인생 처음으로, 아이가 있어서 저렇게 함께 여행을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참 이야기하며 웃으며 가다가 그녀는 갑자기 멈추어 서서는 입에 손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 샤샤에게 말했다. 


“샤샤, 저 바람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아? 사막의 나무에서 나는 바람의 노래는 숲에서 나무가 내는 바람 소리와는 또 다른 거 같아”


낙타 등에 타고가는 샤샤 ⓒ 주형원


그녀는 어느새 휴대폰을 꺼내서는 녹음하기 시작했다. 그녀 말을 듣고 나 역시 귀를 기울이니 도시에서 듣던 것과는 다른 바람 소리가 귀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 같은 사람이 좋다. 세상의 경이 앞에서 언제고 무한으로 감탄할 수 있는 사람. 


안타깝게도 현실 속의 우리는 아니 나는, 감탄하기보다는 불평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 귀 기울이기보다는 들어도 듣지 못하고, 봐도 보지 못하는 것 투성이다. 그래서 였을까? 난 직업을 묻는 나의 질문에 그녀가 광대라고 대답하는 게 전혀 놀랍지 않았다. 출산 후 지금은 잠시 중단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광대로서 어느 정도 성공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임신을 했어. 샤샤가 생겼고, 나는 예전과 같은 묘기를 하기는 힘들어졌지. 그래서 일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부르고뉴 근처 숲 속의 한 캠핑장 카라반에 살면서 장작 베는 일을 하고 있어.


“장작 베는 일을 한다고?”


“어. 캠핑장에 고용되어서 그때그때 시키는 일을 해. 주로 남편이 나무를 잘라 오면 그 나무로 장작을 베지. 나는 이렇게 숲 한가운데 캠핑에서 사는 삶이 좋아. 하지만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일은 광대 일이고 언젠가 다시 돌아갈 거야.”


“주로 어디서 공연했어?”


“여러 군데서 했는데, 주로 남편과 함께 거리에서 했어” 


“남편도 같은 일을 했던 거야?”


“응. 정확히 말하면 남편은 광대가 아니라 곡예사야. 그는 정식 서커스에서 일을 했었어” 


“그게 달라?”


“그럼. 광대는 원래 곡예사들의 묘기 중간중간 관객들이 기다리는 동안 흥미를 잃지 말라고 흥을 돋워 주는 존재였어. 결코 공연의 메인이 아니었지. 하지만 광대가 어느새 곡예사보다 인기를 더 끌게 되고, 지금은 광대의 시대야”


“둘이 거리에서 공연하면 어떤 내용으로 하는데”


“항상 나쁜 사람이 있어야 돼. 주로 지위가 높거나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지.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거야. 잔인하지? 하지만 세상은 잔인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렇게 공연으로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해소할 수 있어.”


"어떻게?"


이번 여행을 함께 하게 된 프랑스 광대 솔렌 ⓒ 주형원


왜냐면 고통받는 사람을 보고 웃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보며 웃는 거거든. 나 자신에 대해 웃으며 고통을 마주하고 그렇게 아주 조금이나마 치유가 되는 거지. 일종의 내면 치료라고 보면 돼. 나 또한 공연을 준비하고 직접 하면서 많은 치유를 받아.


“그래서 우리의 약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연도 많이 해. 사람들은 평소에 감추고 싶어 했던 자신들의 약점을 보고 웃으면서 그것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거든” 


찰리 채플린이 말했던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광대를 통해 자신의 삶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마치 희극처럼 바라보게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느낄 수 있었던 독특하고 자유로운 느낌이 그녀의 남다른 삶에서 오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침에 출발했을 때는 사륜차의 바퀴 흔적과 사람의 발자국들이 여기저기 나 있었지만, 걸은 지 세 시간이 넘어가자 더 이상 발자국도 바퀴 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현지 여행사가 약속한 데로 우리는 사람의 발자취와 바퀴 자국이 없는 진짜 사막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막의 전경 또한 달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야자수가 있었는데, 갈수록 야자수는 사라지고 등성듬성 솟아난 수목들이 보였다. 거대한 광야가 눈앞에 펼쳐지더니 점차 모래 언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요한 사막 ⓒ 주형원


사막은 고요했고 이 고요는 조용한 방에 혼자 있을 때의 고요와는 또 달랐다. 사막에서 맞는 고요는 광활한 자연 안의 고요였으며, 늘 전쟁 중인 마음에 평화를 들어서게 하는 고요였다. 나 역시 내면의 치유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전 05화 마라케시에서 사하라 가는 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