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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Aug 09. 2018

마라케시에서 사하라 가는 길

그들도 우리와 닮은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들은 스스로 굶주려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뿐.


그렇게 자기 인생을 잠들게 내버려두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중



모로코에서 눈뜨는 첫 번째 아침이다.  

  

어제 카사블랑카 맥주를 마신 후 깊은 잠에 빠졌다가 한 밤중에 온 세상을 울리는 기도 소리에 잠을 깼다. 
 
각 모스크마다 확성기가 있고 기도가 세 시간이나 네 시간마다 곳곳에서 울린다고 했는데 모두가 잠들어 있는 깊은 밤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치 내 바로 옆에서 귀에다 대고 소리치는 거 같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기도가 끝나서야 잠에 다시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무용지물이었던 게, 기도는 얼마 있다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렇게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시계를 보니 이제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다. 침대에서 더 누워 있고 싶었지만, 아침 여덟 시 반 약속 장소에서 만나야 사막으로 떠날 수 있기에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열 시간 넘게 차를 타고 사막 초입부에 위치한 마미드에 가는 일정이기에, 아침을 많이 먹으면 차멀미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간단히 오렌지 주스만 마시고 나왔다. 
 
어제는 동네 꼬마의 안내를 받아 무사히 숙소까지 돌아왔지만, 오늘 아침에는 혼자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호스텔 문을 나서는 순간 어제 어느 길로 마지막에 돌아왔는지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차피 앞에 보이는 두 갈래의 길 중 하나라 왠지 더 낮이 있어 보이는 곳을 택해서 가려다 혹시 몰라 지나가는 모로코 아주머니에게 확인 삼아 물어보았다. 
 
 “여기로 가면 제마 엘프나 광장이죠?”
 
아니나 다를까 아주머니는 내가 가려고 했던 길의 반대 방향을 가리키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치명적인 길치인 나는 아무리 여행을 해도 나아지지 않지만, 이제 적어도 한 가지 확신은 있다. 어디가 되었든 어느 방향이든 내가 저기일 거 같다고 장담하는 정확히 반대쪽이 맞는 길이라는 것이다.  

  

모로코 아주머니를 따라 이 골목 저 골목으로 걸어서 한 십오 분이 지나자 어제 미리 탐사를 왔던 제마 엘프나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제저녁에는 야시장으로 그토록 붐비던 광장이 오늘 아침에는 어제의 그 어떤 흔적도 없이 고요했다. 그토록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며 곳곳에서 돼지 머리며 달팽이 등을 즉석으로 요리하고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잡기 위해 혈안이었던 상인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 
 
시간을 보니 약속 시간은 아직 십오 분이나 남았다. 혼자서 찾아오려고 했다면 아직도 헤매고 있었을지 모른다. 약속 장소에 서서 기다리는데 여덟 시 반이 되어도 가이드는커녕 같이 가는 그룹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무도 오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도 안 오는 거 아니야?”


직감만 믿고 휴가를 내서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아침 일찍 일어나 나왔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그때야 아차 싶어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던 여행사 관계자에게 전화를 하자 다행히 곧 도착할 예정이라 했다. 얼마 후 우리를 마미드까지 데려다 줄 운전기사가 왔고, 사막에서 일주일을 보낼 동행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중년으로 보이는 프랑스 자매 엠마와 로르, 현재는 은퇴하여 모로코에 살고 있는 피레네 지역 출신의 프랑스 수학 선생님 레지스, 그리고 내 나이 또래의 여성으로 벨기에에서 온 끌레르가 있었다. 나머지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해서 만난다고 했다. 차는 그리 크지 않았고, 우리는 짐을 먼저 넣은 후 간신히 끼어서 다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사이라 아무래도 초반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차가 출발하고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이미 서로 안지 어느 정도 된 사이처럼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마라케시를 빠져나가자 아직 꼭대기에 눈이 채 다 녹지 않은 거대한 산과 그 아래로는 넓은 골짜기와 올리브 나무가 펼쳐졌다. 아직 사막에 도착하지 않아도 절경이었다.

                                                     

마라케시에서 사막으로 가는 길 전경 ⓒ주형원


나는 잔뜩 낀 차의 중앙에서 안전벨트도 매지 못하고 걸터앉아 굽이굽이 산등성을 타며 내려오는 차에 맞춰 몸이 오른쪽 왼쪽으로 계속해서 기울였다. 우리는 처음 만날 때 어색함도 잊고 어는 순간 차에서 나오는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고 있었다. 모두 사는 곳도 다르고 배경도 달랐지만 자연과 여행을 사랑하며, 평소에도 걷는 것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공통점은 다르게 말하면 타인에 대한 열린 자세였고, 불편해도 기꺼이 감수할 뿐만 아니라 사서 하는 고생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것도 의미했다. 그래서 그런지 서로 끼어가면서도 우리는 계속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는지를 확인했다.


처음 출발할 때는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이 천 미터 고도가 넘는 산을 넘고 중간에는 유명 영화 촬영지들의 야외 스튜디오가 있는 사막을 관통했다. 마라케시에서 사막까지 가는 그 길 자체가 이미 그 자체로 멋진 여행이었다. 

  

마라케시에서 사막으로 가는 길 전경 ⓒ주형원

  

중간에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고 모로코 경찰에게 벌금을 물었고, 운전 도중 스페어타이어가 도로로 굴러 떨어가는 등 벌써 여러 사건들이 일어났지만 우리의 감탄과 기대는 전혀 사그라들지 않고 본격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가다가 은퇴한 프랑스 선생님인 헤지스가 물었다.

 
 “한국은 설날 아니야?”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아?”
   

“평창 관련해서 라디오에서 방송하는데 설날이라고 하더라고”

  

그러자 함께 온 프랑스 자매의 동생인 엠마가 웃으면서 물었다.

  

“너도 여기가 아니라 평창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모로코의 외지에서 평창 올림픽 덕분에 프랑스 사람들과 설날을 말하고 있으니, 올림픽이 전 세계인의 축제하는 게 새삼 실감이 되었다.
 

마라케시에서 사막으로 가는 길 전경 ⓒ주형원


하지만 아름다운 절경에 대한 감탄과는 별개로 여정은 가면서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모로코 가이드들처럼 그는 커미션을 받을 수 있는 카페나 식당, 기프트 샵 등으로 우리를 중간중간 안내했다. 신기한 게 이전 같았으면 이런 가이드의 행각에 분노했겠지만, 오늘은 분노는커녕 오히려 이상하게 이해가 되었다. 
 

 ‘저 사람도 저렇게 힘들게 운전하는데 뭐라도 더 벌어야지’


가이드가 데려간 아르간 오일 가게에게 아르간 열매를 손질하는 할머니 ⓒ주형원

 

하지만 얼마 있다가 가이드는 갑자기 길 한가운데 차를 세우더니, 트렁크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와인병들을 꺼내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누군가 오더니 어둠 속에서 그것들을 가져갔다. 모로코에서는 현지인들의 알코올 소비 자체가 불법이라 팔지 않기에,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마라케시에서 사서 여기서 몰래 파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친구 생일이어서 하나 사다 주는 거야”라고 하더니 그는 마지막에는 “사장한테는 비밀이야” 라며 눈을 찡긋했다. 그렇게 알지도 못한 사이 와인 밀거래에 가담된 우리는 아침 여덟 시 반에 만나서 출발했지만 저녁 일곱 시 반이 되어도 여전히 도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로라가 말했다.


가도 가도 결코 도착하지 못할 것만 같아. 마치 끝나지 않을 여행 같아. 
 
사막의 짙은 황혼 ⓒ주형원

나는 그런 그녀의 말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삶처럼 말이지' 


사막에는 짙은 황혼이 지기 시작했고, 어느새 달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차는 사막 마을을 지나 길이 없는 진짜 사막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지프차의 위력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우리는 마침내 사막 안에 있는 정착된 텐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녁 사막을 달리는 지프차 안에서 ⓒ주형원


본격적으로 사막을 걷기 시작하기 전날인 오늘 밤만 숙소의 정착된 텐트에서 밤을 보내게 된다. 내일부터는 그날 그날 걸어서 도착하는 사막의 지점에 공동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자거나 혹은 별을 보며 자고 싶다면 텐트 밖 모래 위에서 침낭만 가지고 그냥 자게 된다. 샤워는 물론 불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오늘 밤은 문명과 헤어지고 본격적으로 사막 유목민의 삶으로 들어가기 전의 준비 단계인 셈이다.

 

텐트 위로는 수많은 별들이 은하수를 이루며 반짝거리고 있었고, 우리는 각각의 텐트를 배정받고 짐을 놔두고는 공동 텐트 역할을 하는 메인 텐트로 갔다. 나는 프랑스 자매와 한 텐트를 쓰기로 했다. 도착한 기쁨과 함께 나는 드디어 하루 만에 제대로 먹는 식사인 모로코 전통 음식인 꾸스꾸스를 먹을 수 있었다. 


어제저녁부터 오늘 여정을 위해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가 사막 한가운데서 우리를 위해 정성스럽게 요리된 꾸스꾸스를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이미 이틀 전에 이 곳에 도착해서 우리 그룹에 합류할 예정인 프랑스 엄마  솔렌과 그녀의 네 살짜리 아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길고 길었던 하루는 내일부터 걷기 시작할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정착 텐트에서 보내는 밤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아직도 사하라 사막으로 다시 돌아온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밤을 지낼 준비를 했다. 

화물칸에서 짐짝을 대여섯 개 꺼내어 거기에 있는 물건들을 몽땅 꺼낸 다음 둥글게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마치 그것이 초소인 양 짐짝 밑바닥 하나하나에 바람에 흔들리는 초라한 양초를 하나씩 켜 놓았다. 

사막 한복판에다, 지구의 헐벗은 껍데기 위에다 

마치 세상이 갓 생겨났을 때와 같은 외로움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마을을 하나 세웠다. 


-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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