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형원 Jul 26. 2018

별똥별 두 개와 진정한 사랑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은 사랑 일지도


나는 사랑이 없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다


-생텍쥐페리의 <전쟁터에서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드디어 떠나는 날 아침이다. 비행기 시간이 오후라 조금 여유가 있어 아침에 푹 자고 일어나려 했지만, 어떻게 된 게 출근할 때보다 더 일찍 눈이 떠졌다. 역시 좋아서 하는 일은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하게 되는 것처럼, 좋아서 시작하는 아침은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저절로 눈이 떠지기 마련이다.

 
한국은 설 당일이라 아침부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카톡이 와 있었다. 외국에 살면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은 실감이 잘 안나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새해를 두 번 맞이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음력 달력을 쓰며 고유의 설날을 지니고 있는 민족의 큰 행운인 거 같다.
 
새해를 두 번 맞이할 수 있다는 건 결국 새롭게 한 해를 두 번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고, 그 말은 아직 늦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한 해의 한 달 그리고 절반이 이미 내가 생각했던 대로 원했던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더라도. 결국은 ‘또 똑같구나’라고 생각하며 포기하고 싶어 져도. 아직은 또 한 번의 시작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니까.
 
게다가 일정을 잡을 때는 몰랐는데, 잡고 보니 이제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작년에는 1월 1일에 사하라로 떠났었는데, 올해는 설날을 맞이해서 사하라로 떠난다는 것이었다. 계획한 건 결코 아니지만, 두 번의 다른 새해를 사하라 사막에서 보내게 된 셈이었다.
 
어쩌면 두 번 맞는 새해처럼 나에게도 이번 여행은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 게 아닐까? 작년에는 겉핥기에 그쳤던 사하라 사막을 이번에는 속살까지 발견할 수 있는 기회,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빌었던 소원을 올해는 이룰 수 있는 기회.

 

아침에 일어나서 남편 출근 전에 집 앞 카페에 가서 크루아상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 일주일 동안 보지 못 할 남편을 지하철 역까지 데려다준 후 다시 짐을 챙겨 나가기 위해 집에 돌아오자 그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사막을 즐기고, 눈에 잔뜩 담아서 와. 사진도 많이 찍고. 꼭 연락하고' 


사랑해


남편은 사랑한다는 말을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아끼지 않는 사람이고, 동시에 그 사랑한다는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닳게 하지 않는 사람이다. 예전에 다른 남자 친구가 있었을 때 물었다.
 
 “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안 해?”
 
 “그런 말은 아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 말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우리는 결국 헤어졌다. 그리고 난 믿는다. 사랑을 하면 상대에게 아끼지 않는 것처럼 사랑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라고. 아침에 집을 떠날 때도, 하루의 중간에 연락해서 나의 안부를 물을 때도, 그가 하는 사랑한다는 말은 나의 하루를 관통한다. 물론 사막 같은 나는 제대로 대답도 하지도 않고 ‘바쁘니 끊어’라며 통화 정지 버튼을 누를 때가 더 많지만 말이다.

이제는 사라진 파리 퐁데자르 (Pont des Arts) 예술의 다리의 사랑의 자물쇠 ⓒ 주형원


하지만, 이번에는 문자를 보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했다. 늘 그렇듯 무심한 나는 충동에 이끌려 아무 생각 없이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일정을 잡았는데, 나중에 보니 여행 일정 안에 결혼 일주년이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그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결혼식 일주년을 나 혼자 보내겠네”라고 조금은 서운하다는 표시를 했지만, 곧 “너 돌아오면 어떻게 결혼 일주년을 기념할까” 라며 열심히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침에 그를 지하철 역까지 바래다 줄 때도, 그는 잘 다녀오라고 하며 내가 사막에서 돌아온 그 주에 우리 둘이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어 했던 레스토랑을 예약했다고 했다. 그런 그를 보며 지난해 사하라에서 새해를 보낼 때 베르베르 유목민 가이드 아저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막에서 별똥별 두 개를 보면 그건 진정한 사랑이야"


그는 연인에게는 별똥별 두 개가 진정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했고, 다른 이들에게는 ‘행운’을 뜻한다고 했다.

 

베르베르족 가이드 아저씨ⓒ주형원

 

"별똥별 두 개를 보면 소원이 이뤄질 거야"


"왜 별똥별 두 개에요?"


"아빠와 엄마니까. 너희도 엄마와 아빠가 계시지 않아?"


"네"


"그러면 너희는 아주 행운아들인 거야. 만약, 둘 중 한 분만 계시다고 상상해봐. 끔찍하지 않겠어?"


우리는 그날 밤 별똥별 두 개를 봐야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말에 수많은 별들로 넘실거리는 사하라 사막의 밤하늘을 보고 또 보았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고, 이렇게 평생 볼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늘 자연의 경이 앞에 그렇듯, 수많은 별을 보고 있으니 지금까지의 걱정과 근심이 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사는 세상에 정말 이토록 많은 별이 있었을까? 왜 난 여태까지 알지 못했을까?



아르헨티나로 최초의 야간비행을 하던

날 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들판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불빛들만이 별처럼 반짝이던 캄캄한 밤이었다.

어둠의 바다 속 그 불빛 하나하나는 의식이라는 기적의 표지였다.

이 살아있는 별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창문이 닫혀 있으며,
얼마나 많은 별이 꺼져 있으며, 얼마나 많은 인간이 잠들어 있을까.
서로 만나기 위해 애써야 한다.
들판에서 드문드문 타오르는 이 불빛 가운데 몇몇과 마음이 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중


진정한 사랑이라는 말에 우리와 함께 사막에서 밤을 보내게 된 젊은 커플은 별똥별을 찾으러 떠난 지 오래였고, 우리는 베르베르족 유목민 가이드 아저씨와 광활한 사하라 사막 한복판 모닥불 주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별똥별을 찾았다.


내 눈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동생은 '어 저기' 하며 벌써 몇 개를 찾았고, 그럴 때마다 난 동생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별똥별은 꼬리도 볼 수 없았다. 이러다간 도저희 오늘 밤 안에 찾기는 틀렸다 싶어서 동생에게 제안을 했다.


"너는 지금까지 여러 개 봤으니까, 지금부터 보는 별똥별은 나를 주면 어때?"


동생은 그러겠다고 했고, 나는 가이드 아저씨에게 우리의 별똥별 딜(?)을 말해줬다. 하지만 유목민 가이드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며 말했다.


"이건 나의 행운을 저축해서 너에게 주는 은행이 아니야. 우리는 각자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행운이 있는 거야."


"너는 프랑스에서, 동생은 독일에서, 나는 모로코에서.. 그렇게 각자의 행운이 있는 거야. "


"매일 밤, 나도 내일의 행운을 위해 별똥별 두 개를 본 후에야 잠을 자러 가"


베르베르족 유목민 가이드와 동생 ⓒ주형원

평생을 사막에서 살았고, 매일 저녁 별똥별을 볼 텐데 아직도 매일 밤 별똥별 두 개를 본 후에야 잠을 자러 간다는 아저씨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어린 왕자가 떠올랐다. 쓸쓸하고 외롭지만 너무도 순수한 영혼을 지닌.


"어느 날은 일몰을 마흔네 번이나 봤어!"

그리고 조금 후에 너는 덧붙였다.

"당신도 알 거야… 누구나 너무 슬퍼지면, 지는 해를 사랑한다는 걸……."

"마흔네 번 일몰을 보던 그날은 그렇게 슬펐던 거니?"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중


얼마 지나 나 역시 결국 별똥별을 두 개 보는 데 성공했다. '왜 이렇게 못 봐'라는 동생에게 '시력이 안 좋아서 그래'라고 둘러댔지만, 한 번 보기 시작한 별똥별은 그제야 계속 보이기 시작해서 결국 두 개를 넘어 여러 개의 별똥별을 그 밤에 볼 수 있었다.

 

결국은 시력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별똥별을 볼지 몰랐던 것이었다.



비밀을 말해줄게. 아주 간단한 건데. 그건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중



마치 진정한 사랑이 아닌 행운을 잡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별똥별을 찾았던 그때의 나처럼 말이다. 나는 별똥별을 보며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었다. 그 후로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빌었던 소원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저 사막에서 돌아와서 한 달 반 만에 예정에 없었던 행복한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굴곡 많았던 우리의 관계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다. 나는 그 이후 별똥별 행운은 일종의 사기(?)라고 생각했다. 그때 빌었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고, 특별한 행운도 여전히 나에게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이제는 남편이 된 장뤽의 문자에서 나는 일 년 전에 사하라에서 본 별똥별 두 개가 보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별똥별 두 개를 보면 진정한 사랑이라는 말도, 행운이 있을 거라는 말도, 어쩌면 다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어쩌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은 사랑 일지도 모르겠다고


이전 02화 사랑은 같은 방향을 보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