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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ul 19. 2018

사랑은 같은 방향을 보는 것

우리라는 은하수 안에서 서로가 별로 빛나기 위해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 나희덕 <푸른 밤> 중 


남편과 함께 산티아고 길을 끝내고 세상의 끝 피니스테라 석양 앞에서 ⓒ주형원


"어디로 가는데?"


"사하라 사막"


"남편이랑?"


"아니"


"그럼 누구랑?"


"혼자"



 

사막에 너 혼자 간다고?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눈길로 재차 묻는 그녀를 보며, 나는 역으로 그녀가 혼자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혼자 떠나는 즐거움을 모르는 그녀는, 아마 삶에서 혼자만 열 수 있는 비밀 서랍을 지니는 그 두근거림과 설렘도 모를 것이다.  

  

늘 함께 있고 모든 것을 함께 한다고 해서 반드시 많은 것을 함께 느끼고 나누며 성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결코 아님을 나는 이제는 알고 있다. 고미숙 선생님의 말처럼 사랑은 '삶의 서사'를 필요로 하니까.


서사란 '말할거리'가 있음을 전제했고, 내 인생이 하나의 이야기가 됨을 의미했다.  

  

남편과 나는 결혼 전에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서로를 알아왔는데, 그동안에도 나는 혼자 장기 여행을 떠나곤 했으며, 결혼을 하고도 가끔씩 필(?) 받으면 혼자 불쑥불쑥 주말에 떠나곤 했다. 거기에는 물론 요리사인 남편의 직업 특성 때문에 남들이 쉬는 휴일에 더 바쁠 때가 많았기에 함께 주말여행이 어려운 이유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면 그에게 장황하게 내가 겪고 본 것들을 말해주었고, 그는 마치 자신이 여행을 떠나온 것처럼 흥미롭게 들으며 즐거워했다. 나 역시 가끔씩 그에게 혼자 다녀오라며 여행을 선물하기도 했다.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중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함께 떠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우리는 만나서 지금까지 누구보다도 많은 여행을 해왔다. 중고차를 사서 호주 사막을 횡단하기도 했고, 산티아고 길을 네 번에 걸쳐서 함께 걷기도 했다. 아마도 우리가 지금까지 물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게 별로 없는 이유는 저 많은 여행이 적잖이 기여를 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물질은 있다가도 사라질 수 있지만, 추억은 영원하다고. 우리는 우리의 통장 잔고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추억을 저축한 거라고


그리고 그 추억은 함께 한 경험들로 대부분 얻어 지기는 했지만, 서로 각자 한 경험들을 공유하면서 얻어지기도 했다.  

  

각자만의 비밀 서랍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을 열어서 꺼내 보일 보물 같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로 하여금 '우리'라는 은하수 안에서 서로가 별로 빛날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혼자라고 해서 나 혼자 사막에 가서 걷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런 길 표시가 없고 사방에 풍경이 똑같은(적어도 아직 사막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사막에서 걸어서 길을 찾아다니려면 사막을 손바닥 보듯 잘 아는 현지 유목민 가이드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막 트레킹 (출처 : Mélodie du désert)

  

여자 혼자 가이드를 고용해서 단 둘이 그것도 사막으로 떠나는 건 비용적으로도 부담이 크고 안전상으로도 결코 좋은 생각은 아닌 거 같아서, 소규모 그룹으로 트레킹을 할 수 있는 투어를 알아보았다.  

  

프랑스에 몇 군데 트레킹으로 유명한 여행사들이 마침 사하라 사막 트레킹 코스를 지니고 있어서 이 중 한 곳을 이용할까 하다가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런 유명한 여행사들을 통해서 사하라 사막의 속살을 발견하는 진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찾다가 드디어 발견한 여행사는 사하라 사막 초입에 위치해 있으며, 사막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 나이 또래의 삽 십 대 사하라 부족 출신들이 프랑스 자연요법 치료사와 함께 운영하는 현지 여행사였다. 이 곳을 소개하는 글을 몇 마디 읽자마자 나는 생각했다.


'여기가 바로 내가 원하는 곳이야'.  


여행사의 이름도 여기에는 한몫했는데, '사막의 멜로디'라는 이 조그마한 여행사의 이름을 처음 보았을 때 어디선가 정말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저 광활한 사막의 멜로디라니. 참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매일 밤 사막 여행에서 빠질 수 없었던 차와 음악 (출처 : Mélodie du désert)

  

이들은 일반적으로 지프차가 다니는 사막의 길을 피해 '사막의 유목민'이라는 인적이 드문 사막에서의 트레킹을 제안하고 있었다. 루트는 오랫동안 사막 유목민들이 양들을 데리고 걸어서 다니던 길을 따라 모래 언덕과 오아시스를 사이에 두고 약 일주일 간 걷는 코스였다. 잠도 유목민처럼 일주일 동안 사막 한가운데 텐트나 아니면 텐트도 없이 쏟아지는 별 아래 비박을 할 수도 있었다.


이 여행은 사하라의 문화를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초대입니다


초대라고 자신들의 투어를 소개한 여행사답게 이들은 사막을 해치지 않는 친환경 투어를 추구하고 있었고, 사막에서 여전히 유목민으로 사는 이들의 삶을 보호하는 것을 중요시 여겼다. 이들은 ‘정착한’ 유목민이었지만, 사막에서 여전히 옮겨 다니며 사는 유목민들은 자신들의 가족이었고 친구였다.

  

몇 가지 질문을 하기 위해 메일을 보냈는데 너무도 정성스러운 긴 답변이 와서 감동을 했다. 이들에게는 투어를 함께 떠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태어나서 자랐으며 사랑하는 그런 사막을 제대로 보고 갔으면 하는 진정한 바람이 느껴졌다. 유명한 여행사도 아니었고, 오직 발로 걸어서 하는 트레킹만 제안하는 소규모의 현지 여행사였지만, 나는 그들과 몇 번에 걸쳐 이메일로 긴 교신을 주고받은 후 이 곳이라고 확신했다.


물론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홀로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이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막상 도심 한가운데서 위험한 일이 일어나도 도와줄 사람이 많지 않은데,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사막 한복판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도움을 청하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게다가, 이게 이 트레킹 코스의 매력이기도 하나 많은 이들이 가는 사하라 트래킹 길이 아닌 인적이 드문 길을 택해 간다는 사실도 나의 이런 걱정을 잠재우지 못했다. 함께 할 여행사도, 사막으로 같이 떠나게 될 다른 여행자들도 모두 모로코에서 처음 만나서 사막을 함께 걸으며 서로를 알아가게 되는 상황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가 사막에서 납치라도 되면?'    


그렇게 떠나기 전날까지도 내 마음은 시계추처럼 두려움과 떠나고 싶은 욕망 사이를 수십 번도 더 오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내 경험에 직감은 늘 그 어떤 외부의 객관적인 정보보다 나의 위험 혹은 행복을 잘 예견했다. 이번에도 '지금, 여기다' 싶은 직감에 나를 한 번 맡겨 보기로 했다.


내가 다시 사막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도, 지난해 사하라 투어 때 사막과 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베르베르 유목민 가이드를 만나서 아름다운 추억을 가질 수 있었던 덕분이다.

  

평생을 사막에서 태어나 사막에 살았으면서도 매일 밤 별똥별 두 개를 봐야 잠에 든다고 했었던 지난번 사막 여행의 유목민 가이드 아저씨는 내게는 어린 왕자 같았다.


순수한 마음으로 별을 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던 그처럼, 이번에도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가르쳐 주는 사막의 유목민 가이드와 함께 하는 여행이 되기를 나는 희망해 본다.


지난해 사하라 사막 여행을 함께 갔던 동생 상은과 베르베르족 유목민 가이드 아저씨 ⓒ주형원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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