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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Aug 02. 2018

괜찮아, 여긴 마라케시야


여행에서 가장 긴 거리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수 천 마일이 아닌 집에서 공항까지 가는 길이다.  


사막에 필요한 침낭과 겨울 옷 등이 든 배낭과 사진 가방을 어깨에 잔뜩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마라케시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오를리 공항은 집에서 차나 택시를 타면 결코 먼 거리는 아니지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몇 번을 갈아타야 하는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짐이 많아 어떻게 갈까 고민했지만 결국은 지하철과 트람 그리고 버스까지 세 번을 갈아타고 가는 멀고 먼 길을 선택했다. 앞으로 일주일을 사막에서 걸어서 여행해야 하는데, 떠나기도 전에 짐 들고 교통편 갈아타는 걸 힘들어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 이어지고 몇 번을 갈아탄 다음 공항에 도착했건만, 공항 밖에는 공항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파리 공항에서 이건 단 한 가지 경우를 암시했는데, 그건 의심 가는 수하물이 주인 없이 방치되고 있어서 폭탄 제거반이 폭발을 시키러 온 경우였다. 나는 아무 정보 없이 한참을 기다리면서 걱정이 되었다.
 

'오늘 비행기를 탈 수는 있는 거야?'

  

오늘 비행기를 못 타면, 내일 오전에 출발하는 사막 투어도 떠나지 못함을 의미했다. 그렇게 걱정 속에 삼십 분을 기다리자 갑자기 ‘뻥’ 하는 광음이 들려왔다. 폭탄 제거반이 수하물을 폭발시킨 것이다. 그리고도 한 십오 분이 더 지나자 우리는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까스로 제 시간 안에 출국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를 찾아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나 싶더니 게이트 밖에는 우리를 비행기로 대려다 줄 공항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겨우 비행기를 타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공항버스가 마치 길을 잃은 것처럼 활주로를 헤매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찾지 못하는 공항버스는 살다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버스를 타고 활주로를 돌고 돌아 드디어 비행기에 들어갈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는 위성 지도가 떴고,  그 지도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도시 이름이 보였다. 걸어서 세 번이나 도착했던 산티아고를 이렇게 보니 반갑고 신기했다.    


“스페인에서 구름바다 위를 나침반만 가지고 비행한다는 것은 매우 유쾌하고 멋진 일이오.”
그의 말이 더욱 느려진다.
“하지만 절대 잊지 마시오. 구름바다 밑은 저승이라는 사실을”
그러자 갑자기 그 고요한 세계가, 구름 위로 솟아오를 때 발견하게 되는 그 단조로운 조화의 세계가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 부드러움이, 하나의 함정이 되는 것이다.

-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중

마라케시 공항에 도착하니 작년에 이미 본 공항이라 낯이 익었다. 이 시기가 모로코 관광의 성수기인지 공항에는 이제 막 도착한 인파로 붐볐고,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서야 겨우 세관을 통과할 수 있었다. 벌써 지쳐서 도착의 기쁨보다는 회의가 앞서 들었다.
 
 '괜히 정말 사서 고생을 하러 왔나'
 
공항에 나와보니 한쪽에 여러 택시들이 있었고, 나는 지난해 마라케시에서 워낙 사기를 많이 당했기에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중 가장 순진해 보이는 택시 아저씨에게 갔다.


호스텔 주소를 보여주며 '여기까지 얼마예요?' 묻는데 아저씨가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가격을 불러서 잘 됐다고 생각했다. 택시에 타려는 찰나, 누군가 뒤에서 돌연 듯 나타나더니 택시 아저씨에게 아랍어로 한참 뭐라고 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세상에 기사가 주소를 헷갈렸지 뭐야. 네 호스텔은 메니나 안에 있어서 더 비싸"


"그래서 얼마인데요?"


그가 부른 가격은 원래 아저씨가 말했던 금액의 세배를 넘어섰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재고할 가치 없다는 듯 바로 돌아섰다. 세 발짜국쯤 걸어갔을 때 아니나 다를까 그는 달려와 내 팔을 잡았고 흥정에 들어갔다.


그렇게 몇 번을 차마 못 헤어질 연인 마냥 돌아서고 잡고를 반복했고, 어느새 그는 내 짐을 들고는 택시 안에 넣고 있었다. 그런 후 심지어 택시 아저씨에게도 나가라고 하고는 본인이 직접 운전을 하여 호스텔로 갔다.


물론 호스텔에 도착해서 보니 늘 그렇듯 내가 흥정에 성공했다고 자신만만하게 자랑한 가격도 원래 가격보다 두배는 더 높았지만 말이다. 호스텔 주인은 그의 말을 듣고도 내가 속았음을 믿지 못하는 어리벙벙한 나의 표정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택시 아저씨는 나에게 가격만 속였던 게 아니었다.


택시는 호스텔 근처에서 멈추더니 '더 이상은 들어가기 힘들어'라고 했고, 그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나타났다.


'따라와. 데려다줄게'


미더운 표정의 나에게 그는 '괜찮아. 내가 어딘지 알아서 그래'라고 하더니 역시 호스텔에 도착해서 돈을 요구했다. 내가 단호하게 '그런 게 어딨어'라고 항의하자 그의 표정은 순간 험악하게 일그러졌지만, 나는 그 순간 바로 호스텔 안으로 들어왔다. 힘들게 도착했지만, 그래도 메디나 한 중앙에 위치한 전통 모로코 디자인의 호스텔은 들어가자마자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메디나 한 중앙에 있는 전통 모로코 디자인의 호스텔




일단 무사히 호스텔까지는 왔으니, 이제부터 심각한 길치인 나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내일 미팅 장소를 길을 잃지 않고 찾아가는 것만 남았다. 나는 배낭을 놓고 사전 답사를 떠나기로 했다.


호스텔에서는 지도를 보여주며 ‘아주 쉬워요. 걸어서 오분 이면 가요’라고 했지만, 호스텔 밖을 나가자 여러 갈래의 골목과 장터 속에서 도무지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어두운 메디나의 골목에서 축구 중인 모로코 아이들 ⓒ주형원

그때 한 꼬마 아이가 나타나더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보나 마나 저러고 돈을 요구하겠다 싶어서 괜찮다고 했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괜찮아요. 여긴 마라케시예요


미로 같은 메디나 시장 ⓒ주형원

저 말이 ‘마라케시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말아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마라케시니까 별 일은 없을 거예요’ 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난 이 후로도 마라케시에서 수도 없이 똑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하는 수 없이 속는 셈 치고 따라가자 곧 광장이 나왔고 아니나 다를까 그는 돈을 요구했다. 돈을 주는 게 결코 그를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지만, 그의 애원하는 표정에 마음이 약해져서 잔돈을 건넸다.  


“이 돈도 주는 게 너를 위하는 건 아니니 주지 말아야 하는데..”   


그가 무슨 말인지 이해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더 많이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던지 실망한 얼굴을 지어 보인 후 사라졌다. 드디어, 나는 일 년 전에 왔던 마라케시 최대의 야시장이 열리는 제마 엘프나 광장에 서 있었다.

 

일 년 전처럼 시장은 각종 음식 냄새의 향연으로 비행기에서의 점심 이후 내 위가 계속해서 비어 있었음을 자연스럽게 환기시켜 주었다. 곳곳에는 군침이 도는 먹거리 투성이었고, 걷고 있으면 십 미터마다 삐끼들이 잡았지만 나는 군침을 삼키면서 거절해야 했다.


모로코의 야시장  ⓒ주형원

지난해에 물갈이의 일종으로 마라케시에 도착하자마자 한 며칠 동안 설사를 했었고, 사막까지 열 시간 동안 멀미로도 심하게 고생을 했던 안 좋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이번에는 떠나기 전날 저녁부터 위를 비우고 가리라 단단히 결심하고 왔다. 몇 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일 함께 갈 일행들에게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모로코의 야시장  ⓒ주형원

삐기들이 잡을 때마다 “죄송해요. 이미 먹었어요” 하며 거절했지만,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한 솥으로 찌고 있던 달팽이 요리 앞에서는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손가락까지 빨아가며 맛있게 먹는 나를 옆에 모로코 현지인 손님들은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마라케시 야시장의 달팽이 요리  ⓒ주형원


힘들게 왔지만 모로코 밤 재래시장을 걸어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목을 죄고 있던 무언가가 풀어지고 다시 숨을 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미 지난해에 이곳에 왔었고, 그때 모로코를 떠나면서 '마라케시는 내 취향이 아니야'라고 결론지었었지만, 다시 찾아온 마라케시는 또 달랐다.


역시 사람과 도시는 한 번에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어떤 도시는 아무리 좋았어도 그 기억에 다시 가면 실망했고, 어떤 도시는 갈 때마다 새로운 매력이 보였다. 지난해 지독한 독감을 지니고 왔던 마라케시는 내게는 너무 시끄러웠고 번잡했으며 눈뜨면 코 베어갈 그런 곳이었다. 오죽하면 '다음에 또 모로코에 오면 마라케시는 절대 오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을까.


그러나 꼬불꼬불한 메디나의 어두운 골목을 따라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나는 이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마라케시만의 매력에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마라케시의 밤은 그 어떤 이야기도 꿈꾸게 만드는 마법을 지니고 있었고, 나는 그토록 어렸을 때 동경하던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하룻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이면 신부를 처형하던 왕에게 천일 그리고 하룻 밤 동안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다른 젊은 여성들의 생명 또한 살릴 수 있었던 셰헤라자데의 이야기가 이제 막 시작되어야 할 것 같았다.


모든 이야기는 어쩌면 이렇게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라케시의 어두운 골목을 비추는 조명 가게들 ⓒ주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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