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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an 02. 2019

바다가 좋아요 산이 좋아요?   

2019년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바다가 좋아요 산이 좋아요?

누군가 나에게 물으면 나는 늘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고는 했다.


"산이요"

심지어 누군가 '산보다는 바다를 더 좋아할 거 같아'라는 말을 하면 나도 모르게 약간 발끈(?)하며 외쳤다. 


"아니에요. 산을 더 좋아해요."


왜 내가 바다보다 산을 더 좋아할까 생각해 보니 산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정상에 다다르는 순간까지 나의 노력을 기반으로 하는 반면, 바다는 비교적 쉽게 다다를 수 있다고 느껴져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산은 타면서 속살을 혜집고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 반면, 바다는 너무도 쉽게 자신의 내장 육부를 내보인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게다가 여름에 전국에서 몰려온 피서객으로 북적이는 해변은 정말이지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이건 순전히 해변에서만 바다를 봤지 한 번도 바다를 항해하거나 아니면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을 탐험해 본 적 없는, 지극히 바다의 표피에만 머물렀던 나의 경험에 의거한 것이다. 언젠가 바다를 무척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바다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친구가 자신은 어떤 바다가 좋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모든 바다가 다 자신만의 파도와 바람을 지니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놀랬었다. 그만큼 나 자신이 바다에 무지했다. 


이런 나 역시 정말 좋아하는 바다가 있는데, 그건 바로 겨울 바다이다. 


해변에 파라솔과 형영 색색의 수영복을 입고 누워있는 사람들 대신 두꺼운 외투와 목도리를 두른 사람들이 듬성듬성 홀로 혹은 누군가와 함께 손을 잡고 해변가를 따라 걷는.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말소리 대신 바람에 파도 깨지는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오묘하게 버무려져서 들리기도 하는. 간혹 운이 좋으면 바다에 튜브와 그 튜브 위에 떠있는 사람들 대신 얼어 죽기 딱 좋을 날씨에 미쳤다고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볼 수도 있는. 


올해는 왠지 이런 겨울 바다와 함께 시작하고 싶었다. 아니 꼭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년 전에는 사하라 사막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에 모로코로 떠났었고, 이번에는 바다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에 파리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를 찾았다. 우리에게는 영화제로 더 친숙한 도빌이 파리에서 2시간 거리로 제일 가까운 바다가 있는 곳이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가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도시였지만,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그 생각 하나로 나와 남편은 새해 첫날 새벽같이 일어나 떠났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에 바다가 있다면 왠지 참 멋진 한 해를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도빌에 도착해서 마침내 바다에 올 수 있었다. 이곳의 전통이 매년 1월 1일 정오에 바다로 뛰어드는 거라고 하는데, 그럴 용기는 전혀 나지 않았다. 정오가 되자 아니나 다를까 바다 앞에서 수영복만 남기고 옷을 벗는 사람들이 보였고, 이들은 벌벌 떨면서 바다로 달려 들어간 후 물속에서 환호를 했다. 젊은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 노인분들도 보였다.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해변을 따라 걸었다. 출렁이는 겨울 바다를 보자, 내 마음에도 저 물결이 들어와 지난 한 해의 안 좋았던 기억들과 원망과 후회들을 다 쓸어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고, 여러 번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었던 한 해였다. 그런 한 해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계속 이 브런치에 글을 썼기에 가능했다. 


2018년 1월 1일, 눈 뜨자마자 했던 첫 번째 행동이 브런치에 가입했던 거였는데, 그때 브런치 첫 시작 화면에서 봤던 'You can make everything by writing'에 무척이나 가슴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일 년 동안 매번 브런치에 글을 쓰려고 접속할 때마다 이 문장은 어김없이 나타났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나는 '글을 쓰는 게 도대체 뭐를 가능하 게 한다는 거야'라는 생각에 이유 모를 원망이 가끔씩 들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심지어 신년을 며칠 안 남겨놓고 만났던 지인에게서 '요즘 누가 글을 읽어'라는 말을 듣고는 회의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바다를 보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지난 일 년 동안 글을 쓰는 게 결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지는 않았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결코 녹록하지 않았던 하루하루의 일상을 버티는 데 그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되어주었다는 것을. 더불어, 바다처럼 그 자체만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는 것을. 새로 시작하는 한 해에는 나를 포함한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조금만 더 자신을 믿고, 삶이라는 바다에 좀 더 용감하게 뛰어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어쩌면 내가 바다보다 산을 더 좋아한다고 했던 건, 한 번도 제대로 바다에 뛰어들 용기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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