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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an 15. 2019

안드레아 보첼리 독일 공연

나는 꿈꾸네

오래전에 나를 그토록 심장 뛰게 만들던 것들이 기억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가 있다. 그렇게 더 이상 생각도 하지 않고 살다가, 문득 예상치 못한 계기로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 심장이 덥혀진다.

머리가 아닌 가슴이 기억을 하는 것이다.

그때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리고 강렬했는지. 그리고 그 뜨거웠던 가슴이 지금은 얼마나 식었는지. 한 달 전에 지금 독일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는 동생이 물었다.

“독일 안 올래? 이번에 공연하는데”
“무슨 공연?”
“안드레아 보첼리가 독일 투어를 하는데 거기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기로 했거든”
“안드레아 보첼리?”

보첼리는 내 고등학교 시절, 방 안에 혼자 있던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했었던 이태리 팝페라 가수이다. 장님 가수라는 남다른 이력을 지니고 있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언젠가 그를 만날 수 있기를 꿈꿨었다. 안드레아 보첼리는 12살에 사고로 시력을 잃고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이후 법학과를 들어가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이 음악이라는 걸 깨달아서 변호사 일을 그만두게 된다. 


결코 이르지 않은 나이에 성악 레슨을 받기 시작한 그는 야간 재즈 바에서 피아노를 치며 레슨비를 벌었다. 그 후 그는 서른 중반에 이탈리아의 유명한 팝스타인 주케로와 함께 공연하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고,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사라 브라이트만과 ‘time to say goodbye’를 부르면서 마침내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time to say goodbye의 원 이태리 제목은 ´On te partiro(당신과 함께 떠나렵니다)이다. ‘혼자 있을 때면 수평선을 꿈꿔요’로 시작하여 ‘당신과 함께 떠나렵니다’를 반복하는 이 노래는 당시에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다.


사라 브라이트만과 안드레아 보첼리의 1997년 콘서트 


그리고 지금 그의 공연을 직접 보기 위해 독일로 와 있는 것이다. 새벽부터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자 눈이 내리고 있었고, 나는 설레기 시작했다. 저녁에 그의 공연에 가는 길에는 벌써 오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눈에 미끄러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걸으면서도 설레는 표정이었다.


슈투트가르트 안드레아 보첼리 공연장 밖 풍경 


보첼리의 공연은 거의 매진이기 때문에 다른 공연처럼 연주자라고 가족이나 지인을 위한 무료 티켓 혹은 할인 티켓도 받을 수 없었다. 저 멀리 3층 끝 좌석도 다른 공연에 비해 결코 만만치 않은 고가라 내 좌석에서 보첼리는 무대 위 스크린에서나 보였다. 하지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삼층에 올라가서 표를 보여주자 자리 안내해주시는 독일 분이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독일어로 한참 뭐라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내가 ‘소리, 아이 돈 스피크 절먼’이라고 해도 꿋꿋이 말을 이어가더니 갑자기 새 표를 꺼내서 주면서 무대 앞 좌석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표를 보니 보첼리가 잘 보이는 일층 무대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기쁜 마음에 새로운 자리로 가서 자리를 잡자 여기서는 무대가 한눈에 보였다. 심지어 표 가격도 원래 가격의 두 배 이상이었다. 보니까 나처럼 자석이 무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 중 일부와 휠체어 탄 장애인 분들 모두 무대 바로 앞 쪽에서 볼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보이지 않게 보첼리의 배려를 받고 있는 것만 같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보첼리가 무대에 나오기 직전 


얼마 있다 보첼리가 마침내 무대에 등장하였고, 나는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이 속구 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알까? 자신의 노래를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들으며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 여고생이 그토록 많은 꿈을 꿨다는 것을. 그의 콘서트 피날레 곡은 역시 그의 대표곡이 소뇨 <나는 꿈꾸네>였는데, 이 노래의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많은 관객들을 환호를 하였다. 여러모로 만감이 교차했던 공연이었지만, 그때  알 수 있었다. 그의 노래가 나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에게 꿈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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