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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Jan 21. 2019

첫 책이 세상에 나온 지 삼 년 후

여행은 연애

아직도 기억난다. 출판사에서 이제 갓 인쇄된 뜨끈뜨끈한 책을 받아 마치 이제 막 출산한 아기라도 되는 듯, 그날 밤 내 품에 꼭 안고 잤던 것을. 새벽에 몇 번이나 깨면서 책이 잘 있는지를 확인했던 것을. 책이 나오기까지 집필 기간을 포함하면 거의 이년 가까이 걸렸고 미뤄지는 출간 일정 때문에 조금 초조하기도 했지만, 막상 책이 만질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되어 내 품에 들어오자 들었던 생각은 그때까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지 말고 그냥 이렇게 내 품에만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두려웠던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손에 잠시 페이지가 넘겨지고, 순식간에 판단되고, 운이 좋으면 그들에 집에 가서 책장에 들어가고, 아니면 반품이나 최악의 경우에는 폐기 처분될 수도 있는 내 책의 미래가. 이제 이 책은 내 손을 떠나기에, 내가 더 이상 이 책의 삶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떠나는 건 이 책뿐만이 아니었다. 언젠간 꼭 책을 내고 싶다는 오랫동안 품었던 꿈 역시 이뤄짐과 동시에 나를 떠나가고 있었다.


첫 책을 내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너무도 가슴 뛰는 일이었고 나를 꿈꾸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 여정의 끝이 다가온다는 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한 여정이 끝나면 또 다른 여정으로 이어지겠지만, 그럼에도 첫 번째는 늘 특별하다. 첫사랑, 첫 만남, 첫 책. 그토록 서점에 꽂혀있는 내 책을 보기를 고대했지만, 그 꿈이 이뤄지기 불과 이틀을 남겨두고 나는 내 꿈이 이뤄지는 게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처음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십 년 전 파리 유학 마지막 학기 때였다. 하녀 방이라 불리는 파리 다락방에서 살고 있었던 나는 원대한 야망을 갖고 책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어, 영어, 불어로 책을 써서 동시에 여러 국가에서 내야 겠다고 시작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오그라드는 이야기지만, 제목은 더 가관이었다. '더 베스트셀러'. 꿈도 지나치게 컸고 자신의 주제도 한참 몰랐던 때였다. 지금도 동생은 이 이야기로 가끔 나를 놀린다.


물론 이 책은 똑같은 에피소를 세 언어로 쓰다가 지쳐서 얼마 안 돼 끝나고 말았다. 이후에도 학교를 마치고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나는 육 개월 만에 과감하게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책을 쓴다는 이유로 말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저녁과 주말에는 과외를 한 돈으로 당장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금만 모와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시간이 많다고 글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영감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결국 또 포기하고 말았다.


늘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변덕이 심했던 내가 그래도 책을 쓰고 싶다는 그 꿈 하나만은 계속해서 붙잡고 있었던 게 지금 생각해도 용하다. 나는 그 이후에도 몇 년의 직장 생활 후, 삼십을 바라보는 시점에 다시 한번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다. 한 달 넘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서 완주했으며, 현지인들과 같은 트럭을 타고 아직 개방되지 않았던 미지의 나라 쿠바 전역을 여행했다.


순례길을 걸은 후 글을 쓰기 위해 낑낑거렸지만, 다 써놓고도 뭔가 부족하다 싶어 그냥 묵혀두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쿠바를 다녀온 후에는 여태껏 그렇게 써지지 않던 글이 약 4주 만의 시간 동안 책 한 권 나올 정도의 분량으로 뚝딱(?) 써졌다. 주위에 조언해 줄 마땅한 사람도 없어서 이 원고를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만 몇 달째 하며 수정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안 되겠다 싶어 어느 날 저녁 출판사에 보냈다. 많은 출판사는 아니고 찾아보다 느낌이 오는 몇몇 출판사들에게만 원고를 일단 보내기 시작했다.  


중간에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 리스트에 있던 출판사들 중 극히 일부에게만 보낼 수 있었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하자라는 마음으로 일단 잤다. 그다음 날 아침 유난히 일찍 눈이 떠졌고, 여느 때와 같이 휴대폰을 들어 밤새 도착한 카톡을 보던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 출판사 리스트, 그것도 맨 첫 번째 있었던 출판사 편집장님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던 것이다. 가장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리스트 첫 번째에 있었던 출판사였다.


'파리는 새벽인데... 원고 앞부분만 보고도 너무 좋아서 일단 친구 등록부터 해놨어요. 아침 시간 될 때까지 원고 다 읽어볼게요.'


아직도 잠에서 안 깨어났나. 꿈을 꾸고 있나. 한참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잠에서 깨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또 다른 두려움이 앞섰다. 원고 다 읽어봤으면 분명히 실망했을 거야. 처음만 좋았다고 생각했을 수 있어.  흥분 반 두려움 반으로 편집장님에게 '정말요? 고맙습니다'라고 카톡을 보내니 바로 답이 왔다.


'매력적이었어요. 전 깔깔거리며 보고 있어요.'


세상에 내 이야기가 매력적이라니. 그녀는 이어서 나한테 더 많은 매력을 느낀 거 같다고 말한 후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문자를 보냈다.


'책 만들려면 우리 만나야 하는데~ 한국에도 오시나요?'  


나는 마침 한 달 후에 동생 결혼식이 있어 한국에 갈 예정이었다. 그렇게 출판사를 한국에서 만나 생에 첫 출판 계약이라는 걸 하고, 그 이후 장거리 연예가 아닌 장거리 작업을 걸쳐서 일 년 반 후에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요즘은 일인 출판도 많이들 하지만, 나는 출판사와의 계약을 통해 출간하게 된 것에 지금도 감사한다. 편집자가 있다는 것은 전문적이면서도 냉철한 삼자의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고, 더불어 책을 끝내는 데까지 걸리는 결코 만만치 않은 여정을 함께 나아갈 든든한 동지를 얻는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물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에게 하루 만에 연락을 준 편집장님도 그렇고 내 편집자와도 멀리 있었지만 이상하게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게 있어서, 내가 그녀의 꿈을 꾸거나 하면 그녀에게 그다음 날 연락이 왔었고, 내가 그녀에게 연락을 할 때는 그녀가 나에게 메일을 쓰고 있거나 할 때였다. 어쩌다 한국에 가면 다 같이 시장에서 막걸리에 순댓국을 먹었는데, 그 추억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따뜻하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 덕분에, 책을 내기까지의 여정이 그토록 가슴 떨리고 행복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이 나왔던 그 겨울 광화문 교보문고


책이 정말 세상에 나왔다는 걸 실감한 것은, 공식적으로 책이 나와 온라인 사이트에서 먼저 판매가 시작된 2016년 1월 20일이 아니라 그 이틀 후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을 때였다.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두 번은 없다.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므로 너는 아름답다'라는 큰 간판이 걸려 있었는데, 나에게 그 날은 정말 일생일대의 유일하고도 특별한 날이었다. 극심한 한파가 들이닥친 추운 겨울날, 나는 그토록 수없이 들락거렸었던 광화문 교보문고에 여느 때와는 다른 떨리는 마음으로 갔다.


대학을 올라가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할 때 지금은 완전히 재개발돼서 자취를 감춘 동네에 살았는데, 광화문에서 걸어서 한 삼십 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동생과 함께 그 동네 옥탑방에 살았는데, 서울에 다른 아는 사람도 없던 나에게 광화문 교보문고는 정말 따뜻한 곳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많은 책이 있고 나가라고 등 떠미는 사람도 없는 이 곳에서 처음 남자 친구와의 약속도 잡았고, 별 이유 없이도 수시로 들렸었다.


바로 그 서점에 내 책이 들어온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서점에 들어와 내 책을 찾았다. 여행 에세이 코너로 가서 매대를 둘러보던 중 내 책을 발견하고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막상 서점에서 수많은 다른 책들 속에 있는 내 책을 보자 선택을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덜컥 들었던 것이다. 이건 내 책이 '성공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팔리지 못한 책의 운명이 어떻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세상에 태어나 제대로 빛도 보지 못하고 창고에서 썩다 언젠가 처분될까 두려웠다.


광화문 교보문고 '기행 신간 베스트 ' 매대에 진열돼 있었던 책


나는 매대에 있는 내 책들 중 뒷장 커버가 미세하게 훼손된, 읽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고 잘 보이지도 않지만, 가장 선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책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가서 구매했다. 서점에 오는 이들 중 아무에게도 선택을 받지 못하면 출판사로 다시 돌려보낼 수 있기에 구입하여 아직까지도 집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나는 이때 이후로 서점에 가면 가장 깨끗한 책 대신, 가장 선택받지 못할 위기(?)에 처한 책을 고르는 습관이 생겼다.


교보문고에서 구매한 내 첫 책




다행히 책은 내가 우려했던 것처럼 태어나자마자 죽지는 않았다. 네이버 책문화 메인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고 교보문고와 서면 인터뷰도 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못했어도 온, 오프라인 서점의 여행 에세이 분야 '베스트' 순위 안에 오르기도 했었다(물론 이 기간이 길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처음에 책이 나왔을 때 열심히 구매하여서 본인들도 읽고 주변에 선물도 한 지인들의 몫도 컸을 것이다. 책이 나오고 조금 지나자 책을 읽은 이들의 인스타와 블로그 후기도 하나둘씩 뜨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읽다가 이불 안에서 울었다고도 했고, 어떤 사람은 여행을 가고 싶어 졌다고도 했다. 실망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아련했다는 사람도 있었으며 읽으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들 한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이나 생각이 다 다르다는 걸 보고 신기했다. 정작 살면서는 만날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들과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매일 만나는 사람도 알기 힘든 나의 가장 깊숙한 곳을 보여주고 소통한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SNS와는 담을 쌓고 사는 나도 열심히 이런 후기들을 찾아 읽으며,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참 많은 것들을 얻었다. 한 독립 서점에서는 책을 읽고 난 후기를 예쁜 손글씨로 써서 종이를 코팅까지 하여 인스타에 올렸는데, 그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아 한국에 들어갔을 때 그 서점을 찾아가 보기도 했다. 마침 서점에 그 글을 썼던 매니저분이 있었고, 매니저분은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내 책을 잘 보이는 곳에 다시 진열했다며 신기해했다.


이 모든 건 이 책을 썼고 또 여러 좋은 사람을 만나 이 책이 세상에 나왔기에 가능했던 기적 같은 일들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책의 수명은 (적어도 판매되는 상품으로써의 수명은) 오래가지는 못했다. 매년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책은 점점 더 찾기 어려운 곳으로 자리를 옮겨갔으며,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구입이 가능하지만 이제는 직접 가서 살 수 있는 오프라인 서점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애당초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죽어간다는 생각과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고 자책도 했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많은 이들이 같은 생각이겠지만, 나 역시 재능이 없으면 다시는 글을 쓰지 말아야 하나라는 회의도 들었다. 그렇게 다시 책을 써보자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다가도 그만두기를 반복하다가, 작년 새해에 꼭 책을 쓰지 않아도 되니 글을 쓰자라는 생각으로 이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때그때 쓰고 싶은 주제로 글을 쓰다가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 연재를 하게 되었고, 브런치 연재가 끝나니 그 내용으로 책을 내보면 어떠겠냐고 출판사 몇 군데서 연락이 왔다. 나는 이 모두 첫 책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믿는다.


첫 책이 세상에 나오기 직전, 파리에서 서울 가는 장시간의 비행 동안 한 숨도 자지 못하고 비행기 창문으로 붉은 석양으로 물드는 구름과, 그 구름 위의 별, 까만 밤 후에 다시 세상에 찾아오는 빛을 감탄하며 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미 여러 번 같은 구간을 다녔지만, 이처럼 깨어서 비행 내내 이 광경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첫 책이 세상에 나온 지 딱 삼 년이 지난 오늘, 나는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아름다웠음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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