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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Feb 03. 2019

부르고뉴 와인 페스티벌

베즐레 와인 축제에 가다 


ⓒ 주형원


“어떤 와인 주로 마셔요?”


“글쎄요. 그때그때마다 다른데요.. 더운 여름에는 냉장고에 쟁여놓은 시원한 프로방스 로제 와인을 마시고, 그냥 와인이 당길 때는 부르고뉴 레드와인을 마시고... 눈이 내리는 겨울밤에는 와인을 넣어 만든 뱅쇼를 마시고..”


“오~~ 그럼 제일 좋아하는 술은 뭔데요?”


“막걸리요”


한 번은 외교부 사람들과 파리에서 함께 하던 점심 식사에서 와인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다가 좋아하는 술을 물어보는 말에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막걸리’라고 대답하자 엄숙한 분위기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던 동행들이 빵 터졌다. 난 전혀 예상치 못한 웃음 포인트(?)에 어리둥절 해졌다. 아니,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막걸리를 좋아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난 기본적으로 모든 술을 다 좋아하는데, 그중 막걸리를 가장 사랑한다.


제일 좋아하는 막걸리는 달달한 공주 밤 막걸리와 고소한 우도 땅콩 막걸리, 상큼한 제주 감귤 막걸리이며, 한국에서 여행을 할 때면 꼭 그 지방이나 도시 막걸리를 찾아 마신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집에는 없는 세간살이에 온갖 술잔은 다 있다. 소주잔, 막걸리잔, 와인잔, 칵테일 잔, 맥주잔 등. 소주잔도 일반 식당에서 쓰는 소주 브랜드 이름이 들어간 잔부터 불 들어오는 잔에다, 와인잔도 크기별로 있고, 다양한 와인 페스티벌이나 박람회에서 받은 잔들이 있으며, 맥주잔도 호가든, 기린, 아사이 맥주잔, 독일 전통 맥주잔, 프랑스 맥주잔 등이 등이 있다. 


모으려고 해서 모은 게 아니라 술을 마셔야 하고, 또 좋아하다 보니 술이 있는 곳들을 나름 찾아다니게 되어 자연스럽게 모아진 소중한 자산(?)이다. 엄마는 내가 간이 안 좋으니 술을 그만 마셔야 한다고 하지만, 난 취하지 않고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부럽지는 않다.



직접 수공예로 와인 통을 만들고 있는 장인 ⓒ 주형원


와인을 좋아하긴 하지만 와인 애호가라고 하기에는 지식도 경험도 부족한 내가 제일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와인은 부르고뉴 와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고 해외에서 더 잘 알려진 와인은 보르도 와인이지만, 보르도 와인은 내 취향이 아니다. 보르도 와인은 대부분 혀에 닺자마자 맛이 바로 느껴지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까지 맛이 나름 일정하지만, 부르고뉴 와인은 입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맛을 바로 알기 어려운 반면 입에서 사라질 때까지 다양한 맛이 나온다. 쓴 것도 같았다가, 신 것도 같았다가, 단 것도 같다가.. 맛을 하나로 정의하기 힘들다. 


당연히 여운도 더 길다.


마치 좋았어도 지금 이 모습이 다일 거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보다, 잠깐 만났어도 뭔가 알면 알수록 더 깊을 거 같은 사람과의 만남이 그 이후에도 훨씬 여운이 오래가듯, 정의하기 힘든 복합적인 사람이 어려우면서도 더 끌리는 것처럼. 물론 이건 와인 전문가는커녕 와인 아마추어에도 못 들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자 취향이다.


그래서 한 번쯤 부르고뉴 와인 페스티벌을 가기를 꿈꿨었다. 부르고뉴 지방에서는 각 지역마다 와인 생산자들이 며칠 혹은 일주일 기간을 두고 와인 페스티벌을 한다. 와이너리도 방문하고 다양한 와인도 테스팅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부르고뉴 와인과 곁들여 에스카르고, 뵈프 부르기뇽 등 부르고뉴 지방의 프랑스 전통음식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늘 가봤으면 했는데 이번에 엄마가 파리에 오면서 함께 갈 곳을 찾다가 마침 베즐레라는 부르고뉴 한 와인 생산지에서 와인 페스티벌을 하는 것을 보고 당일치기로 떠나게 되었다.


이틀 동안 와인 페스티벌을 하는 베즐레 마을 입구 ⓒ 주형원






언덕 위에 위치한 부르고뉴의 중세 마을 베즐레 (사진 출처:구글 이미지) 

천년이 넘은 중세 마을로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도 꼽히는 베즐레는 나와 남편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다. 우리가 수년에 걸쳐 몇 번이나 걸은 산티아고 길이 시작하는 프랑스 마을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 마을의 성당에는 860년부터 막달라 마리아의 성해가 옮겨온 후로 많은 순례자들이 몰려들기 시작되었다. 마리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 많은 여자로 비난을 받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나 그의 발에 향료를 바르고 회개를 한 후 예수님의 유일한 여제자가 되고 훗날 성녀가 된다. 그녀는 성서에 나오는 회개의 상징적인 인물이자,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처음 목격한 증인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베즐레의 라 마들렌 수도원 내부 ⓒ 주형원


이런 종교적으로 중요한 곳이 어떻게 주요 와인 생산지 중 한 곳이 될 수 있었냐고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알려졌듯 종교가 아니었으면 와인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처음 와인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가톨릭 사제들이었고, 와인은 미사 이외에도 교회가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때 사제들 밑에서 와인을 만들던 사람들이 훗날 와인 생산자들이 되었다. 지금은 와인과 종교가 분리되었지만, 이런 종교와의 오랜 역사로 와인 생산자들은 와인 페스티벌 기간 동안 각자 모시고 있는 성상을 어깨에 메고 거리로 나와 행진을 한다. 


각기 성상을 들고 행진하는 베즐레의 와이너리들 ⓒ 주형원


겨울이라 아무리 축제라고 해도 황량하지 않을까 했던 건 나의 기우였다. 우리는 마을에 도착해서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각각 종이와 다양한 천을 이용해서 온갖 꽃을 거리 곳곳에 심은 것이다. 얼핏 보면 겨울이 아니라 화사한 봄 같았다. 거리마다 장식이 모두 다 달랐고, 겨울에 이토록 화사한 봄이 연출되게 하기 위해 쏟은 엄청난 정성과 창의성이 넘치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보며 우리는 연신 감탄을 하였다. 이 페스티벌을 위해 모인 몇 백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여러 번의 회의를 거친 끝에 장식을 직접 만들고 거리를 꾸민다고 한다.  


ⓒ 주형원
직접 꽃을 만들어서 피운 베즐레 마을 ⓒ 주형원


우리는 마을 입구에서 키트를 샀다. 이 키트를 사면 와인잔 하나와 쿠폰 7개를 주는데 이 쿠폰을 가지고 각각의 와이너리에서 원하는 다양한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마을 곳곳에서 부르고뉴 대표 음식인 에스카르고(달팽이 요리), 부당(프랑스 순대), 뵈프 부르기뇽(소고기 와인 찜)등이 거리와 식당에서 요리되고 있었다. 우리는 일단 에스카르고와 베즐레 화이트 와인으로 미식 여행을 시작했다. 에스카르고를 하나 집어 입에 넣고 이 지역 베즐레 화이트 와인을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남편과 나와 엄마, 이렇게 우리 셋 모두 동시에 절로 감탄을 하였다. 

여태껏 살면서 마셔본 화이트 와인 중 가장 맛있는 와인 중 하나였다. 베즐레는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하다. 


베즐레 거리 곳곳에서 울려 퍼지던 연주 ⓒ 주형원 


거리 곳곳에는 다양한 연주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프랑스 전역에서 몰려든 방문객들로 이 조금만 마을은 꽉 찼다. 실제로 이 와인 페스티벌이 열리는 이틀 동안 약 4만 명이 이 조그마한 마을을 방문한다. 파리의 명소들과는 다르게 외국 관광객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와인의 나라답게 프랑스 내국인 관광객들이 다수였다. 모두 목에 건 잔에 받은 와인을 마시며 거리를 걷고 있었고, 추위도 잊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마시는 잔이 늘어날수록 취기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양한 와인을 조금씩 조금씩 테스팅 겸 마시고 즐기는 것이다


 ⓒ 주형원
부르고뉴 베즐레 포도 경작지 ⓒ 주형원

쥘 루아, 로맹 롤랑 등의 프랑스 대표 작가들이 한 때 머물렀던 예술가의 마을답게 아트 갤러리 및 오래된 골동품 집들도 거리 곳곳에 있어서 와인과 음식과 예술의 조화가 어우러지는 낭만적인 곳이었다. 먹고 마시고 보는 사이에 하루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우리는 이 곳에서 오늘 하루 맛본 와인 중 제일 맛있었던 화이트 와인 세병을 사들고 기분 좋은 알딸딸함을 지니고 파리로 돌아갔다. 다음에 또 와야지라는 다짐과 함께. 


베즐레의 사진관 ⓒ 주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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