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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Mar 04. 2019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마지막 영화

The Mule 혹은 라스트 미션 

한 늙은 노인이 픽업트럭 안에서 오래전에 유행이 지난 옛날 노래들을 따라 흥얼거리며 미국의 황량한 사막 도로를 가로질러 간다. 영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이 신은 여러 번 반복되는데, 사막을 옆에 두고 끝없이 이어지는 미국의 로드가 지니고 있는 그 광활한 풍경과 그 여정을 홀로 하는 사람만 보면 언뜻 로드 무비가 연상된다. 파리에서 약 한 달 전에 개봉한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일부로 영화 내용을 전혀 찾아보지 않고 간 데다가, 직전에 일이 생겨 영화 상영 시간이 15분이나 지나고 들어갔다. 그때 스크린에 나오고 있던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었다. 사전 정보가 없이 갔기에, 처음 이 씬을 봤을 때는 단지 '어디로 여행을 가는 건가?'라고만 생각을 했다. 


여정을 보여주는 영화들은 보통 시작하는 지점부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 영화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여정을 보여준다. 심지어 똑같은 장면이 반복해서 나올 때마다 화면 아래 자막에 이게 몇 번째인지가 나온다. 이 여정들은 따로 목적지가 있는 게 아닌 모두 단 하나의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목적이란 다름 아닌 마약 운송이고, 이 여정을 통해 매달 멕시코의 거대한 카르텔의 코카인이 미시간 주로 대량 유입이 된다. 그것도 아무도 그럴 거라고 상상하지 못할 단 한 명의 백발의 노인에 의해서 말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The Mule

한국에는 3월 14일에 '라스트 미션'이라는 제목으로 개봉 예정인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원제는 'The Mule'이다. Mule의 가장 첫 번째 뜻은 '노새'지만, '마약 운반책'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영화를 다 보면 아마 이 두 뜻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십 년 만에 연출과 연기를 둘 다 한 영화이며, 클린트 이스트우드 자신도 이 영화가 자신의 마지막 연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해서 더 주목받는 영화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이런 여러 의미를 담아 원제인 'The Mule' 대신 '라스트 미션'이라는 제목으로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몰론 나는 개인적으로는 원제가 훨씬 더 좋기는 하지만 말이다. 


주인공 얼은 90세 가까운 노인인데 세계 2차 대전 참전 용사였으며 한때는 누구보다도 인정받는 원예사였다. 그는 평생 자신의 꽃들, 특히 그중에서도 아이리스라고 부르는 붓꽃에 모든 열정을 쏟았으며, 많은 상을 받고 성공했지만 자신의 가족은 등한시했다. 그 결과, 지금은 자신의 손녀만 제외하고는 아내와 딸을 포함한 다른 가족들은 철저히 그를 외면하고 있다. 손녀의 결혼식 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아내가 왜 그렇게 꽃이 좋냐고 물어보자 그는 답한다. '단 한 번만 피기 때문이라고'. 그런 그에게 아내는 일침을 가한다. 가족도 그렇다고. 자신의 꽃이 피는 것을 보면서도 정작 가족이라는 꽃이 피는 데는 무심했던 그는 이제 홀로 외로운 노년을 맞이하게 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The Mule

게다가 인터넷의 시장의 발달로 인해 자신이 평생을 바쳐온 화훼업도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되고, 법원으로부터 농장 압류를 당하게 된다. 돌아갈 곳도 없으며 더 이상 자신의 인생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느낄 때, 누군가 그에게 달콤한 제안을 해온다. 그가 운전해서 배달만 해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말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그는 덜컥 제안을 받아들인다. 첫 번째 '운반'이 끝나고 봉투를 열어본 그는 생각지 못한 큰 액수 앞에 놀란다. 모든 유혹에 그렇듯 이번 한 번 만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비 오는 날'을 대비해서 번호를 가지고 있으라는 말에 상대의 번호를 간직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The Mule

결국 한 번은 두 번 그리고 세 번으로 이어지게 되고 세 번째 운반에서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코 운송하는 물건을 열어봐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어기게 된다. 그는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차를 멈추고 트렁크를 연 후 가방을 열자 나오는 코카인 덩어리들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바로 그 순간 뭐냐고 묻는 경찰에 그는 손녀에게 가져다 줄 피칸이라며 트렁크에 있던 피칸을 집어 보여준다. 손녀가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피칸 파이를 만드는데 그런 손녀의 남편이 불쌍하고 자신의 피칸도 불쌍하다고 말하며 웃는 그는 전형적인 시골 할아버지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수동적인 운송책이었던 그가 능동적인 여정의 주체가 되는 순간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The Mule

자신이 운반하는 게 코카인이라는 걸 알고 그가 여기서 멈추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는 여정을 멈추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마약 중독이 아닌 마약 운송으로 벌어들이는 돈에 서서히 중독되기 시작한 것이다. 코카인을 한 번씩 운송할 때마다 받는 상당한 액수의 돈으로 그는 압류당한 자신의 농장을 되찾았으며, 돌아선 가족의 마음을 다시 되찾기 위해 손녀의 결혼식 피로연 비용을 전부 내는 등 가족에게 돈을 쓰기 시작했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그가 단골이었던 전쟁 베테랑들을 위한 바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거액의 후원금을 덜컥 지불한다. 그는 이 돈으로 자신의 지난 인생의 시간과 잘못들을 다시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니 희망한다. 


그는 또다시 삶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누가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백인 노인이 그것도 심지어 평생 교통 딱지 한 번 떼 본 적 없는 사람이 100킬로가 넘는 코카인을 매일 같이 운반하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 이야기가 한때 미국을 들썩이게 했던 실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최고령 마약 운반자였던 레오 샤프라는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레오 샤프는 잡히기 전 십 년 가까이 멕시코 The Sonaloa Cartel의 최고 마약 운반자였다. 영화에서는 얼마나 미국이 인종차별이 뿌리 박혀 있는지 그리고 그 덕분에 얼이 대량의 코카인을 차에 실고도 매번 아무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다닐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얼은 곧 조직 최고의 마약 운반자로 엄청난 양의 마약을 운송하게 된다. 조직에서는 그가 운반하는 마약의 양이 늘어남에 따라 운송 기간 동안 그를 감시하며 따라다닐 조직원 두 명을 붙인다. 그들은 그에게 제대로 시간과 경로를 준수하라고 협박하지만 그는 '나는 전쟁을 한 사람이야. 너희한테 겁먹을 줄 알아'라고 하며 자신의 리듬대로 쉬고 싶은 곳에서 쉬고, 먹고 싶은 곳에서 먹고, 심지어 저녁에는 모텔 방으로 여자들도 부른다. 마치 여행을 떠난 양 즐기는 것이다. 그를 감시하기 위해 따라다 다니는 젊은 조직원에게 심지어 충고까지 하면서 말이다. 


"너는 인생을 좀 더 즐길 줄 알아야 해" 


황당하면서도 코믹한 장면들이다. 명령을 내리는 사람과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의 역할이 바뀌고, 얼은 단순 '노새'가 아닌 이 여정 아니 여행을 '리더'하는 주체자가 된다. 그는 평생을 자신의 방식대로 즐기며 살아온 사람이며, 아무리 무서운 마피아 조직이라고 해도 그런 그를 통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를 감시하라는 미션을 지닌 한 조직원은 그가 자신의 말을 계속해서 귓등으로 듣자 보스에게 전화를 해서 불평을 하며 그를 죽이겠다고 한다. 하지만 보스는 오히려 그런 그를 나무라며 말한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없으면 자신의 리듬대로 하도록 놔둬. 그가 그렇게 해서 예측 불가능하니까 어쩌면 더 안전한 거 아니야?'


여정 중 백인들만 있는 곳에 멕시코인 두 명이 등장하자 어디선가 신고를 받고 나타난 경찰에게 얼은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자신이 이들을 고용했다고. 이사를 해서 짐을 옮겨야 하는데, 멕시코 사람들 인건비가 훨씬 싸다고. 그러면서 트렁크를 열어 마약이 들어있는 짐 옆에 있던 팝콘을 건네주는 대범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혼자였던 여정은 이제 셋이 되고, 그들은 길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정을 쌓기 시작한다. 얼은 심지어 멕시코에 있는 보스의 집에 초대도 받게 된다. 어쩌면 얼은 인생의 마지막 모험 혹은 일탈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르텔의 최고 보스가 다른 조직원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변하기 시작한다. 조직의 새로운 팀은 더 이상의 여정 변경이나 늦게 도착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그가 또 다른 마약 운반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손녀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의 아내 메리가 위독하다는 전화이다. 그는 이제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The Mule

어쩌면 이 여정의 진정한 목적지는 이 선택에 달려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많은 돈으로도 다시 돌릴 수 없었던 과거의 실수들을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그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선택을 할 것인지.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 마약 조직과 경찰의 수사가 주요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모든 영화가 그렇듯 굉장히 깊고 철학적이다. 그의 영화는 삶이라는 여정에서 우리가 하는 선택들과 선택의 결과들에 대한 고찰이며, 그렇기에 위 영화에서도 반복되는 똑같은 여정이라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주인공의 최종 목적지는 달라지는 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The Mule

올해 한국 나이로 90세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이 연기하는 마지막 영화의 배역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아닌 그 누구도 이만큼 인생의 막장에 다다른 마약 운반자의 역을 잘 소화할 수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는 도중 많이 웃고, 많이 생각하고 또 눈물을 흘렸으며 영화를 보고도 한참 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이제는 점점 더 보기 힘들어지는 모든 명화가 그렇듯, 웃기지만 가볍지 않은, 깊이 있지만 지루하지 않은, 강요하지 않지만 계속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다. 특히 마지막에 얼이 했던 대사는 오랫동안 기억이 날 거 같다.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시간이 있었지. 근대 시간 만은 다시 살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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