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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Dec 08. 2018

왜 거북이는 토끼와 경기를 했을까?

전지적 참견 시점 이영자의 군부대 강연  

거북이는 왜 토끼와 경기를 한다고 했을까?


"나는 아무리 봐도 거북이가 너무 웃긴 거야. 누가 봐도 토끼랑 잽이 안 되잖아요"  


토끼와 거북이라는 어쩌면 우리 모두 자라면서 귀가 닳도록 들었던 이솝 우화로 강연을 시작하여 현재 학교와 사회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젊은 청년들을 향해 이영자가 이 물음을 던졌을 때, 난 그 뒤를 이에 나올 에프엠적인 교훈을 생각하며 솔직히 살짝 실망했다. 거북이의 근면성, 토끼의 게으름. 


성실하게만 산다고 해서 그 어떤 결과도 보장되지 않은 사회에서,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하는 과제를 짊어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거북이의 성실함을 말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처럼 느껴져서 더 그랬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답이 뻔할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큰 오산이었다. 그녀는 답을 뒤로 미루고 시작했다.


가장 살면서 힘들었던 건 상황이나 환경이 아니었어요. 나도 모르게 왜곡된 열등감, 콤플렉스였어요.


콤플렉스와 열등감으로 늘 세상을 왜곡되고 골절되게 봤다는 그녀는 자신의 어렸을 때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한 번도 듣지 못한 그녀의 숨겨진 이야기였다. 집이 생선가게를 해서 항상 자신의 몸에서 비린 내가 날까 봐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남들이 자신을 비웃을까 봐 늘 조마조마했다는 그녀는 그게 자신의 오랜 열등감이라고 했다. 


전지적 참견 시점의 이영자 군부대 초청 강연 중 


그 열등감 때문에 정작 다른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냄새를 맡을 때마다 자신을 놀리거나 비난하는 것 같아 기가 죽거나 싸웠다는 그녀는 그때부터 어디를 가든 항상 킁킁거리는 버릇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모두 그녀의 고백에 놀란 표정이었다. 그녀가 어디를 가든 킁킁거리며 귀신처럼 음식 냄새를 알아맞히는 걸 보고 여태껏 그녀의 남다른 식탐과 먹성에서 비롯된 행위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어릴 때 열등감으로 생긴 버릇이라니.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 군인들을 향해 외친다.


"여러분들이 군대에 있는 1년 8개월 동안 스스로한테 집중해서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내 열등감이 무엇인지. 그걸 찾아내서 박살 냈으면 좋겠어요"


“자신에게 집중하여 자신의 열등감을 찾아내고 그 열등감을 산산조각 깨부수세요.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와도, 그걸 잘 못 해석해서 내가 망가지지 않아요."

 

그녀는 열등감이 자신이 알아채서 고치지 못하면 평생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오번역하는 번역기로 작동된다고 했다. 또한 자신과 더불어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큰 상처를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서는 자신의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와 물었다. 그렇다면 왜 거북이는 토끼와의 경주를 한다고 했을까요. 오랫동안 이 질문을 품고 살았던 그녀는 오십이 되어서야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거북이는 콤플렉스가 없었구나. 그냥 자기의 길을 가는 거구나.


전지적 참견 시점의 이영자 군부대 초청 강연 중

 

그녀의 입에서 그녀의 강의 초반 질문에 대한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었을 때 나는 아주 멀리에서부터 종소리가 들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거북이가 열등감이 없기에 승패의 여부와 상관없이 경기를 하자고 할 수 있었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지는 경기도 이기는 경기도 다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만약 거북이가 자신의 느린 속도에 대해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토끼가 자신에게 경주를 하자는 게 자신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여 화가 났을 테고 경주는커녕 그 자리에서 토끼와 한바탕 싸움이 붙었을지 모른다. 아니 싸우기 전에 토끼는 이미 껑충껑충 뛰어 저 멀리 도망갔을 수 있고, 그럼 그런 토끼의 빠른 속도와 뒤쳐지는 자신을 보며 다시 한번 깊은 자괴감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산티아고 길을 몇 년에 걸쳐 여러 차례 걸으며 가장 크게 느낀 것 중 하나는 길에 오르는 순간 거북이와 토끼 모두 종국에는 똑같다는 사실이었다. 한쪽 눈이 안 보이거나, 불편한 다리를 절면서 걷는 순례자들을 보며 처음에는 그러다 포기하고 말겠지 싶었지만, 이들은 그들보다 훨씬 좋은 신체적 조건에서 걷고 있는 이들이 포기할 때도 묵묵히 자신들의 리듬대로 걸어서 산티아고에 도착하고는 했다.


처음에는 그게 단순히 이들의 용기와 의지 덕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강의를 듣고 나서 느꼈다. 이건 어쩌면 이들이 자신들의 불리한 신체적인 조건에 대한 열등감이 없었기 때문에도 가능했을지 모르겠다고. 혹은 자신의 열등감과 싸우기 위해 이 길을 올라서서 결국에는 열등감을 이긴 걸지도 모르겠다고. 이들은 늘 이 길을 걸을 때 감사하며, 한 걸음 한 걸음을 그 누구보다 즐기며 걷고 있었다. 


물론 콤플렉스가 늘 부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철저히 남아선호 사상을 지난 가정에서 자라면서 한 번도 닭 뒷다리를 먹어본 적 없다는 이영자는 언젠가 닭 한 마리를 온전히 다 먹기 위해 성공하겠다고 결심을 했고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으니 말이다. 열등감은 종종 성공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성공을 했어도 여전히 속으로는 열등감에 시달리며, 세상의 소리를 왜곡되게 받아들이느라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면. 


그래도 성공이 의미가 있을까? 


전지적 참견 시점의 이영자 군부대 초청 강연 중


나 또한 자라면서 혹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참 많은 열등감에 시달렸었다. 


그때는 이 열등감을 나 자신이라고 착각했고, 그래서 나 자신을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열등감 때문에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한 일들도 많았으며, 하고도 다른 이들이 나를 비판한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루지 못한 날들도 많았다. 지금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를 억누르고 있던 수많은 열등감들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기 시작하자 그제야 진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콤플렉스를 가진 이 세상의 모든 거북이를 응원한다. 


그들이 빨리 콤플렉스를 박살 내고 당당히 토끼와 경주를 하여 삶이라는 경기에서 보란 듯이 이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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