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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Dec 01. 2018

내 삶의 베스트

매일의 베스트를 위해

지난주 한국에 출장으로 잠깐 들어갔다가 오랜만에 라파엘 수녀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와 나는 이년 전에 한국어 교사 연수 수업을 들으며 만났다. 그 당시 그녀는 베트남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고 나는 파리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한국어 교사가 되기 위해 연수를 들으러 왔었다. 우리는 그 뜨겁던 여름, 약 한 달 가까이 되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연세대 한국어 학당의 대 강의실에 나란히 짝꿍으로 앉아 동고동락했다.


그녀와 친해진 게 된 건 우연히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가, 갑자기 빵 터져서는 멈출 줄 모르던 그녀의 웃음 덕분이었다. 참 오랜만이었다. 저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을 본 건. 누군가 나에게 ‘온몸으로 웃는 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그녀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수녀님이라는 특수(?) 직업군에 침착, 조용을 늘 떠올렸던 나는 그녀의 반전(?) 매력에 빠져들었다.

결과적으로 우리 둘 다 현재 한국어를 가리키지는 않고, 그녀는 현재 울산 이주민센터에서 소임을 하고 있으며 나는 파리에서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 함께 연수를 받았던 인연이 이어져 아직까지도 멀리서나마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그녀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내가 가톨릭 종교에 대해 막연하게 지니고 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그녀는 활발하고 발랄했으며 늘 솔직했고 무엇보다도 자유로웠다. 그녀의 자유로움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자유롭게 사는 사람과는 또 다른 성격의 자유였다.

온전히 사랑 안에서 자기 자신일 수 있는 자유

그런 그녀를 보며 종교가 구속이 아닌 자유를 의미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종종 삶의 무게가 너무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녀에게 연락을 하고는 했는데, 늘 짧게 오가는 문자 속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받곤 했다. 이번에도 그녀를 만나 나의 이런저런 현재의 일과 삶에 대한 고민을 말하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수녀님은 얼마나 되신 거예요?”

“뭐가요?”

“수녀님이 되신 게.”

“이십 년 되었어요”

“이십 년이여? 그럼 굉장히 일찍 수녀님이 되셨네요.”

“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수녀가 되었어요.”

“일찍 되셨네요”

“네”

“그럼 오랫동안 수녀님이셨으니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왜 안 들겠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적게는 뭘 먹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때, 가고 싶은 데 가지 못할 때부터 시작해서요. 그리고 그럴 때마다 매 순간 선택을 하는 거지요.”

“선택이요?”

“네. 항상 그때그때 선택을 하는 거죠."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선택은 늘 하느님이었기에 이 길을 계속 가는 거예요.”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그건 이게 나의 삶의 베스트라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나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이 별로 매력이 없었어요. 아마 그런 것들이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면 이 삶을 선택하지 않았겠죠.”

“그리고 지금이 행복하기에 매 순간마다 다시 이 선택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물론 이 선택을 했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있지만, 이게 내 삶의 베스트라는 걸 알기에 감내할 수 있는 거예요.”

자신 있게 이게 나의 삶에 베스트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나의 삶은 나의 베스트일까? 

그러고 보니 나는 단 한 번도 그동안 나의 선택들이 나의 삶의 베스트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 선택들을 라파엘 수녀님처럼 온전히 살아내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말이다.

‘어쩔 수 없으니까 이렇게 사는 거예요’

이 말을 일상에서 수 없이 들으며 살아가다가, 이게 나의 삶의 베스트이니까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정신이 확 드는 느낌이었다. 내 삶의 베스트. 나에게는 어떤 삶이 나의 베스트일까. 어쩌면 막연하게는 알고 있지만 그녀처럼 용기 혹은 선택을 온전히 살아낼 용기가 없어 회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아니 나는 언제부터 내 삶에서 최선이 아닌 차선만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게 정말 나의 온전한 선택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한 해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요즘, 내년에는 나 또한 이게 나의 삶의 베스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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