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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Apr 11. 2019

비겁함에 대하여

얼마 전에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를 보았다. 유관순이 의지를 꺾지 않고 끔찍한 고문을 당하다 결국 기절하게 되고, 그녀의 그 야위고 가녀린 몸에서는 붉은 피가 철철 흘러나온다. 그걸 보는 일본인 밑에서 앞잡이로 일하는 한 조선인이 안타까워하며 말한다.


‘조금만 비겁하면 될 것을’


유관순은 끝끝내 비겁하지 않았고, 결국 출소 이틀을 남기고 감옥에서 18살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전에 한 프랑스 변호사를 만났을 때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제가 좋아하는 명언이 있어요. 공동묘지에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들로 넘쳐난다는 말이에요.”


세계 1차 대전에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던 조르즈 클레망소가 했던 유명한 말이다. 그는 수많은 용감한 이들이 전쟁 중에 무수히 죽어가는 것을 봤을 테고 이런 명언을 남기게 되었을 것이다. 


모두 비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나는 시대를 잘 타고난 덕에(?) 전쟁이나, 유관순처럼 식민 지배를 겪지 않아도 됐었다. 그래서 만약 용감하다는 것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극단적인 시대나 환경에 태어났다면, 나 또한 과연 비겁하지 않을 수 있었을 거라고 장담은 못 하겠다. 


하지만 몇 년의 직장 생활을 하고 느낀 것은, 위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은 정말 비겁한 사람들로 넘쳐난다는 거였다. 어쩌면 클레망소의 말대로 영웅들은 다 공동묘지에 있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비겁하다는 것은 꼭 자기보다 강한 사람한테 굽신거리거나, 불의를 보고도 눈 감는 것만은 아니었다. 


옆에서 누군가 정말 힘들 때 혼자 편하기 위해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거, 조그만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것, 나의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수시로 거짓말하는 것, 나의 잘못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 것. 


얼마 전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던 도중 상대가 말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비겁해요. 그건 그들이 약해서 그래요.”


하지만 나는 강한 사람이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약하다. 하지만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그렇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사람이 용감하다고, 아니 적어도 비겁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다니던 직장에 정말 친한 동료가 있었다. 점심도 항상 같이 먹고, 회사 끝나고도 자주 보고, 주말에 보기도 했다. 나는 이 동료가 동료 이전에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회사라는, 어떻게 보면 이익 집단 속에서 서로의 이익이 조금이라도 상충될 때는 내가 조금 희생을 하더라도 이 동료의 이익을 우선으로 두었다. 


하지만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녀가 거짓말을 정말 밥 먹듯이 한다는 것을. 그녀는 늘 자신이 불리하거나 무언가 필요한 상황이면 거짓말을 너무도 쉽게 했고, 책임을 전가했다. 자신은 늘 희생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일 년이 넘게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녀가 자신의 책임을 미룰 때도,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수없이 할 때도, 난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이제 좀 그만하라고 말하지 못했다. 평소에는 할 말 안 할 말 안 가리고 다 하고, 오히려 무서운 직장 상사 앞에서는 이게 아니다 싶으면 반박도 잘했으면서 말이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무서웠던 것 같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이 관계가 깨질까 봐.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한 사건이 있었다. 그 일 자체는 별거 아니었다. 내가 한참 많은 일로 시달리고 있을 때, 그녀는 종종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책임을 나에게 미뤘고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걸 또 받아들였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지라고.  


그리고 그 말 한마디로 관계는 결국 우려했던 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녀는 늘 그랬던 것처럼 핑계를 대고, 다른 사람을 욕했으며, 자신의 잘못은 눈곱만큼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참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때까지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그때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데, 끝낼 각오를 하고 말을 한 것은 여태껏 진실이 아닌 관계 속에서 너무 힘들어서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으며 그 사람의 거짓말을 모르는 척 늘 속아줘야 한다는 것. 물론 이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옥죄였던 건 그렇지 않으면 관계가 유지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관계에 이런 두려움이 있다는 건, 이미 죽은 관계나 마찬가지였다. 이건 내가 생각하는 진실된 관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그토록 친했던 동료와의 사이가 한순간에 영영 멀어졌다. 그런 그녀를 회사에서 마주칠 수밖에 상황이 퇴사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단 한 번도 처음으로 그녀에게 진실을 말한 걸 후회해 본 적은 없다. 설령, 처음으로 진실을 말한 순간이 이 관계의 마지막 순간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때가 내가 이 관계에서 처음으로 비겁하지 않았던 때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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