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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Apr 08. 2019

누군가 내 결혼식에 점수를 매긴다면?

   프랑스 웨딩 리얼리티 예능

얼마 전에 프랑스 티브이에서 우연히 'Quatres mariages pour une lune de miel', 번역하면 '하나의 신혼여행을 위한 네 결혼식'이라는 웨딩 리얼리티 프로를 보게 되었다. 한국의 리얼리티 예능은 늘 연예인이 출연하지만, 프랑스 리얼리티 프로에서는 출연자들이 일반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연예인이 출연하지 않으면 프로그램 기본 시청률을 보장하기 힘들기 때문에, 치열한 시청률 전쟁 속에서 방송사들이 리스크를 꺼리는데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한국 예능을 보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육아도, 연애도, 심지어 혼자 사는 것도 연예인이 해야 인기를 끈다. 종종 즐겨 보는 '전지적 참견 시점'이나 '미운우리새끼'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연예인 매니저나, 연예인 어머니 같은 일반인이 중심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마저 자세히 보면 거의 관련 연예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반면, 프랑스에서 제일 인기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보면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대부분이다.  


여기에는 문화적인 차이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 프랑스에는 기본적으로 '우상화' 문화가 없다. '존경하는 위인', '닮고 싶은 사람'.. 우리가 자라면서 숱하게 들어왔던 이 질문들은 프랑스에서는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한국 사회가 연예인을 우상화한다는 건 아니지만, 연예인이 출연하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에서 보여줬던 모습이 현실과 정반대라는 것이 밝혀지고는 할 때 일어나는 '국민적인 배신감 혹은 분노'를 봤을 때는 아직까지도 연예인에 대한 환상이 큰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일반인 출연자들이 자신들끼리 서로 다른 출연자의 점수를 매기거나, 다른 출연자의 탈락을 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많다. 이 '하나의 신혼여행을 위한 네 결혼식'도 그런 인기 리얼리티 프로그램 중에 하나인데, 결혼을 앞둔 네 신부가 서로 다른 신부의 결혼식에 참가하여 점수를 매기는 형식이다. Four Weddings라는 영국 프로그램에서 비롯되었으며, 2011년 첫 방연 된 후로, 현재 매주 방영되고 있으며 나름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인기  프로이다.



세 명의 출연자들은 다른 한 명의 출연자의 결혼식에 가서 신부의 웨딩드레스부터, 리셉션 데코레이션, 피로연 식사, 웨딩 케이크, 파티 분위기 등, 결혼식의 전반적인 모든 사항에 대한 점수를 매긴다. 네 명의 결혼식이 다 끝난 후에야만, 각각의 출연자들은 다른 출연자가 자신의 결혼식에 대해 매긴 점수와 평가를 볼 수 있다. 그중 가장 평균 점수가 높은 신부가 자신이 평생 꿈꿔왔던 신혼여행을 떠날 행운을 거머쥐게 된다.  



처음 프로를 보기 시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누가 다른 사람이 자기 결혼식에 점수를 매기는 걸 원할까'였다. 일생일대의 가장 특별한 순간인 나의 결혼에, 전혀 모르는 다른 사람이 와서 평가하고 그것도 모자라 일일이 점수를 준다는 건 개인적으로는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점수를 매기는 사람은 객관적인 외부의 전문가도 아니고 이 경연의 경쟁자이다. 꿈의 신혼여행권은 단 한 명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 네 명의 신부들은 서로가 서로의 경쟁자인 셈이다.


하지만 결혼식이 끝나고 다른 참가들이 준 점수와 이들의 현장에서의 생생한 반응과 평가를 영상으로 보러 온 커플들은 의외로 평화스러워 보였다. 신랑과 신부 둘이서 함께 이 영상을 시청하게 되는데, 이때는 둘 다 높은 점수를 받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결혼식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부부가 된 이들은 여전히 결혼식 당일의 감동에 잔뜩 젖어 있고, 새로운 출발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꿈의 신혼여행만 떠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누가 봐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혼부부이다.



결혼식, 그 날의 영상이 시작되면 신부와 신랑은 처음 차에서 내리는 자신들의 모습만 보고도 감격하며 울컥한다. "최고의 결혼식이었어",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신부였어". 여전히 열기가 식지 않은 결혼식의 추억과 감동을 리플레이하며 깨볶는 신혼부부는 사랑의 키스를 나눈다.


"사랑해"

"나도"


하지만 이들의 감격과 행복은 서서히 당혹감과 분노로 바뀌기 시작한다. 다른 참가자들이 매긴 점수와 평가를 보면서부터이다.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고, 주변에서도 다들 너무 잘 어울렸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웨딩드레스가 ' 뻔하고', '화려하고 않고', 심지어는 '전혀 웨딩드레스 같지 않다'는 평가를 들으면서 그토록 아름다웠던 순간의 마법은 서서히 깨지기 시작한다. 하나하나 직접 공들여 만든 피로연 데코레이션이 '너무 단순하다', '유치하다', '실망했다'라는 말을 듣기 시작하면 커플의 빛나던 얼굴에 서서히 먹구름이 들기 시작한다.



피로연 음식에 대해 '먹을 게 없었다', '그저 그랬다', 심지어 '재료가 아깝다'라는 말까지 들으면 그토록 확신에 찬 행복한 신부는 사라지고, 어느덧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20점 만점에 7점이나 8점 같은 예상치 못한 낮은 점수를 받은 신부와 신랑은 점점 더 분노를 감추기 힘들어진다. 유독 낮은 점수를 준 다른 출연자가 자신이 이기기 위해 일부러 점수를 낮게 주었음을 확신하며 그 출연자를 욕하기 시작한다. 행복과 사랑으로만 가득했던 결혼식의 추억이 한순간에 어그러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직후에 우승자를 정하는 최후의 순간이 찾아온다.



자신의 점수와 영상을 본 출연자들이 함께 있으면, 우승한 출연자의 남편이 차를 타고 와서 꽃다발을 들고 내린다. 물론 기다리면서 다시 만나게 되는 출연자들은 서로에 대한 분노를 과감 없이 표출한다. "너는 단지 이기기 위해 내 결혼을 망쳤어", "너희들은 다 위선자야", "너는 머리가 비었어", 심지어는 "그거 알아? 네 결혼식은 진짜 형편없었어". 축복만 있어야 될 결혼식을 두고 평생에 비수가 되어 꽂힐 말들이 날아다닌다. 한바탕 전쟁 후 백마 아니 검은색 승용차를 탄 왕자가 도착하고 둘은 그토록 꿈꾸던 그들만의 신혼여행을 떠나게 된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과연 이 모든 것을 겪고도 이 둘은 그토록 꿈꿨던 신혼여행을 행복하게 떠날 수 있을까?


물론 꿈의 신혼여행은 그 어떤 신혼부부도 탐낼만한 상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 대가가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식에 대한 평가 그것도 나를 전혀 모르고 내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지 않는 그 누군가에 의한 점수 매김이라면? 출연하는 커플도 신기했지만, 이런 프로가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결혼식을 다녀온 누군가의 입에서 그 결혼식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를 들어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프랑스라고 예외는 아니다. 음식은 어땠냐느니, 분위기는 어땠냐느니.. 물론 대부분 좋았다는 말도 빠지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 역시 그런 심리를 반영하는 게 아닐까? 이 프로를 보면서 시청자들도 출연자들의 결혼을 비교하며 마음속으로 자신만의 점수를 매길 테니 말이다.


누군가의 일생일대의 유일한 순간이자 축복만으로도 모자란 행복한 순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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