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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Apr 18. 2019

프랑스 수녀원에서 일주일 #1

이 수녀원을 처음 온 게 2016년 여름이었으니 이제 이곳에 오기 시작한 지 이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처음 산티아고 원고를 작업한다고 왔을 때만 해도 이곳에 이렇게 꾸준히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아주 자주 온 건 또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 달에 한 번씩 꾸준히 왔다. 처음에는 일박 이일로, 그다음에는 이박 삼일로, 삼박 사일로 그렇게 주말과 공휴일에 끼어있는 긴 주말 혹은 휴가를 내서 오다가 이번에는 일주일이라는 제일 긴 시간을 내서 오게 되었다.


가톨릭 신자도 아닌 내가 이렇게 여러 번을 오는 데는 뭔가 특별한 핑계(?)가 있어야 할 것만 같아 올 때마다 나는 작업할 원고들과 노트북을 가지고 왔다. 이번에도 하고 있는 책 번역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공식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사실 나는 이전부터 이곳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것을 꿈꿨다.


항상 올 때마다 다시 떠나는 게 슬펐고, 매번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도 짧다고 생각했다. 몸에 디톡스가 필요하다면, 나는 이곳에서 영혼의 디톡스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보다 더 집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서의 고요가 좋았고, 침묵 속에서 눈짓과 미소로만 이뤄지는 만남이 좋았다. 수녀원이지만 그 아무도 종교나 기도를 강요하지 않았고, 강요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므로 나는 진실된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아름다운 성당에 잔잔히 울리는 수녀님들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좋았고, 수녀님들이 정원에서 직접 재배하여 말려 놓은 유기농 라벤더나 타임 등의 허브를 따뜻한 물에 담가 차로 마시는 것도 좋았다. 또 수녀님들이 직접 담그시는, 단연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쨈을 빵에 발라 먹는 것도 좋았다.


몸이나 마음이 많이 아플 때 왔다가도 이곳을 떠날 때면 나의 얼굴과 눈빛은 항상 빛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다른 핑계를 찾지 않고, 그냥 좋아서 온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핑계를 찾았다.

어쩌면 이게 지금까지도 내가 신을 찾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여기 오면 항상 이곳 숙소를 담당하는 안나 수녀님과 따로 면담을 하곤 하는데, 내가 한 번은 ‘신 같은 무언가’라고 하자 수녀님은 한참을 웃었다.

나름 모태신앙이지만, 늘 종교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사는 나는 신을 제대로 지칭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가 나에게 신을 믿냐고 물은다면 나는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다만, 내가 느끼는 신은 그 모든 곳에 존재하고 있었기에 특별히 교회나 예배를 따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곳은 조금 달랐다. 여기에 올 때마다 신을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타인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만났다.

그리고 나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을 통해 신을 느꼈다.


이렇게 느끼는 신은 나에게 자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을 가리라 하지도 않았고, 예배에 참석하거나 기도를 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용서하라고 했다. 남을 그리고 나를. 그렇게 늘 전쟁 중인 내 마음을 평화로 고요로 가득 채웠다.

이번처럼 부활절 주간처럼 특별한 시기에 이곳을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일 년 전 나는 부활절 휴일이 낀 주말에 이박 삼일로 이곳을 왔다. 그때도 브런치에 위클리 매거진 연재 신청을 할 사하라 여행기를 마무리한다는 명목 아래서였다.

하지만, 일 년 가까이 이곳을 오면서 미사도 기도도 거의 참여해본 적 없던 나에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나도 모르게 미사에 참여하고 있었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미사가 끝나서도 혼자 남아서 울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아마 그때 내 마음이 그만큼 힘들었던 것 같다. 눈물을 흘리며 저 하늘에 계신 분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용기를 달라고. 내가 생각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저녁 10시에 시작해서 장작 세 시간 가까이 걸리는 부활절 예배가 끝나고 나는 영혼이 깨끗이 씻겨 나가는 느낌으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꿨다. 당시 친하게 친해던 한 친구와 싸우는 꿈이었다. 꿈은 깨어서도 너무 생생했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에 사소한 이유로 이 친구와 결별하게 되었다.

이제 이 친구와는 그만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었지만 끊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질질 끌고 있던 관계였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다니던 회사에도 사표를 냈다. 물론 그만 두기까지는 일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신기한 게 정말 나인 것과의 결별은 그토록 쉽게 하면서도 내가 아닌 것들과의 결별은 늘 어려웠다. 나를 포기하는 것은 제일 적은 양의 용기를 필요로 했고. 나로 남는 일은 언제나 제일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지난해 부활절에 내가 이곳에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은 그 용기였다. 비록, 언제나 그렇듯 이 용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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